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춘천을 걷다

고백하지 못한 마음은 여전히 내 마음에 윤슬처럼 반짝이고 있다

by 은빛루하



긴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챙이 넓은 모자를 썼다.


파스텔톤 줄무늬가 들어간 민소매 셔츠에 반바지,


그리고 조금 들뜬 마음 하나.


표는 미리 보내줬고, 그는 청량리역 승강장에 서 있을 것이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간다.


걷고, 닭갈비를 먹고, 더 이상의 계획 없이 그냥 흐르는 대로 있을 참이었다.


그저 함께 기차를 탄다는 설렘.


강변을 걷다 고백할까, 그의 마음은 어떨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아니, 그럴 참이었다.


그래서 그 짧은 여행을 계획했었다.


기차가 출발하고, 바람이 지나가고,


그날의 춘천 여행이 떠올랐다.


그날, 나는 고백을 했던가?


날은 무더웠고, 목 뒤로 땀이 흘렀다.


우린 말없이 걸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어쩌면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었을지도.


나는 자꾸 말을 아꼈고,


하고 싶은 말은 입안에서 맴돌다 흩어졌다.


고백을 꺼내려는 순간마다


여름바람처럼 덥고 후덥지근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와의 여행은 분명 즐거웠지만,


마음은 복잡했다.


나는 그에게


스치듯 지나가는 계절 같은 존재였을까.


그래서 고백은 다음으로 미뤘다.


혹시 모를 거절을,


혹시 모를 어색함을,


차라리 그저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몇 해가 흘렀다.


그날의 여름은 지나갔지만,


아직도 마음 한편엔


그때의 내가, 그가, 그리고 우리가 남아 있다.


사람을 잊는다는 건


그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고,


잠들기 전 마지막 생각 속에


그가 없어야 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잊지 못했고,


아직도 가끔 꿈을 꾼다.


그가 웃는 모습,


함께 걷던 강변의 바람,


무심히 내린 여름비까지도.


그는 여전히 내 마음 어딘가에 머물러 있고,


아무 말 없이,


아무 약속 없이


나의 시간 위를 조용히 지나간다.


가끔은 그의 이름을


소리 없이 불러본다.


텅 빈 방 안에서 혼잣말처럼—


그래도 괜찮다는 듯,


아무 일도 아니란 듯이.


그와 함께 걷던 춘천의 여름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그날의 빛과 온도, 습도까지도


아직 선명하다.


기억은 흐려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건,


나뿐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