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에서 하는 일이 많은 편이다.
저녁에는 뭘 먹을지, 아이는 병원에 갈 정도인지, 그런 건 대부분 내가 결정한다. 놔두면 남편이 하겠지만, 빨리 하고 싶은 사람이 하는 게 편하다.
예전에는 왜 남편은 할 일을 곧바로 안 하는지 답답했지만, 결혼 10년이 넘어가니 성향대로 하자 싶어서 이제는 괜찮다.
그런데 가끔은 짜증이 나기도 한다.
아침부터 빈 속에 콜라부터 마시길래, 물을 마시지 그러냐고 했더니 하는 말.
"물이 있었으면 마셨겠지만, 없어서."
황당했다. 물통에 필터가 있으니, 싱크대에서 받기만 하면 되는데.
그날 오후, 또 뭔가를 애타게 찾으며 날 불러대는 남편에게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
"내가 그거까지 해야 돼?"
남편의 표정이 예상외였다. 어리둥절한 건지, 기분이 상한 건지. 어쨌든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불만을 말한 건 아니지만, 왠지 찝찝했다.
생각해 보면 내겐,
'선택권이 있다는 감각'이 필요한 것 같다.
한 번씩 남편은 '당신이 힘들지 않으면 좋겠어'라고 한다. 그렇다고 집안일을 잘하는 타입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꼭 진심처럼 들린다.
사실 남편은 아주 무던한 사람이다. 알면서도 왜 그렇게 부담을 느꼈을까?
그가 가게에 온 손님처럼 '주문'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바람을 드러냈을 뿐.
혹시 내가 그동안,
'주문하신 상품 나왔습니다.'라고 해왔던 걸까.
어쩌면 내가 전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안경을 못 찾을 때 너무 힘든데, 남편이 매일 찾아줘서 다행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좀 야박했나 싶기도 하고.
아무래도 마음의 여유가 더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는 바쁘거나 부담스러우면,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우리 집이 가게도 아니고, 설령 가게라고 해도 사장님의 휴식은 보장되어야 하니까!
앞으로는 힘들면,
내가 그거까지 해야 되냐고 묻기 전에 알려줘야겠다.
"오늘은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