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타인의 창밖을 같은 시선으로 보는 것
버지니아 울프는 다른 사람의 글을 볼 때도 무심코 글쓴 이가 창가에 서 있다고 상상하며 읽었다고 한다.
타인의 창밖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하늘과 구름과 태양이 있었을 것이다.
난 일상의 호흡처럼 글을 쓰다가 문득 타자가 숨쉬는 것을 보고 싶을 때 여행을 떠난다. 타인이 바라본 자리에서
창밖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상하지 못하고 무작정 떠남을 결정한 건, 떠나기 불과 일 주일 전이었다.
머뭇거리면 또다시 기회는 도망간다. 손자병법의 '졸속이 지완을 이긴다'는 말도, 준비가 완벽하지 않아도 주춤하기보다 일을 저지르는 편이 나은 것이다. 이번 여행도 그냥 저지름이다.
남유럽의 도시로, 시간이 멈추는 곳.
내가 사는 베를린처럼 영욕의 과거와 멈춤의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다. 유럽 땅 대신 대서양의 광활한 바다로 눈을 향했던 과거의 그들. 그들의 후예는 조상이 남긴 흔적 속에 안온히 멈춰 있다. 때로는 역사의 맥박이 뛰지 않아 더 고요한 땅이다. 나에게 리스본의 인상은 작은 슬픔보다 큰 슬픔이 많은 느낌이다.
세네카가 말했다.
"작은 슬픔은 말이 많지만 크나큰 슬픔은 말이 없는 법이다"
리스본 사람들은 도시를 뒤흔든 지진과 독재정권의 칼날을 경험했다. 크나큰 역사의 슬픔 속에서 실어증 환자처럼 시대의 후미진 곳으로 물러났다.
인생의 신호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그것은 네,라는 법을 배우면 된다고 어느 글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당분간 맞닥뜨린 일에 '아니오' 대신 '네'를 선택하면 된다. 그것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고 지평을 넓히게 한다. 운명이든 우연이든 경험은 기회를 만든다. 그래서 모든 일에 '네'라고 해야 한다고. 나의 개똥철학이다.
여행지에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할 필요도 없다. 그건 어쩌면 고단한 삶에 희망고문이다. 그저 파티마(운명)적 삶에 순응하고 이 시간을 떠나는 것이다. 떠나고 싶을 때 '네'라고 응수하며 신발끈을 매면 된다.
이번 여행은 딸들과 함께다. 온 가족이 떠나는 여행에서 항상 남편이 진두지휘했는데, 이번에는 그는 집을 지켰다. 대신 다 자란 아이들이 선두에 섰다. 딸1호는 숙소를, 딸2호는 항공편을, 나는 리스본의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로 했다. 어쨌든 준비하는 시간이 가장 기대되는 순간이다. 여행에서 기다림은 늘 긍정적이니까.
당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짐을 쌌다. 나는 여행에서는 꼭 필요한 것만 챙기고 간소하게 꾸린다.
많은 짐은 현재 있는 삶을
다시 지고 간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되도록 모든 걸 가볍게다. 속옷과 한두 벌의 겉옷, 중요한 건 책!
먼저 집안의 묵힌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어제 쓰다 만 글을 마무리했다. 여행기간 동안 다시 한 번 수정해야 한다. 그동안도 글쓰는 삶이었지만 무언가의 제동이 없으면 난 그저 게으름 속에 방만한 삶에 빠지기 일쑤다.
내가 없는 동안 남편이 먹을 미역국을 한 솥 끓여놓았다. 미역국 냄새가 부엌 한 가득 퍼진다.
참기름을 끼얹으려다 보니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끼고 아낀 참기름, 비우면 채워지는 기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참기름은 나에게 늘 고향이자 그리움이다.
한국 방문시 가족이 구해준 진짜, 참참 참기름을 아끼고 아껴서 먹었는데 결국 끝은 오고야 말았다. 반찬은 남편이 그때그때 사먹거나 만들어 먹겠다고 하니 굳이 만들지 않았다. 괜히 만들었다가 사나흘 냉장고 안에서 천덕꾸러기가 되기 딱 십상이다.
집에서 공항까지 지하철로 1시간 30분 정도다. 베를린에 새로운 국제공항이 들어서면서 집과는 더 멀어졌다. 물론 시내를 관통하는 지역열차를 타면 지하철보다 조금 더 빠르다.
공항까지 가는 동안
딸들과 <리스본의 야간열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딸1호는 이 책을 독일어 원서로 읽었다.
약간의 번역의 오류인지, 아니면 우리 기억의 왜곡인지 서로의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었다. 원서는 작가가 고대어 교사 출신이라 문장 호흡이 길다. 번역자가 상당히 고역이었겠다 생각했다. 아마도 문장이 긴 라틴어에 익숙한 작가의 스타일일 것이다.
리스본 도시에 대한 설명 보다는 철학적이고 의미지향의 소설이기에 깊이 사유할 수 있는 책이다.
리스본으로 향하는 비행기 게이트.
게이트 가는 길에 면세점에는 저렴하게 고급향수를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지난 번 한국행에서도 보았던 터다. 워낙 향수에 진심인 터라 2개를 샀다. 두 개 합해서 40유로였다. 한 개는 딸들에게 쓰라고 건넸다.
게이트에 앉자, 여행객들의 들뜬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표정을 읽는다.
그들의 움직임,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감정을 핸드폰 노트에 적는다.
그들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비행기에 오르는 것일까? 고향인 리스본을 향할 수도 있고, 연인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고 우리처럼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정 선생과 3월 9일에 있을 영화제 행사에 대해 통화를 했다. 비행기 수속시간이 다가오도록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딸들이 눈치를 주고 게이트의 직원이 빤히 쳐다보는 통에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난 비행기를 탈 때마다 비행기 안에서 무슨 책을 읽을지에 더 신경을 쓴다. 이번 여행에서는 비행기 안에서만 읽을 것이다. 여행지에서는 그곳의 풍경과 도시의 내용에 전념할 생각이다. 모든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의 내용이다. 우리는 여행자이기 전에 여행 그자체이기 때문이다.
비행기 내에 자리를 잡자, 읽을 책을 꺼내들었다.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를 챙겨왔었다. 3시간 짜리로는 충분한 책이다. 하지만 곧바로 책을 펼치지 못했다. 마음이 다시 복잡해졌다. 올해 해야 할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올해도 나름 분주한 시간이 될 것이다. 이륙과 함께 베를린의 삶은 깊숙이 지상 아래로 밀쳐낼 것이다. 여행지에서는 그곳에 집중하자!
여행의 시작은 비행기 탑승에서 시작된다.
비행기가 상승할 때 내는 굉음과 막 이륙했을 때의 뭉클함.
딸이 옆에서 내 옆구리를 찌르며 말한다.
"엄마 설레죠?"
"아니, 넌 설레니? 아직 애기구나!"
"네, 여행의 시작이잖아요"
비행기 타는 일이 피곤하다면 이미 어른이 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난 고집한다. 그런면에서 스무 살 딸은 아직 애기다. 애기가 수긍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비행기가 굉음을 울리고 달리기 시작한다. 상공으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비행기.
창문 밖으로 옆 날개가 보인다. 배가 간지럽다. 기체가 흔들린다. 문득 스쳐지나간다. 최근까지 일어났던 비행기 사고 소식들이 뉴스 스크랩처럼 뇌리에 멈춘다. 가만히 두 손을 모은다.
비행기 탈 때마다 드리는 기도다. 비행기를 타면 긴장한다기 보다 삶에 겸허해진다. 지상의 모든 것들이 한낱 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시 비행기가 착륙해 일상으로 돌아오면 점은 거대한 우주가 된다.
비행기 아래로 떠나온 베를린이 보인다.
나는 지금 일상을 떠나고 있다.
그때 갑자기 기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P.s 다음 호 내일 올립니다. 휘리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