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형 할인마트에서 덕용으로 사들인 수많은 생활용품들이 집안 곳곳을 빼곡히 차지해 터져 나갈 것 같은 상황에 일본의 정리 여왕 곤도 마리에가 넷플릭스에 등장하면서 미니멀 라이프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때가 있었다. 당시 미디어에서는 'Declutter'를 외치며 정리정돈을 소개했고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그 유명한 말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곤도 마리에가 등장하는 넷플릭스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지금도 미니멀리스트 트렌드는 진행형이다. 필자의 경우는 코로나 이후 가족들이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늘어나게 되면서 부쩍 더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로망이 커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필자의 로망 미니멀 라이프
하지만,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동경이 커질수록 신기하게도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미니멀한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잔소리가 늘어야 했고, 정리정돈이 된 그 완벽한 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늘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소셜미디어에서 잡다한 물건들로 공간을 어수선하게 꾸미는 #cluttercore를 접하고 필자는 나 같은 사람들이 꽤나 많았던 모양이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이 #cluttercore는 틱톡에서 1,300만 회 이상의 조회수, 인스타그램에서 7,000개 이상의 멘션을 기록했다고 한다.
틱톡의 cluttercore 이미지
BBC Culture에서는 이 클러터코어를 다루면서 장난감과 다채로운 책, 엽서, 도자기 등 온갖 잡동사니와 골동품으로 뒤덮인 스페인 예술가 Juanjo Fuentes의 집을소개하고, 이런 잡다한 물건들의 홍수가 오히려 포근하고 보호받는 편안한 느낌을 전달한다고 얘기한다. 온갖 패턴과 컬러가 충돌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듯한 혼돈의 상태가 나의 소유물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는 그 어느 때보다 창의적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시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공간이 있다. 코펜하겐에 위치한 The Apartment라는 갤러리가 그곳이다. 마치 개인 아파트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어있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구입할 수 있는 팝업 매장이다. 빈티지한 포스터들의 무질서해 보이는 듯한 조합, 컬러풀한 유리 샹들리에, 다양한 컬러와 패턴의 패브릭들이 충돌하고 있지만,(독자분들도 느끼시겠지만)왠지 모르게 정감이 가는 노스탤직한 이 분위기가 참으로 묘하게 매력적이다.
코펜하겐의 The Apartment 팝업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우리의 삶을 굉장히 많이 변모시키고 있다. 간만에 너무 오랫동안 복작거리는 집안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미니멀 라이프를 동경하는 듯하지만, 사실 어떻게 해도 카오스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우리가 가진 물건들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혼돈 속에서 오히려 인간적인 편안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