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제철이니까
지금이 아니면 언제?
언제나처럼, 기전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이 든다. 반복적으로 과자와 빵 끊기에 실패하고 안 겪어본 일까지 지나가서 그런가. 사실 아직 진행중인데. 뭐, 달라질 건 없다.
날씨가 어째서 어디가 녹았느니 어쩌니 하던 생각을 대여섯 번은 했던 게 무색하게, 또 눈이 왔다. 날씨? 28년을 내내 함께 살아도 모르겠다. 계절도 날씨도 모르겠고 사람은 더 모르겠다. 나만 몰라? 다 모른다. 하긴,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뭘 판단해.
동기 단톡방은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다. 그 영화 재밌어 얘들아 한 마디 했더니 너 내일 골수검사 양측 한다, 라는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미리 알게 되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좋은 거? 조금 일찍 출근하자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싫은 거? 싫은 건 싫은 거지. 좋을 게 뭐 있어. 한쪽만 해도 아침 일이 밀리게 되는 걸 쌍으로? 물론 내가 하는 거 아니고 의사가 하고 환자가 하지만 아무튼 말이 그렇다.
제발 내일 검체접수 등등이 안 꼬이게 해 주세요.
아니다. 바라지 말자. 허둥대지나 말자. 하루이틀도 아니고. 아는 대로 하다가 답 없으면 도와 달라고 하고, 이상한 방식대로 하지 말고. 상식적으로 하면 된다. 정해진 대로.
그간 브런치에 올렸던 글을 쭉쭉 넘겼다. 많이도 썼다. 방구석이나 카페에서 대충 쓰다 말던 걸 그래도 마무리를 지었고 몇몇 분이 꾸준히 읽어 주신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안 괜찮았던 것처럼 생각했고 큰일인 줄 알았으나 막상 지나고 보니 아무 일도 아닌 게 있었고, 그 땐 별 일 아닌 줄 알았으나 다시 읽어보니 꽤 큰일이던 것도 있었다.
당연한 거긴 하지. 누구나 아는 인생의 진리. 그래도 한 번씩 깨닫게 되는 때가 있다. 이런 날들을 지나 왔고 이런 좋은 일도 있었으니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는 걸.
삶이 괜찮았던 적이 있었냐고 써 놓은 게 있었다. 달리기 글이었나. 역시나, 지금도 안 괜찮다. 과자를 못 먹어 불행하고 모닝빵을 에어프라이어에 넣어 한 봉지 다 먹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좀 울적하다. 끼는 옷을 방치하다가는, 이제는 정말 시작인 노화에 따라 걷잡을 수 없이 살이 찔까봐 참는 중이다. 잘 안 돼서 심히 열이 받는다. 그래서 안 괜찮다.
환자들은 늘 안 괜찮다. 나도 언젠가 환자가 되겠지. 아니, 된다. 6년 전, 세상에나. 6년 전이라니. 아무튼 3학년 말쯤 일원동 모 병원으로 실습을 갔다. 이름 대면 다 아는 거기. 뇌신경 병동이었고 1인실은 못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딱히 못 들어갈 건 없는데 아마 그 때 따라다니던 간호사가 실습생을 좀 귀찮아해서 그랬을 것 같기도 하고.
병원에 누워 있는 사람들의 사연이야 뭐 안 놀라운 게 어디 있겠냐만은 1인실의 그 사람은 특히 그랬다. 특별한 이유라기보다는 그냥 사회에서 엄청나게 잘 나갔고 부자인 사람이라서. 환자 정보를 보는데 아파트가 반포 어디였고, 남편이 서울대 교수였고 본인은 한의대를 나온 어떤 전문직이었다. 한의학과를 졸업했으나 다른 짱짱한 직업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아들과 딸 둘 다 의사였고.
뭐 이상한 루트로 들어가서 본 게 아니고 인계장에 그런 게 다 쓰여 있다. 자기들끼리도 조심하기 위한 용도다.
아무튼, 그녀는 아들도 딸도 못 알아봤고 며느리가 상주 중이었다. 그게 충격이었다. 그렇게나 똑똑하고, 그 시대에 한의대까지 나온 여자면 딱히 인생에 대외적으로 내보일 굴곡 같은 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잖아. 그런 그녀는 70세가 되기도 전에 심한 치매와 함께 연명하고 있었다. 많고 많은 케이스를 겉핥기로 지나쳐 왔지만 그 사람의 정보들은 두고두고 기억이 난다.
왜 우리는, 나는, 알면서도 유한하며 공평하다는 사실을 잊는가. 왜겠어. 사람이니까?나는 내일의 일을 걱정하고 당장의 불행에 그대로 슬퍼하고 울적해하다 금세 또 헤실거리는 그냥 사람이니까.
런던의 간호사가 돼야지, 하고 생각한 게 십 년이 됐다. 이런, 아무것도 못 했네. 공동생활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고 내가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까지 가서 이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답을 찾지 못했다. 아무튼 그 확고했던 꿈은 그렇게 그대로 놓여 있다. 조금 빛이 바래긴 했지.
이제는 뭐가 되고 싶은지 다시 정해야 할 때 같다. 방향키를 좀 잘 잡아야 한다. 아니면 그냥 쭈루루루루 하고 미끄러져 내려갈 것 같거든. 거창한 거 이전에, 낯선 사람 따라가지 말고, 의 어른 버전이나 좀 잘 따르는 게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 근데, 딱 일 년 전에도 친구랑 이런 대화를 했던 것 같은데. 이런 얕은 고민들이 한 가닥씩의 시도로 이어지길 바란다. 하고 싶은 걸 억누르는 것보다는 다른 일들로 주의를 돌리는 게 나았다. 대충 그랬다.
아직 혼자 여행을 안 가 봤다. 제주도를 갈까 말까 열심히 고민한다. 아니, 평일 티켓은 2만원도 안 하는데 내가 가능한 날로 조회했더니 12만원이 나온다. 알고도 이번에 갈 것이냐, 말 것이냐. 하, 참. 삶은 언제나 안 괜찮다. 근데, 보이스피싱 당하기 직전, 그 한 시간 전의 오전에도 나는 안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씨, 안 괜찮기는. 엄청나게 괜찮았어, 멍청아. 그래. 괜찮아. 지금은 그래서 괜찮은 걸로 바꿔야겠다.
괜찮다. 비록, 지겹게도, 내일의 출근이 걱정되긴 하지만. 언제나 최악은 예상치 못한 데서 온다고.
괜찮은 순간은 없다. 그래서 괜찮다. 환자들은 아파서 온 병원에서도 편히 쉬지 못한다. 3개월짜리 애가 빽빽 우는 소리와 그 보호자가 코를 잔뜩 고는 소리에 잠을 못 자고, 가뜩이나 항암으로 온몸이 안 괜찮은데, 옆자리 간병인이 밑반찬이며 젓갈을 꺼내 끼니를 챙기는 냄새에 속이 다 뒤집힌다.
성질이 더럽거나 섬망이 온 환자가 같은 병실에 있을수도 있고, 돈이며 명망을 가득 쌓아 1인실을 간다 해도 담당 간호사가 틱틱대는 말투로 나를 대할 경우, 또는 담당 주치의가 좀 많이 무심한 타입일 경우 나는 잔뜩 상처를 입겠지.
죽어서도 뜻대로 되는 건 많지 않다. 그 병원 장례식장의 빈소가 만실이라면 나는.. 그러니까 나의 남은 몸은 멀리 떨어진 것으로 유랑 아닌 유랑을 떠나야 할 수도 있다. 만에 하나 뭐 엄청나게 성공해서 묫자리를 찾아 원정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 해도, 음. 죽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굳이 미래의 병상에 누운 나를 예상하는 게 아니더라도, 당장 내일 아침 택시를 탔을 경우에 그 택시기사가 얼마나 불친절할지도 예상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나는 어디서도, 완전히 괜찮거나 평안할 수는 없다. 그러려면 그냥 집 샤워 부스에서 안 나와야 한다. 근데 그럴 수는 없지.
지금 당장 여기서, 불행도, 행복도 너무 깊이는 가져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니다, 행복은 좀 무겁게 가져가도 된다. 그래야 그걸 기억하고 다시 힘들면 거기로 찾아가서 살 이유를 찾잖아. 그게 오늘의 내 몫이다.
돌아보니 항상 같은 말을 다른 버전으로 길게도 써 놨던데, 어쩔 수 없나봐. 이게 내재된 방향키려니 하고 살아야겠다.
음.. 그래서? 딸기를 많이 먹으려고 한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
사 온 딸기는 한겨울 것보다 안 달았다. 냉장고 뒤쪽에서 몽땅 얼어 아삭하게 깨는 재미는 있었다.
땀내나는 아노락은 이제 세탁기로 들어갔고 집어넣었던 바람막이를 꺼냈다. 진짜 나비가 날아다녔다. 다리에 땀이 찼다. 시간이 가고 있다는 게 반갑고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