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리아이야기
“힘들어지면 언제든 돌아오세요.”
“이네트. 네가 내겐 가장 처음 진실을 알려준 이였어. 나는 그걸 잊지 않을 거야.”
디아리아는 엄마인 이네트와 리아가 서로의 눈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봤다.
“디아리아!”
리아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못 들은 척했다. 언젠가 아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태생부터 귀족인 사람은 절대 아래에 오래 머물 수 없어. 리아는 언젠가 자기 자리로 돌아갈 테니 그녀와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해.’
어쩌면 아빠의 말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리아는 다른 귀족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닐지도.
“디아리아, 어째서 못 들은 척하는 거야?
”
디아리아가 머뭇거리는 사이 리아가 디아리아의 곁에 다가와 앉았다.
“어디로 가?”
“멀리 가지 않아. 혹시 로즈 보육원 알아? 거기 원장인 플레아의 집으로 갈 거야.”
“거기서 뭘 하는데?”
“그림을 그릴 거야.”
“그건 여기서도 할 수 있잖아. 이제 여기서 날 가르치는 게 지겨워졌어?”
“아니야, 디아리아. 그렇지 않아. 여기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가는 거야.”
“여기서도 그림을 그리고 나와 언니를 가르쳤잖아. 그건 일이 아니야?”
“디아리아, 난 너희 가족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지 못해. 내가 2층의 다락을 차지하는 바람에 집이 좁아진 것도 알고 있어. 게다가 방세도 내지 못했고 그림도 한 점 팔지도 못했는걸.”
“그럼 우리 약속은?”
“기억하고 있어.”
“리아가 다시 귀족이 되어도 나와 같이 여행을 갈 거야? 날 데리고 용이 날고 여자도 기사 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는 그 나라에 가줄 거야?”
리아가 디아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확인받지 않아도 돼. 내게도 그 약속은 아주 중요해, 디아리아.”
“만일 내게만 중요한 거면 어떡해? 새로운 곳에서 리아가 새로운 사람들과 만든 약속이 더 중요해질 수도 있잖아.”
“디아리아,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네가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도 나와한 약속이 여전히 중요하길 바라.”
“당연해. 난 꼭 리아와 그 나라에 가고 싶어.”
“어쩌면 나 대신 함께 가 줄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어.”
“아니. 난 그런 친구는 필요 없어. 내게 다른 나라가 있다는 걸 확인해 준 건 리아였으니까.”
“영광이야.”
디아리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디아리아, 알지? 네 엄마가 누구보다 널 사랑한다는 걸. 네 엄만 아주 강한 사람이야. 나보다도 훨씬 더. 기사가 되기 전에 엄마에게서 배울 게 많을 거야.”
“하지만 엄마는 그런 나라가 있다는 걸 믿지도 않는걸. 난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
“네 엄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자기가 가보지 않은 길을 네게 권할 수 없는 거야.”
“엄마는 겁쟁이라 떠나지 못한 거야.”
“아냐.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해서 떠나지 못한 거야.”
“그건 핑계야. 그냥 무서운 거야. 새로운 곳이.”
“디아리아, 모두는 새로운 곳을 두려워해.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성에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네 엄마 덕분인걸. 만일 네 엄마가 이곳에 와도 좋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난 평생 홀로 그 성에 갇혀 살았을 거야. 네가 훌쩍 떠나면 엄마는 아주 많이 슬플 거야. 그러니 그동안 잘 해 드려.”
“리아가 내 엄마였으면 좋겠어.”
“오, 디아리아, 난 널 이렇게 키울 수 없었을 거야. 난 내 몸도 돌보지 못했는걸.”
“그래도 날 이해해 줄 거잖아.”
“널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야. 그냥 널 너무 걱정하는 거야.”
“아빠도 그런 얘길 해. 지겨워 그런 이야긴. 로즈 보육원에 가면 리아를 만날 수 있어?”
“물론이야.”
“자주 갈게. 대신 리아도 자주 와야 해.”
“물론이야, 디아리아.”
리아는 디아리아가 만족할 때까지 약속의 말을 반복했다. 디아리아를 보며 이네트의 또 다른 모습을 상상해 봤다. 어쩌면 이네트 역시 어렸을 때 이런 상상을 하지 않았을까. 이네트의 환상이 디아리아가 되어 태어난 건 아닐까.
리아는 귀족이 아닌 자신을 품어준 이네트의 집을 마음에 담았다.
누군가의 호의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이네트가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리아는 자신을 믿어 준 사람들의 마음을 품고 보육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