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인 우리 사이의 적당한 경계와 존중
결혼 후, 엄마와의 갈등이 극에 달한 적이 있다.
그 어색한 공기는 수년간 이어졌다.
일단 서로에 대한 실망이 컸다. 엄마도 소심한 편이고 나도 마찬가지라, 직접 말은 못 하고 에둘러 공격하니 아픔은 더 오래갔다.
우리의 관계가 어떤 의미로든 특별한 줄 알았다. 그러나 갈등이 최고조였던 시기, 상담을 받다가 이런 상황이 흔하다는 말에 놀란 적이 있다.
오히려 내가 엄마를 떠나지 못해 문제라는 지적에 충격을 받았다. 물리적 거리를 조금이라도 두고, 필요한 만남이 아니면 줄이기로 했다.
서로 보지 않으면 좋을까 싶은 날도 많았다. 그러나 고개를 드는 걱정은 늘 하나였다.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지?'
돌아가신 뒤엔 늦는다는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적절한 경계를 지키는 일도, 연습하면 될 줄 알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엄마를 만날 때마다 표정을 잃었다. 감정을 드러내면 갈등이 따라오니 위험 방지 차원이었다. 무표정한 만남은 매번 긴장되고 불안했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를 몇 달에 한 번은 만난다. 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상황을 친구가 겪고 있다면, 나는 뭐라고 해줄까?'
"힘들었겠다, 너도 그럴만했지. 아무리 가족이라도, 선 넘는 행동은 미운 게 당연하잖아."
나는 왜 친구에게 하듯 자신에게 다정하지 못할까. 스스로가 미련하게 느껴져 한심하고 서러웠다.
그날 저녁, 엄마와 식사를 하는데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 건강이 안 좋아서 환갑잔치 꼭 해줘. 오래 못 살 것 같으니까."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화가 났다. 엄마가 안쓰러워야 했을까? 매번 '난 약하니까 더 잘해줘'라는 듯한 뉘앙스가 버거웠다.
아프실까 봐, 혹여 돌아가실까 두려움에 떨던 자리에 분노가 들어섰다. 그 순간엔 아무 말 안 했지만, 잠자리에 누워서도 속이 불편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두 명의 엄마가 있었는데, 모습은 같았으나 표정은 딴판이었다. 한 명은 어릴 적 따뜻했던 엄마, 다른 한 명은 지금의 엄마였다. 두 번째 엄마는 괴로움만 주어 힘들었는데 어느 날 돌아가셨다.
꿈이라 그랬겠지만 솔직히 슬프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엄마는 그대로 있으니까. 장례식장에 찾아가 조문을 하는데 엄마의 지인들이 나를 붙잡고 말했다.
"왜 이제야 왔어!"
그제야 엄마는 한 명이라는 것을 깨닫고, 펑펑 울며 잠에서 깼다. 깨고 나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 역시 어린애구나.'
무의식은 아직도,
날 돌봐주던 엄마만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두 엄마가 사실은 하나였듯, 엄마도 사람인데 여러 면이 공존하는 게 당연하다.
누군가의 자녀로 태어나, 친구도 사귀고 결혼을 하고. 그 뒤에야, 엄마가 된 거다. 알고 있었는데도 새삼 크게 와닿았다.
엄마라는 정체성은 그녀의 한 조각일 뿐이었다.
아직도 엄마와의 만남이 편하지만은 않다. 그래도 만나지 않는 것보다는 마음이 놓인다.
내 아이가 나를 불편해한다면 어떨까. 후회가 남더라도, 차라리 미울 땐 그냥 미워해야겠다. 그래야 좋을 때도 마음껏 좋아하고, 감사나 사랑 같은 것도 온전히 할 수 있을 테니까.
엄마에 대한 미움, 사랑, 감사 같은 게 내 안에 다 있다. 억지로 하나 뺄 수도 없다.
힘들어도, 서로에게 필요한 존중과 경계만큼은 지키고 싶다.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어리석어도,
지금의 나에겐 이게 최선이니까.
표지,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