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앙리의 전시회에 가다.
아이가 지금보다 어릴 땐 나만의 시간이 생기면 설레기만 했다.
영화를 볼지 드라마 정주행을 할지 행복한 고민이 이어졌다. 함께 하는 시간은 축복임이 분명한데, 종종 자유나 고독 같은 게 그리웠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자랄수록 점점 친구를 찾기 시작하자, 왠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그러던 와중에 생겨버린 혼자만의 시간. 기대는 어디로 갔는지 심지어 약간 막막했지만, 애써 기분을 끌어올렸다.
'잘 없는 기회야, 최대한 신나게 보내고 싶어!'
가까이 사는 친구가 별로 없다 보니 갑자기 전화해서 만나자고 할 수도 없었다. '지금 당장'이 필요했다. 쓸쓸한 느낌이 자꾸 침범하는 게 영 거슬렸다.
'전시나 보러 갈까?'
생각해 보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어느새 차분해지곤 했다. 작품을 한참을 들여다보거나 괜히 내 인생을 비추어가며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내 안에 파도가 잔잔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플로 전시회를 살피다, 대중교통 두어 번으로 갈 수 있는 갤러리를 선택했다. 내 취향의 유화였지만 아주 궁금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당장의 환기가 필요했으므로 일단 시외버스표부터 샀다.
혼자 가다 보니 차림새를 신경 쓰지 않아 외출 준비도 금방이었다. 충동적으로 예매한 시간에 맞춰 급히 터미널로 향했다
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혼자 그림을 보러 다른 도시까지 가다니, 내가 그렇게나 그림에 조예가 깊었나?'
처음이었다. 주로 가족이나 친구랑 갔었고 솔직히 자주도 아니었다. 일을 하다 너무 힘들면 명화와 클래식이 나오는 영상을 틀어 놓기도 했지만, 고작 몇 번이었다.
왠지 괜찮은 내가 된 기분으로 내린 뒤 시내버스를 타러 갔는데, 교통카드가 없었다. 모바일 교통카드도 죄다 유효기간 만료였다.
폭염인 날씨에 그림 하나 보겠다고 왜 이리 서둘렀는지. 한참을 씨름하다 겨우 도착했지만 마음은 아직 흔들리고 있었다.
입장하기 전, 화장실에 들어가 안색을 살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향긋해 보이는 핸드워시로 손을 씻었다. 조금 나아 보였다.
무료로 대여한 오디오 도슨트를 목에 걸고 천천히 입장했다. 첫 작품은 강렬한 빨강으로 가득했다. 오디오 도슨트의 인사를 들으며 그림 속 투명한 화병을 바라보니 서서히 잘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씩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도슨트의 설명과 제목에 내 주관적 해석이 더해지자, 어떤 그림은 깊은 위안이 되었고, 그림 자체가 감동인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캔버스에 그려진 '꽃'이 세상에 온기를 더하는 듯했다. 꽃이라는 건 공간을 밝히긴 하지만 일상적이다. 하지만 미셸 앙리가 그린 꽃은, 뒤에 놓인 풍경이 더 유명해 보이는 데도 뭔가 달랐다. 유럽의 랜드마크나 아름다운 자연을 뒤로하고도 존재감이 대단할 뿐 아니라, 오히려 풍경을 물들이고 있었다.
꽃 하나만으로 세상을 물들인다는 감각이 나에게는 신선했다. 이미 충분히 아름답거나 초라해 보이는 풍경에서조차 몇 송이의 꽃으로 가능했다.
유치하지만 내 마음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무채색 같은 일상을 따뜻한 기운으로 물들일 수 있다면...
언젠가 TV를 보다 장수 아이돌 그룹이 나오는 여행 예능을 본 적이 있다. 리더는 잠든 멤버들을 보며 가만히 이불을 덮어주고는, 다음날 먹을 수 있게 가방에 간식을 넣어 두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분명 잔잔한 행복이 서려 있었다.
그의 시선은 마치 앙리가 그린 꽃 같은 게 아니었을까. 나 역시 잠든 아이의 다음날을 응원하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은 남편의 바쁜 날들도.
손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친정엄마를, 남편을, 아이를, 때마다 시부모님까지 챙기는 나인데 '나'는 누가 챙기고 있지? 물론 가족들도 나를 챙겨줄 때가 많지만 불균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로를 보살피는 생활 속에서 정말 행복했던 건 누구였을까. 사랑과 배려를 받는 건 기쁜 일이지만, 바라는 거 없이 주는 기쁨이 더 컸던 날들도 분명 많았다.
과몰입, 과해석이 주는 여운이 만족스럽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가만히 짚어보았다. 약간은 고독했으나 불행하지 않은, 오히려 넘치게 위로받은 시간이었다. 흐릿해 보였던 일상이 사실은 이미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