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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영 Jun 11. 2019

쌀국수 트럭

나의 소울푸드

일을 오늘 다 끝낼 수 있을까? 기어코 해내고야 마는 날이 있다. 하루에 전화를 94통 했다. 귀에서 환청이 들릴 것 같아 세어 보니 그랬다.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서 밤 11시 30분에 퇴근할 때까지 한숨도 안 쉬고(리터럴리!!) 일했다. 기사 두 개를 쓰고 주말 제작용 섹션 메인 기사까지 미리 써놓은 날이었다. 점심은 대충 때우고 저녁은 걸렀다. 팩에 담긴 고구마죽을 쪽쪽 빨며 키보드를 타닥타닥.


집으로 돌아가는 야근 택시에 몸이 실렸다. 어설프게 끝낸 일은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어찌 읽어냈는지 "일이 참 힘들죠?"라고 기사님이 말을 걸었다. 그때 나는 목적지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YG 사옥 앞에 내려주세요."


합정과 망원 일대를 돌아다니는 쌀국수 트럭. 격하게 일한 날이면 항상 생각난다.


이곳엔 일주일에 한 번씩 쌀국수 트럭이 온다. 자리는 6개뿐. 밤 9시부터 이튿날 새벽 1시까지 영업하는데 재료가 떨어지면 그마저도 일찍 문을 닫는다. 카드는 안 받는다. 젊은 사장님이 합정과 망원, 상수 일대를 돌며 장사를 하는데 영업개시 전 인스타그램에 오늘은 어디로 갈지를 공지한다.


자정이 조금 넘어 도착하니 평소와 다르게 바로 자리가 났다. 쌀국수가 맛있어서일까, 사장님이 반겨주셔서일까, 아니면 밤공기가 선선해서일까. 고수 듬뿍 넣은 쌀국수 국물을 한 숟갈 떠먹는데 울컥하던 감정이 '꿀떡'하고 위장으로 내려갔다. 정신없이 한 그릇을 비웠다. 역시 위가 따뜻해져야 마음도 가라앉는다.


합정과 망원 주민들의 소울푸드, 트럭 쌀국수. 국물 한 숟갈 넘기면 그날 쌓인 부정적인 감정이 꿀떡,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음식이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순간들을 기억한다. 여기서 쌀국수를 먹다 보면 처음 보는 동네 주민들과, 사장님과 대화하는 게 어색하지 않다. 나는 이 쌀국수 트럭을 동네 친구 덕에 알게 됐고, 또 다른 동네 친구를 데리고 이 맛을 보여줬다.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음식이 대개 '소울푸드'라고 불리는데 나는 이렇게 동네서 동네로 전해지는 이 음식을 내 소울푸드의 범주에 넣고 싶다.


너댓 번 먹다보니 이곳 사장님은 손님이 자리를 뜰 때 "안녕히 가세요" 대신 "또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한는 걸 알게됐다. 그 말이 유독 따뜻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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