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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선 Dec 09. 2021

머리를 쉬게 해 줘

사람은 나이가 들 수록 성향이 고착화되기 쉽다. 기호에 따라 행동하고 자신의 개성이나 특성을 발휘하면 할수록 한 가지 면이 공고화되기 때문이다. 음양 또는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인체를 바라보았을 때 신체의 질병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두뇌를 많이 쓰는 스타일이다. 오로지 두뇌만 쓰는 걸지도 모르겠다. 감정조차 두뇌라는 필터링을 거쳐야 비로소 표현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러운 감정을 느끼는 게 어렵다. 공감하는 건 세상천지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나에게 시시콜콜한 잡담을 늘어놓거나 시답잖은 상담을 해 오면 듣고 있기가 곤혹스럽다. 나는 공감 대신 자연스럽게 문제부터 진단하고 해결책을 도출한다. 많은 경우 상대는 나의 조언을 듣고 싶어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의 두뇌회로는 멈추지 않는다. 괜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꼴이다. 그렇게 목적 없이 사람을 만나고 오는 길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에너지를 탈탈 털린 것 같은 극심한 피로감에 찌들어 버린다.


의식이 발달한 나는 거의 대부분의 순간을 자각하고 사는 편이다. 과도한 두뇌활동 덕택에 고질병은 두통 되시겠다. 게다가 여성들은 호르몬 사이클에 따른 신체 변화가 두드러지다 보니 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두통을 앓는 경향성을 보인다. 내 동생의 경우를 들어보면 당최 두통이 뭔지 모르겠단다. 머리가 아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조차 모른다니, 이런 축복받은 인간이 다 있나 싶다.

두뇌는 인체 대부분의 기관을 관장하는 컨트롤 타워이다. 머리가 아프면 만사가 귀찮다. 특히 생각이 돌아가야 움직일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은 머리가 아플 땐 도무지 뭘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일 수밖에 없다. 염증성 두통이라면 이부프로펜이 약이 되는데,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 유일한 약은 시간뿐이다. 빠르면 하루, 적어도 이틀은 시달린 후에라야 비로소 두통이 진정되곤 한다. 두통이 생기면 소화기마저 작동하지 않으니 모든 신체활동이 올스톱이다. 손해가 막심하다. 그래서 약간이라도 두통의 전조가 느껴진다 싶으면 비상태세를 가동한다. 이런 때는 높은 확률로 수면부족일 경우가 많아서 두통이 심해지지 않도록 어떻게든 몸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최우선 해결책이다. 예방만이 최고의 방책인 것이다. 요즘엔 보란 듯 두통을 요리조리 피해 가는 요령도 생겼다.  


명상하는 방법에는 화두를 붙잡는 것도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텅 비우는 것도 있다. 나는 후자가 좋다. 잠들기 전 하루 일어났던 일들이 오만 때만 생각이 되어 내 머리를 터지도록 채우고 있을 때 억지로라도 고요히 앉아 있는다. 5분, 10분 앉아 있다 보면 어느 결에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고 비로소 머리가 잠잠해진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조차 나는 오만 생각에 시달린다. '종이 타월을 쓰면 환경에 해롭잖아. 이게 다 뭐야 그냥 쓰레기가 된다고. 그냥 물만 묻었는데 아깝다. 어라 손수건 어딨지? 깜빡하고 두고 왔구나. 앞으로는 손수건을 지니고 다녀야겠어. 이번에는 그냥 손만 털고 나가지 뭐. 아니야, 그래도 손잡이에 세균이 묻어 있을 텐데 종이 타월을 쓰는 게 낫지 않겠어?' 이런 사람이 뇌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의아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의식을   내려놓을  있을까? 두뇌를 편안하게 쉬게   있을까? 요즘 나의 숙제이다. 나도 말이야 당최 두통이 뭔지 모르는 그런 상태가 된다면야  좋게다만 나이 들수록 자꾸만 성향이 극단적으로 고착화되니 근본부터 수정해야지 싶다. 의식이야 어쩔  없이 깨어 있게 내버려 두더라도 생각을  하는 거지. 그냥 바라만 보는  말이다. ! 물론 여기에도 의식이 관여해야 한다. 관여할 수밖에 없다. 의식적으로 생각을 덜하고 의식적으로 그냥 바라만 보기. 성향은 일정 부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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