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을 괴고 사무실 창밖으로 나무들이 흩날리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소나무 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우수수 노란빛 송화가루가 떨어지고 버드나무 꽃가루가 눈처럼 휘날리는 봄이다. 봄이 와버렸다. 사방을 둘러보니 모든 것이 따사롭고 포근하기만 하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마저 모두 여유로워 보인다. 이토록 모든 것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봄이 오고 말았다.
지난 겨울 잔뜩 웅크린 채 지냈던 나는 봄이 오면 뭔가 달라지길 기대했었나 보다. 길고 꾸준하게 노력해야 하는 일들이 잔뜩인데 한 번의 달음박질로 그 끝에 다다를 수 있는 요행을 바랐었던 것 같다. 숨이 차오르도록 달린 끝에는 결승점이 없었다. 그 앞에 선 나에게 자 이제 다음은 장거리 달리기란다 하며 새로운 바통을 건네주었을 뿐이다.
아마도 봄이 올 때마다 나는 여행을 떠났던가 보다. 아이폰이 그때 그 추억의 사진들을 자꾸만 매일매일 꺼내서 보여준다. 너 이렇게 잘 다녔잖아 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심장이 청개구리처럼 튀어나오는데 그 마음에 자꾸만 불을 지핀다.
그러다 오늘은 어쩐지 잘 만들어진 음식이 먹고 싶어 졌다. 그저 허기를 채운다거나 끼니를 때우는 느낌의 식사가 아닌, 요리를 앞에 둔 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자리가 가지고 싶어 졌다. 한마디로 음식을 잘 만들 줄 아는 누군가가 그 음식을 먹는 누군가의 찬사를 기대하며 만들어 낸 정성스럽게 부려놓은 기교가 있는 그런 요리를 말이다. 취향이 맞는 누군가와 새로운 음식을 앞에 두고 이 음식의 맘에 드는 점에 대해서 끊임없이 얘기 나누던 시절의 나를 상상한다.
오늘은 특별히 점심 회식을 하기 위해 동료들과 외출을 하고 식당 근처에서 비싼 브랜드의 초콜릿 아이스크림으로 그 마음을 달래 보았다. 하지만 어쩐지 마음의 허기는 달래지지 않는다.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들과 도심 속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찾으러 떠나는 작은 여정을 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가. 유난히 나의 소박했던 식도락(食道楽) 여행이 무척이나 그리운 날이다.
정해둔 목적지 없이 오래오래 걸어 다니면서 귀엽고 예쁜 것들을 보며 재잘거리던 때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까닭 없는 행동과 정처 없는 발걸음을 옮기던 때가 그립다. 어쩌자고 여유를 자꾸 잃어가는 걸까.
‘잘’ 해야 된다는 마음이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을 자꾸 뒤로 밀어낸다. 나는 선배라서 나이가 많으니까 등등의 이유로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든다.
내가 나를 과대평가해서 생기는 문제일수도 있겠다. 못하는 건 못한다고 해야하는게 맞을수도 있을거다. 누구도 아닌 내가 스스로에게 채찍과 채찍을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까지 하는 건 기분 탓일까...
쫓기듯 먹어 없애는 음식이 아니라 여유를 찬으로 곁들여 차려진 멋진 식사가 필요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