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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영 May 26. 2019

自家가 아니어도 괜찮아

프롤로그:동네 이야기를 쓰는 이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방 중소도시에서 자랐다. 공간에 관해서 어린 시절 가장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과연 여의도는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이었다. 장소를 나타내는 거의 모든 비유에는 '여의도의 몇 배' 따위의 수식이 붙었는데, 초등생이던 나는 대체 이 여의도란 곳이 얼마나 거대한 곳인지(주로 '여의도의 몇 배나 된다'는 식으로 쓰였으므로 무지하게 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교과서나 뉴스에 이런 표현이 나올 때마다 묘한 소외감이 들었다.


지방에서 자란 이들은 공감할 것이다. TV에 내가 아는 장소가 나오면 얼마나 신기하고 반가운지! 서울서 산 지 10년이 넘어가는 지금은 서울 중심적 사고에 완전히 물들어버린 나를 볼 때마다 올챙이 적 생각을 하며 흠칫 놀라곤 한다. 정작 서울 시민이 된 지금도 나는 그놈의 여의도가 대체 얼만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여의도동이라는 행정 구역을 일컫는 것인지, 여의도 공원만을 뜻하는 것인지, '여의도(주로 국회나 IFC)에서 보자' 할 때 말하는 그 여의도까지 아우르는 것인지 말이다.


대체 '여의도의 몇 배'는 얼마나 큰 것인가? 서울살이 10년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위키백과


서울 중에서도 가장 트렌디한 홍대 일대에 6년째 살면서 이제  이상 '여의도의  ' 같은 말로 인해 소외감을 느끼진 않는다. 마치 한이라도 풀듯 뉴스에, 잡지에, 관광책자에 허구한  나오는 동네에 살고 있다. 2년간 홍대 한복판에  때는 금요일 밤이 되면  옆에 들어선 클럽에서 바닥에 레드카펫을 깔았다. 야근을 마친 나는 백팩을 메고 레드카펫을 터벅터벅 밟으며-누가 봐도 퇴근하는 직장인으로 보이는 나에게 호객하던 삐끼들을 물리치고-집에 들어가곤 했다.  후로 '연트럴 파크(연남동+센트럴파크)' 초입에 2년을 살다가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 합정동으로   2년째이다.


행정구역상 나는 합정동 주민이 명백하다. 그러나 최근 도보 5분 거리에 망원동이라는 동네를 발견하면서 나는 그냥 망원 주민이 되기로 했다. 합정동에 1년 반 가량 살면서 망원동 역시-우리나라에서 강남이 그러하듯이-어떤 물리적 경계가 있는 공간이 아니라 지리적 심상에 가깝다고 생각하게 됐다.    


망원은 합정에 비해 더 생활인들의 공간답다. 합정 먹자골목은 회식하는 직장인들로 평일 저녁에 붐빈다. 반면 망원시장은 인스타에 올릴 사진 찍으러 온 20대들부터 슬리퍼 끌고 나온 1인 가구들, 이곳에 십수 년째 살고 있는 터줏대감 주민들이 섞여 있다. 정장 입은 채 품에는 세제 사들고 퇴근하는 젊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짙은 생활의 냄새를 느낀다. 위압적으로 솟은 주상복합 건물이 합정의 랜드마크라면, 나에게 있어 망원의 랜드마크는 '금강산 보석사우나'다.


요즘 망원동에 맘이 더 기우는 이유 중 하나는 이 동네를 다루는 텍스트들이 부쩍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망원동에 대한 사랑이 갑자기 끓어오르던 날을 정확하게 떠올릴 수 있다. 김하나, 황선우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한달음에 읽은 밤이었다. 두 작가는 망원동에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책 후반부로 갈수록 동네에 좋아하는 커피집이나 수영하러 다니는 스포츠센터 얘기 따위가 나왔다.


이튿날 김하나 작가가 좋아한다는 망원동 '대루 커피'에 가봤다. 햇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일요일 오후의 평화를 즐겼다. 그리고 나는 최근 두 작가의 북 토크에 갔다. "저도 망원동 살고 있어요!!!" 나의 존재감을 온몸으로 뽐내고 싶었다. 주책맞게 두 분에게 내가 좋아하는 동네 만두집까지 추천하고 말았다.


동네를 산책하다 고양이 두 마리를 만났다. 동네 이야기가 실린 글들을 접할 때마다 평범했던 골목이 더 사랑스러워 보인다.


서영인의 <오늘도 가난하고 쓸데없이 바빴지만>은 망원동이 풍기는 생활감을 잘 포착한 책이다. 작가는 망원역 1번 출구와 2번 출구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요구르트 아줌마들이 스티로폼 밥상 위에서 각자 싸온 반찬과 쌀밥을 꺼내 끼니를 때우는 모습을 관찰했다. 나는 이것이 망원동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내가 어제 본, 아이가 100원짜리 동전을 내밀자 "이거 10개 있어야 돼"라며 양 손바닥을 펼쳐 보이는, 그러면서 고로케 하나를 그냥 내어주는 주인의 모습과 닮았달.


이 책을 읽으며 서영인 작가가 언급한 "때결"을 따라 때를 잘 밀어주는 세신사가 있는 그 목욕탕이 어디인지, 통통한 애호박을 들여다놓는 그 채소가게는  어디인지 나는 단박에   있었다. 이를 자랑하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동네의  가게를 아는 사람에게 해야 하고, 그걸 아는 사람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 자랑이 무의미하단  깨달았다. 무엇보다 서영인 작가는 본인이 행정구역상 서교동 주민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그렇다면 합정동 주민인 나도 망원동 사람이라고 해도 되겠다 싶어 맘이 놓였다.

 

김민섭의 <아무튼, 망원동>도 있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해서만큼은 앞서 말한 두 책만큼의 공감을 느끼진 못했다.(나는 김민섭 작가의 칼럼을 챙겨보는, 그의 열렬한 독자다. 순전히 망원동에 한해서, 앞의 두 책과 비교했을 때, 내가 느낀 바가 그렇다는 뜻이다.)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여성 1인 가구 혹은 2인 가구로서의 삶, 뜨내기 '망원러'로서의 삶이 앞의 두 책에는 드러나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지리적 심상으로서의 망원동을 이루는 요소에 이 1인 가구 정서가 빠질 수 없다고 보는데 김민섭 작가는 망원동 일대에서 가족들과 함께 자랐다. 비슷한 맥락에서 김소연 시인의 <망원동>에는 "여전한 감나무, 여전한 목욕탕, 여전한 놀이터/여전히 부서진 장난감들"이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즉 오래 동네에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에, 2년짜리 방에 사는 혼자 생활자들의 일상이 겹쳐지는 망원동을 나는 애정한다. 한때 서울의 힙한 장소로 망원동이 뜨면서 '망리단길'이라는 멸칭(이라는 게 내 생각)이 붙기도 했지만 망원동에 발붙이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덕에 망원동은 고유의 이름을 되찾았다. 동네의 서사가 쌓일수록 나는 동네 곳곳에서 사랑스러움을 발견한다. 2년짜리 터전을 떠도는 세입자로서, 자가(自家)가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 이 동네에 뿌리내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았달까. 내가 동네 이야기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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