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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돈내산 외박 #1

0. 출발 전 하는 생각

by 이븐도





제주도는 평일 오프를 내면 가기로 했다. 주말의 사람 가득한 제주도를 왕복 30만 원이나 주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정동진 도착 기차표를 끊었다. 시내 중심가와 해변가와 더 인접한 숙소 중 후자를 골랐다.






관리비를 포함해 내가 이 집에 한 달에 들이는 비용을 생각했다. 대략 30으로 나눈 금액과 그 숙소에 하루에 드는 비용을 대조했다. 내가 거길 왜 가지? 굳이 집세를 주면서 다른 천장 아래에서 자기로 한 이유가 뭘까? 바다가 있어서였다. 나는 그 외박비만큼의 바다를 보고 와야 한다. 비록 3월이지만.

뭐 하지? 여행은 왜 가는 걸까? 말이 여행이지 다른 곳 가서 바깥에서 자고 먹고 구경하는 건데. 그 정도 돈을 여기서도 하루에 쓴다면 행복하기는 할 텐데.


아무튼 가기로 했다. 핫플? 필요 없어. 순두부찌개? 안 좋아해. 바다 잔뜩 봐야지. 바다 따라서 걷고, 달리고, 그걸 보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또 보고, 어두워진 바닷가를 보고, 밝아오는 바닷가를 보고. 파도가 치는 걸 보고.




아르떼뮤지엄, 고래 카페. 갈까 말까. 서울에서도 카페를 내가 혼자 찾아가지는 않았다. 친구를 만날 때나 갔다. 여기서도 안 가던 걸 거기서는 가나? 예쁜 카페는 이제 전국 방방곡곡 널리고 널렸다. 다 개성이 넘치고 귀엽고 아름다워서 딱히 거기 있기 때문에 특별하다는 점은 느껴지지 않는다. 차라리 그 지역의 스타벅스가 낫다.

영화관을 찾았는데 정말로 상영작이 없었다. 바닷가와 또 예쁜 바다와 그 운치를 담은 가게와 식당이 있는 대신 그 부근에는 아이맥스도 다양한 개봉작도 없었다. 작은 독립영화관들은 있었다. 만약 땡기는 게 있다면 볼지도 모른다. 아르떼? 여기서도 그런 영상 예술 전시를 안 간지 엄청 오래됐다. 굳이 거기에 있으니 가야 하는 걸까?




이건 난이도 하의 여행이다. 여비가 상대적으로 덜 들기 때문이다. 이전에 일본여행을 갈 뻔한 적이 있다. 그때도 지금도 안 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실패의 위험부담이 이 정도인 이 여행에도 힘이 잔뜩 들어간 느낌이다. 뭘 해야 그 돈이 안 아까울까 생각한다. 이러다 정말 바다 주변만 맴돌며 지겨워지면 어떡하지? 계획을 안 세우고 싶은데 세우게 된다. 실패. 여행에도 실패가 있나? 음. 모르겠네. 가족여행과 데이트는 여행이라기보단 함께하는 이벤트에 더 가까웠다. 실패라, 원래 여행에도 실패가 있는 건가?


거기서 별로 뭘 검색하고 찾고 싶지 않다. 그럴 시간에 그냥 거기 풍광을 한 번 더 보고 싶다. 여길 가느니 저쪽을 가보는 게 낫겠다, 하는 식으로 휴대폰 쳐다보며 계산하고 있는 것보다는 그냥 지금 열심히 찾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좋긴 좋다. 완전한 관찰자처럼 거길 잔뜩 구경하다 오는 거야. 그 점만은 너무 좋다.

이전의 여행 때는 예쁜 사진을 건지려 이런저런 옷들을 챙겼다. 바람에 옷이 날려 신경 쓰이고 지치기도 했고 사진 찍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도 지겨웠다. 이번엔 찍어 줄 사람도 없고 찍을 건덕지도 딱히 없다.

그런 여행도 있고 이런 여행도 있는 거지. 나는 완전히 초보다. 어차피 나는 나랑도 평생 살아야 하니까 나한테 어떤 여행이 맞는지 좀 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싸, 4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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