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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케잌은 중년에 먹어야 진짜 그 맛을 안다

위대한 엄마, 은아를 만나다

by 연강작가

오랜만에 만난 은아는 화사하게 변해 있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내노라하는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남편 직장 따라 독일에 왔다. 석사를 마치고 정부 출연기관에서 근무한 그는, 남이 채워줄 수 없는 자신만의 자부심으로 가득한 여성이었다. 성격도 쾌활하고, 적극적이었다. 남편도 관운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가정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아이의 자폐적 성향이 두드러졌고, 은아는 엄마로서 힘든 시간을 지나왔다.

벌써 15년 전이다.

당시 나와 은아를 포함해, 여성 셋이 모임을 만들었다. 부모교육 스터디였다. 일 주일에 한 번씩 만났다. 두 여인 모두 인텔리한 면모를 지녔다. 두 사람의 배우자는 옛날 말로 벼슬아치들이었다. 모든 면에서 고상하기 그지 없는 마나님들이었다.

당시 그들은 평범하지만 제법 똑똑한 딸들(순전히 그들의 평가지만)을 키우는 나를 부러워했다. 사실 나는 그들이 부러울 때가 더 많았다.

국제학교를 보내는 그들의 씀씀이도 그렇고, 여름이면 호화로운 여행을 떠나는 것도 그랬다.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자녀들 문제는 쉽지 않았다. 그들 중 은아는 아이가 정서적 장애를 가졌다. 또다른 여성은 남편이 아주 힘들게 해 이혼 위기에 있었다.

어느 가정이나 삶의 가시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나 또한 늘 병원을 들락거리는 체력에 남편 또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우리 셋은 테마는 다르지만 동병상련처럼 스터디를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공감했다. 3년 정도 모임을 지속하다 그들 중 한 명이 다른 나라로 이주하면서 자연스레 모임은 이어지지 못했다. 물론 전화나 카톡으로 소통은 계속되지만 그때의 끈끈함은 추억으로만 존재하게 되었다.

은아는 최근 6개월 여 인근 유럽에서 개최된 연구연수를 끝내고 돌아왔다. 그동안 세월이 순식간에 우리를 할퀴고 갔다는 것을 느꼈다. 지난해 잠깐 전화 통화를 했던 게 마지막이었다. 아이들이 벌써 대학을 갈 나이가 되었다는 그녀는 지나간 시간에 대해 울먹이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장애 아이를 두고 남편과 이혼할 뻔했다는 위기의 순간도 있었단다. 견디어낸 자신에게 칭찬해달라고 했다.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정말 잘했다고, 말해주었다. 남편이 이제 자신을 존경한다는 말을 했다며 웃었다. 우리는 모두 늙었다며 또 웃었다.


며칠 전 이른 아침, 나는 남편과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했다. 안그래도 약속시간에 늦었는데 청소차가 턱 버티고 있는 것이다. 청소차가 비켜주기를 기다렸는데 조롱하듯이 그대로 서 있다. 짜증이 확 밀려왔지만 남편이 '그럴 수도 있지. 다른 데로 돌아서 가자'고 하는 것이다. 그래, 화를 내는 건 건강상 나에게 좋지 않아. 그래서 후진을 해 다른 길로 나섰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 좁은 골목길에 주말 행사가 있는지 바리케이트를 쳐놓고 막고 있었다. 머리에 스팀이 나올 뻔한 것을 워워,하고 열기를 내렸다. 이미 예정시간도 늦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도 남편은 '그래, 어차피 늦는 건데 편하게 생각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운전은 그가 하는데 오히려 느긋한 게 신기했다. 그에게서 오랜 고통의 시간을 보낸 자의 '내려놓음'이 느껴졌다. 나또한 전염이 되었는지, 돌아서 가는 길에 입에서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특이하게도 돌아오는 길은 더 즐거워졌다.


문득 도로의 상황을 지켜보며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은 일이 얼마나 많은지, 나이들수록 더 실감한다. 더불어 행복은 불행없이 그 자체로 느끼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 없이 삶을 들여다볼 수 없듯이 말이다.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은 중년이 들어서면서 더 실감하게 된다. 오늘 나에게 부딪혀 오는 것에 거스르지 않고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반응할 때서야 상황은 고삐를 느슨하게 푼다.



은아는 블랙의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우아하게 웃고 있었다. 그에게서 따스하고 다정한 여유가 느껴졌다. 장애를 가진 아들을 십년 이상 기다려주고 마음을 쏟은 그에게 달디 단 열매가 기다렸다. 그 아이가 대학입학 자격시험(아비투어)를 우수한 성적으로 치르고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스터디 할 때마다 그 아이 때문에 눈물을 흘렸던 것이 생각난다.

드라마틱한 해피엔딩이 아니라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겠다는 말도 기억난다.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 다행스런 운명이 다가올 수도 있다. 우리 둘은 지천명,이라는 말을 나누면서 삶이 어느새 이해된다는 말을 나눴다. 중년은 힘든 젊음을 보낸 자에게 주는 행복한 시간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우리 앞에 놓인 치즈케잌이 달지도 않고 맛나다. 중년에 먹어야 진짜 맛을 안다.

단 것을 조절하는 나이가 되었는데, 맛나다니 삶이 참 살아볼만하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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