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과오
일주일 전에 피싱을 당했다. 보이스피싱. 당했다? 당했다. 몇 달에서 일 년은 벌어서 모아야 하는 현금을 전달했고, 그 외의 것들로도 협박을 당했다. 일주일이나 지났다니.
7일 사이에 날이 풀리려 했고 나는 조금 많이 소심해진 것 같다. 한 가지 행동을 할 때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휴대폰과 이어폰 없이 멍하니 십 분, 십오 분을 보낸다.
괜찮고, 안 괜찮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거듭해 생각한다. 나는 지금 중환자실에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21일. 그리고 그로부터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훨씬 지난 날에야 나는 담당 경찰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제 명의가 도용된 일 같은 건 없던 거냐고.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 때까지도 상황 파악을 잘 못 했던 것이다. 그 때 느꼈다. 나는 아직도 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는구나. 몰랐구나.
질문은 두 가지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어떻게 할 것인지.
내 잔고에서 아주 큰 돈이 사라졌다. 달라진 점이다. 그리고 나는 묻는다. 내일 죽을 거야? 아니면 조금 후? 당장? 대답은 언제나 아니. 아니 이외의 답은 없다.
엄마와 아빠는 꽤 상처를 입었을 것이고 나 역시 그렇다. 사는 게 의미가 있나, 하는 원론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런데 언제는 있었던가. 언제나 없었다. 삶의 의미 같은 건. 그러니까 큰 관점에서 달라진 건 없다. 상실감이 생겨났고 당분간은 나와 가족들의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게 또 달라진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건 파생된 사실인 거지.
달라진 것. 파생된 다른 것은? 노래를 한 곡씩만 반복해서 듣는다. 유튜브의 시청기록 기능을 껐다. 범람하는 쇼츠와 화려한 썸네일이 가득하던 어플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나는 몇 년전의 라디오 방송들을 검색해 틀어놓고 할 일을 한다. 옷을 입고, 설거지를 하고, 방을 치우고, 또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아예 다른 시간대의 매일매일을 담은 그 공간의 왁자지껄함을 듣는다.
열두 시부터 두 시까지 송출되던 방송. 일상적인 주제들. 작은 푸념들. 감동들. 웃음. 또 웃음. 밉지 않은 타박. 또 웃음. 계절과 기온의 변화를 담은 멘트들.
이 집에서 그간 딱히 우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천장 아래서 이렇게 뜬눈으로 오래 누워 있던 적이 없었다.
시간이 무겁게, 그러나 잘 흘러가는 느낌이 몇 년 전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 때 그런 시기가 한 번 있었으나 어찌어찌 지나갔다. 봄이 왔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새로운 사건들이 생겼고, 나는 무언가에 또 감탄하고, 어떤 것을 잔뜩 좋아하게 되었고, 때로는 별 것 없이 똑같은 일상도 힘에 부쳤고, 새로운 취미와 흥밋거리에 마음을 붙이다가 또 떠나보냈고, 그렇게 시간이 갔다.
그 때와는 별개로, 대학교 1학년 때 같다는 느낌도 든다. 갑자기 혼자가 된 기분. 그렇게나 바라던 혼자가 되었으나 나는 지하철과 버스와 강의실과 여하튼 많은 것들을 조금 두려워했고 항상 어느 정도는 위축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그런 상태가 되어 보니 알겠다. 아, 그 때 같구나. 왜 앞으로 가지 못하고 후퇴한 거지, 라고 생각할 뻔했지만.. 이건 그냥 내 생각이니까. 정리했듯, 명확히 바뀐 건 잔고의 돈이 크게 사라졌다는 사실 하나뿐이니까, 이쯤 하기로 한다.
그래도 애써 생각을 억누르려 하지는 않는다. 이 정도의 큰일이면, 그리고 시기가 얼마 안 됐잖아. 사고를 당해서 중환자 치료를 받는 과정인 거다. 이런저런 생각은 당연히 들 수 있다. 하지만 변한 건 그것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려고 한다.
너무 착하게 살았다. 나는 왜 이런 일을 겪고도, 카페나 가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강가에서 이어폰을 낀 채 달리기를 하는 방법으로만 스트레스를, 피로를 풀어야 하는가.
왜 나와 전화를 했던 두 명의 남자와 내게 현금을 받아간 그 중년 여자처럼 더 악하게, 민폐를 끼칠 방법을 생각하거나 실행하지 못하는가. 그들은 종국에는 잡힐 수도 있겠으나 나와 이 주변인들의 손실을 다 보충할 정도로 벌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잘못했으나 충분히 벌을 받지 않는 것이다.
잘못했지만 벌받지 않는 사람들. 그러면 그들은 사실 잘못이 적다는 걸 이 나라에서는 인정하는 꼴 아닌가. 내가 잃은 금액과 앞으로도 안고 살아야 할 불쾌한 기억들, 부모에게 남을 상처. 그게 내가 떠안게 된 대가이며 그들의 처벌이 이것을 상쇄할 정도가 아니라면, 잘못은 누구의 것인가.
왜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이를 또 찾아가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고 상담이라는 명목 하에 상대를 사연을 받는 쓰레기통 정도로 쓴 후 다시 살아야 하는가. 왜. 세상 반대편의 그 사람들은 잘만 지낼 텐데. 잘못은 그들에게 있는 것인데, 왜 엉뚱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 감사해야 하는가. 그들은 무슨 죄인가.
이건 치트키 같은 사건이라고도 생각하려 한다. 나는 사연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옷을 입을 때 까만색이면 대충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꾀할 수 있는 것처럼, 어떻게든 납득이 가게 되는 것처럼. 이건 그 정도의 부피와 존재감이 있는 사건이니까. 나는 얼마간 우울하고 불행해도 되는 사람이다. 좋든 싫든 이 일을 계기로 변하는 것들이 있겠지.
한 친구는 그랬다. 원치 않았는데 겪게 된 일에서 교훈 같은 걸 찾으려 하지 말라고. 그러게. 나도 그러고 싶다. 글쎄. 그런데 그게 아예 큰 사고였다면. 그냥 다 거기서 끝나버린 일이었다면, 내가 이런 상태에서 뭔가 할 일을 더 찾고 그걸 제 때 못한 나를 나무라지 않아도 됐었다면, 안 힘들어도 되는 거잖아. 왜 남아서 또 사는 것까지 내 몫일까.
문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한 가지를 하는 데에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 있다. 달라진 점을 알았고, 죽어버릴 수는 없으니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살아서 할 일을 해야 하는데 진행이 잘 안 된다는 것이 문제다.
누가 나를 아예 조종해 주면 좋겠다.
지금은 그렇다. 당장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