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퍼웨이브(Vaporwave)는 비주류 음악장르 중 하나인 칠웨이브(Chillwave)에서 파생된 좀 더 캐주얼한 버전의 미학으로 알려져있다.
칠웨이브는 lo-fi 레트로 팝의 한 부류다. 대략 2009년 경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암울한 미래를 피해 과거로 도피하려는 문화현상 중 하나로 등장한 음악이었다. 레트로풍은, 메이저의 음반판매가 상대적으로 부진해지고 신디사이저와 오디오 장비가 대중화되면서 독립음악이 부상하고 사람들의 취향이 세분화되던 시대적 흐름과도 맞물린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80년대풍의 덜 다듬어진듯한 전자(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정신적 위안을 찾는 사람들에게 어필했다.
베이퍼웨이브는 80년대를 그리워하는 2000년대 경향인 이 칠웨이브에서 영향을 받아 발전된, 좀 더 세분화된 일렉트로닉 장르다. 대부분의 vaporwave 사운드는 상업적으로 사용되다 버려진, 혹은 오랫동안 잊혀진 80-90년대의 음악을 샘플링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엘리베이터 뮤직(라운지에 깔리는 백그라운드 음악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장르인 muzak과 TV, 광고, 비디오 게임 샘플 등이 한데 뒤섞인 듯한 미학이 특징이다.
인스타그램 #vaporwave 이미지
시각적으로는, 인위적이거나 획일적인 것에 대한 반발로 8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멤피스 디자인의 원색적인 컬러감과 분열적인 형태에서 영감을 받았다. 80-90년대 미국 교외지역 중산층의 여유로운 삶을 떠올리게 하는 바랜 빈티지 휴가사진, 네온 야자수, 폴라로이드 색조로 대표된다. 약간 바랜듯 파스텔톤으로 조정했지만 더없이 화려하다.
미래적인 디지털 감성으로 표현된 레트로 미학에, 극도로 상업적이지만 황폐한 뒷골목 분위기를 풍기는 이 혼란스러운 조합은 마치 네비게이션 안내 목소리처럼, 친근한 성우의 목소리에 억양이나 감정이라곤 전혀 들어있지 않은 어색한 기계음을 듣는듯한 불균형을 보여주는데, 이런 불협화음이 Vaporwave의 특징이라고 한다.
vaporwave 미학의 패션을 판매하는 쇼핑몰 이미지
80년대와 90년대 TV와 광고, 구식 그래픽 미디어 아트를 재료로 사용하다보니, 매우 상업적인 요소들이 혼합된 키치적인 감성을 갖는다.
원래는 광고와 마케팅 미디어, 소비문화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획일적이고 상업적인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그늘에 반발하는 태도로 생겨났지만, 태생적으로 키치적인 성격때문에, 음악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밈과 비슷하게 패러디로 소비되면서 점차 의미가 퇴색됐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베이퍼웨이브의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죽은 트렌드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팬데믹의 우울한 배경 속에서 둔탁하면서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러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허무하고 미래적인 전자음악 감성의 베이퍼웨이브가 그 기원에 익숙하지 않은 Z세대들에게 새로움으로 다시 소비되는 중이다. 모던과 레트로가 공존하고, 픽셀과 하이퍼리얼리즘이 대비되면서 낯설면서도 친근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한편, 한동안의 억눌렸던 심리가 분출되면서 부상하고 있는 맥시멀리즘의 흐름과도 맞물리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