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를

돌아가는 발걸음이 조금도 아쉽지 않다.

by 심지연



마음의 시간 따라 인생을 흘러가듯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센소지에서 두 손 모아 빌었던 소원은 이런 거였다. 삶이 내가 원하는 모양 따라 흘러가기를, 원하지 않는 삶이 눈앞에 나타나도 실망하지 않고 나만의 방식대로 헤쳐나갈 수 있기를 빌었다. 그럴 수 있는 용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도쿄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퍼펙트데이즈>를 도쿄에 오기 전 지인들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다. 영화는 도쿄 화장실을 청소하는 청소부의 일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잔잔하게 이어진다. 배경엔 지금 가려는 스미다 강, 스카이 트리도 나온다. 다른 흥행 영화와 다르게 이 영화엔 큰 갈등이랄 게 없다. 다양한 감정 변화가 드러나지도 않는다. 다 보고 나니 싱거운 감정도 든다.



처음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땐 높은 평점이 설득되진 않았다. 그런데 집에 오고 나서부터 계속 잔잔하게 영화 생각이 났다. 이른 새벽 골목길을 청소하는 빗자루 소리를 알람 삼아 일어나던 주인공, 책과 lp와 같이 여전히 아날로그를 사랑하고 남들에겐 ‘고작’ 화장실 청소일지 몰라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성실한 히라야마.



좋은 영화라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삶이 내게 지금보다 더 나은 걸 내어줄 생각이 없다는 건 알겠고, 나는 어디에 희망을 걸어야 하지? 누군가는 정답을 알 것 같은데, 직장을 관두고 혼자 끙끙 앓던 때였다. 정답은 영화 속에 숨어있었다. 그건 자신의 생을 구석구석 관찰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개인의 몫이라는 것을. 따지고 보면 별거 없어 시시한 비밀을 영화에서 보여준 것도 모르고.



스미다 공원에 도착해 스카이 트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다. 음악은 당연히 <퍼펙트 데이즈>에 나왔던 올드팝 리스트. 비가 그친 직후라 나밖에 없는 공원을 하염없이 걷다 음악의 클라이맥스가 나올 즈음엔 압도적으로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행복한 순간은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게 분명하다.



강가를 따라 한참을 걷다 다리 위로 올라와본다. 스미다 강의 다리는 한강의 다리보다 더 촘촘하다. 한눈에 봐도 여러 개의 다리가 보인다. 다리 너머 다리. 반대편으론 희미한 지평선이 보이고 이제 막 맑아진 하늘 위 그라데이션 구름이 뭉게뭉게, 저 멀리 바다다! 영화 속 나왔던 이 다리 위에서 히라야마가 조카와 나누던 대화가 생각난다. 나중은 나중이고, 지금은 지금! 나는 오롯이 벅찬 기분을 가진다.



다리를 오가며 충분히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강가와 멀어진다. 감동의 순간을 여러 번 마주하고 나니 진이 빠진다. 마지막 밤은 조촐하게 작은 이자카야에 들어가 맥주 한 잔을 시킨다. 맥주잔 사이로 스미다 강을 떠올린다. 결국 나의 여행은 풍경보다는 마음을 걷는 일이었다. 정답 같은 걸 찾으려고 떠나온 여행은 아니었지만, 이전과 다르게 덜 헤맬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조금도 아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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