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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영 Apr 28. 2018

옆 동네 여행

익숙하고도 낯선


선물처럼 주어지는 붕 뜬 시간을 외려 반기는 사람들이 있다. 약속이 밀리면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약속 시간인 오후 6시에 맞춰 나왔더니 친구에게서 언제 퇴근할지 모르겠다는 메시지가 왔다. 그는 30분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약속 장소인 이대 앞으로 가려던 나는 우리 동네 합정동을 배회해야만 했다.


슬슬 걷다보니 옆 동네 상수동까지 발길이 닿았다. 사실 합정이기도 하고 상수이기도 한, 중간지대 어딘가였다. 골목에서 연극영화과 학생들이 작품을 찍고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빈티지샵을 한참 구경하다 나왔다. 30분을 채웠더니 친구가 1시간 더 늦을 것 같단다. 꼴을 봐서는 1시간, 2시간 기약 없이 기다릴 것 같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어반 플랜트'다. 3층짜리 카페를 모두 식물로 채웠다. 문을 열면 복작거리는 동네와 다른 숲의 세계가 열린다. 마침 날도 선선해 야외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한 차와 함께 나뭇잎 하나를 올려주는 세심함이 돋보인다. 단골 삼고 싶은 카페를 발견하는 재미를 오랜만에 느꼈다.


합정 '어반 플랜트'. 단골 삼고 싶은 동네 카페를 발견하는 재미란! 동네에 내가 사랑하는 공간이 많아질수록 일상에 대한 만족감은 커진다.


저녁 시간은 지나가고 출출해 '당고집'으로 발을 옮겨 디저트를 먹었다. 친구는 이제 광화문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서너 평 되는 찻집을 발견했다. 보이차 전문점 '다정(茶鼎)'. 주인장이 직접 차를 따라줬다. 재작년에 자리를 옮겨 이쪽으로 왔다고 한다. 대로변에 있는데도 오늘 처음 봤다.


아홉시가 다 돼서 나타난 친구가 가쁜 숨을 골랐다. 짜증보다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 사이 나는 한 눈에 반해버린 카페 하나를 찾았고, 이따금 찾아가는 디저트 집에서 당을 보충하고, 새로운 차 맛에 눈을 떴다.


상수동 '당고집'. 팥당고와 벚꽃당고를 시켰다. 지금이 봄이라고 여기저기서 자꾸 알려준다.


일상이 불만족스럽다 느껴질 때는 우리 동네를 여행해보자. 생활 반경에 내가 사랑하는 공간이 많아질수록 일상에 대한 만족감도 커진다. 내친 김에 옆 동네로 옮겨가 나만의 핫플레이스를 발굴해보자. 일상의 갑갑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다스릴 때 이만한 방법이 없다. 익숙한 공간이 주는 생경함이 꽤 흥미롭다. 특히 나처럼 여행지의 낯섦이 가끔 두려운 인간이 즐기기 좋은 여행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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