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행복했쥬?
야채타임, 프링글스 오리지널, 쫄병스낵. 쫄병스낵. 쫄병스낵. 뭔가를 좀 사려고 찾아보면 항상 그 품목 빼고 다 있던 그 동네의 다이소의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점은 쫄병스낵 매운맛을 판다는 점이었다. 아파트 뒤쪽의 씨유와 지에스에 불만이었던 것은 안성탕면맛 쫄병스낵만을 취급한다는 점이었다. 아파트 입구의 24시간 무인편의점에서 돈깨나 썼던 건 항상 쫄병스낵 매운맛이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동기와 나는 퇴근 후에 그 편의점의 과자를 양손 가득 사서 바깥을 쳐다보며 자주 앉아 있었다. 콘칩, 쫄병스낵, 더위사냥, 아이스바, 가끔 카라멜 팝콘, 초코송이, 씨리얼, 병동에서 가져온 간식까지.
오늘 있었던 일, 하기 싫은 일, 언제 퇴사하지, 언제까지 하지, 엄마아빠의 근황, 날씨, 맛집, 밥, 집에 가면 샤워는 언제 할지 등등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다음 날도 근무가 같다면, 서로의 퉁퉁 부은 얼굴과 약간 저린 손을 비웃으며 다시 병원으로 갔다.
열두 시가 훨씬 넘은 시각. 달리 갈 곳도, 없는 곳을 찾아갈 힘도 기운도 없었다. 오늘의 억울하고 힘든 마음과 배고픔을 과자와 수다로 풀었다. 쌍욕과 푸념을 섞어 와작와작 짜고 단 것을 씹으며 유리창에 잔뜩 붙은 메모를 읽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했다. 기숙사 계약 기간이 끝나면 어떤 곳이 살기가 나을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토의를 했다. 내가 독감에 걸려 목구멍이 아팠던 날은 깎아놓은 사과를 가져와 먹었다. 그 날 뭔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 안 나고.. 그냥 즐거웠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그 시간들이 소중했다.
입사 초창기를 학생 때 같았다고 느꼈던 건 그 기억 때문일 것이다. 잔뜩 지쳤고 유치했고 시끌벅적했고 조금 답이 없었지만 그 순간만은 행복했다.
나는 쓸데없고 즐거운 것이 좋다.
그렇게 한밤중에 앉아 과자를 모조리 뜯어먹는 그런 일이 좋다. 동기는 꿈이 카우치 포테이토라고 했다. 오프 때 하라고 했더니 그러기엔 시간이 아깝다고 했다. 그렇지. 막상 그렇다. 그녀는 리스트를 적어 전시회와 개봉작이 걸린 영화관과 맛집을 서울 동서남북을 가로질러 도장 깨기 하듯 다닌다. 나이트 근무가 끝난 후 두 시간을 자고 수영을 가고 스쿼시를 배우고 발레핏 (발레와 필라테스의 합성이라고 한다)을 간다. 진정한 '갓생'이 아닐 수 없다. 카우치 포테이토는 개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달리기와 글쓰기를 선택했지만 사실은 더 힘을 빼도 되는 일들을 하고 싶다. 즐겁게만 하자고 생각했던 뜀박질은 날이 추워져 기록이랄 게 점점 안 나왔고, 쓰면 뭐라도 될 줄 알았던 (대체 뭐가?) 글쓰기는 별 것도 없었다. 별 것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빠뜨려 먹으면 우스운 꼴이 되니까 어떻게든 쓴다. 이제 그 둘은 즐거움보다는 단련 같은 것이 되었다. 한다고 뭐가 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안 하면 서운한 것. 어쨌든 부족해지는 것. 가벼웠던 마음에는 자꾸 욕심이 생겼으며, 마음이 행동을 앞섰을 때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난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올해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적었는데, 몇 안 되는 것들 모두 목표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나는 더 잘 놀고 싶은데 생각나는 게 없었다. 저렇게 군것질을 잔뜩 하던 시간을 빼면 떠오르지가 않는다. 지금은 비록 과자를 끊고 있지만, 정말 기특하게도 2주가 (헐!) 다 되어 가며 그 부작용으로 고구마와 프로틴 스낵과 밥을 잔뜩 먹고 있지만.. 그래서 이제는 예전처럼 그렇게 앉아서 이런저런 바삭하고 짜고 단 것들을 아무 생각 없이 우적거리지 못하지만.. 그래도 즐겁고 바보 같은 짓은 더 많잖아. 시간낭비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
목표와 성과 없는 즐거운 일이 뭐가 있을까? 난 뭘 해도 늘 그 일의 실효성을 찾고 결론을 내리고 되지도 않는 개똥철학을 쌓았다. 그런 것들 말고, 진짜 진짜 재밌는 것들 뭐 없나. 해가 져 갈 때까지 놀이터에서 하던 경찰과 도둑, 탈출, 바닥에 금 그어 놓고 하던 땅따먹기, 복도에서 실내화를 신고 우당탕탕 달리다가 미끄러지기, 이불 아래에 숨어서 홈런볼 먹기, 작은 인형에 손수건 덮어서 재워 주기, 수영장에 뒤로 누워 수면으로 쏟아지는 햇빛 쳐다보기. 흠.
화장과 내게 잘 맞는 옷 말고, 달릴 때 삐끗할 내 발목을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 말고, 일 년 뒤의 잔고를 걱정할 마음 말고, 그런 어떤 것도 없이 즐거울 수 있는 일. 뭘 해도 체중 조절과 내일의 출근과 병원과 관련된 무언가와 휴대폰의 유튜브와 카톡과 인스타그램과 알 수 없는 이들의 이목으로 링크되는 그런 것들 말고. 나 자신의 답답하고 작은 마음가짐도 벗어난 그런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잘 생각해 봐야겠다. 나는 어떤 쓸데없고 즐거운 일을 할 수 있는지. 이런 어른으로 큰 나는 어떤 재미를 어떻게 찾을 것인지 자알 찾아봐야겠다.
비록 그 몇 년 전처럼 과자를 먹으며 수다를 떨고 마냥 즐거워할 수는 없지만, 십몇 년 전처럼 눈을 감고 이름도 모르는 동네 또래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잘도 몸을 뒤집어 어딘가를 타고 미끄러 내려갈 수는 없지만.. 어떻게 즐거울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겠다. 열 개? 스무 개? 써놓으면 다섯 개는 할 수 있겠지.
여기까지 읽으신 여러분들의 아이디어가 궁금해요.
떠오르시는 게 있나요? 추천받습니다.
주로 무엇을 하며 노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