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ered mentality

가능한 판타지

by 이븐도





당연히 병원 밖에도 애들이 있다. 공원, 유치원 주변, 저녁의 카페, 전시회장. 안 아픈 애들이구나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 더, 아. 아이는 절대 낳지 말아야겠다.






안 바쁠 줄 알았는데 바빴다. 퇴근 때 휴대폰 배터리가 백 프로. 연휴 시작이라 수선생이 근무인력을 하나 줄여 스케줄을 짰기 때문이다. 이번 나이트부터 그런 줄 몰랐다. 애들이 상태가 안 좋은지 생각만큼 퇴원을 안 했다. 지겨웠다. 진짜 진짜 지겨웠다. 어떤 복지도 월급도 다 이런 뭣 같음을 버티는 대가인 게 지겨웠다. 너무 졸리기도 했고.



병동에는 임신한 선임이 있었고 임신을 계획하는 사람도 있었다. 신기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보다도 더 오래 일하고서도 어떻게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지. 그들에게 절대 할 일 없는 질문. 에둘러 말해본 적 있다. 아, 내 친구 애 유치원에도 라이노 싹 도나 봐. 애들 다 콜록거린대. 선생님도 아프다는데? 아. 지금 환절기라 그런가요. 그렇겠지, 뭐. 미세먼지도 심하고. 안 그래도 바쁜데 진짜 죽겠어.

근데 왜 아픈 애들은 계속 생길까요. 당연하지, 병원인데. 아니, 그것도 맞긴 한데.. 무서워요. 뭐가. 너무 아프니까. 아, 야. 여긴 그런 애들만 모여 있는 데잖아. 우리가 이렇게 모아놓고 봐서 그래. 이게 비정상인 거지.






나는 그녀를 위로해줄 수 없었다. 하기 싫었던 건지도 모른다. 피곤하고 짜증났다. 널널하게 일하려나 싶었는데 또 색다른 방식으로 뭣 같이 일하게 돼서. 보호자는 툭하면 벨을 눌러 애를 좀 봐 달라고 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짜증났다. 머리 여는 수술을 하고 그물망을 쓰고 온 애. 몇 개월이더라. 3개월인가, 5개월인가. 열이 계속 났는데 정맥주사가 너무 안 잡혔다. 먹는 해열제를 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애가 갈수록 붓는다고 엄마는 다급해했다.


당직인 1년차 레지던트나 나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는 것도 없었다. 하도 꼬물거려 재지지도 않는 혈압이나 재고 팔짱을 낀 채 모니터를 쳐다보는 게 다였다. 엄마는 울었다. 모른 척했다. 피곤해서. 진짜 졸려서. 해줄 말도 없어서. 당직과 나를 앞에 두고 혼자 우는 그녀가 마음이 아팠고 불쌍했다. 인생이 어떻게 그럴까 생각했다.





어제는 새벽 한 시와 다섯 시. 오늘은 일곱 시에만 한 번. 손가락이 너무 부드러웠다. 원래 살성이 좀 그런가. 물이 적당히 채워진 작은 풍선 같았다. 손가락 어디를 찌를지 딱히 물을 필요도 없었다. 다섯 개 끝에 다 핏자국 같은 게 남아 있어서. 어제는 없던 사진들이 침상에 붙어 있었다. 인생네컷. 또 인생네컷. 한 장은 엄마, 그리고 한 장은 아빠. 저 작은 애는 아마 얘. 누구누구랑 어머니 아버지예요? 하고 묻자 보호자는 사진을 떼어서 보여주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하단에 날짜가 찍혀 있었다. 25년 5월 7일. 세 달. 그러니까 이렇게 되기 세 달 전이라는 거지? 길고 긴 서킷의 인공호흡기를 달고, 눈을 절대로 뜨지 않는 상태로, 한여름에도 체온은 35도를 간신히 넘기고 이제는 털모자까지 꼭꼭 쓰고 있게 되기 전. 별로 자세히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건네받았으니 뭐라도 말해야 했다.

잘생겼네, 진짜 잘생겼다 우리 누구. 그리고 끝. 신기했다. 늘 신기했다. 내 앞의 이 세 살짜리 애는 곁의 엄마나 아빠를 따라 머리 옆으로 반쪽짜리 팔 하트를 만들 줄 아는 애가 아니니까.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거고.





소변을 도뇨해서 빼야 했다. 짬이 나서 양치를 했다. 역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러고 나면 별로 뭘 먹고 싶지가 않았으니까. 네 시에 갔더니 엄마는 애가 자니까 여섯 시쯤 해 주면 안 되겠냐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여섯 시에 갔다. 사실은 이리저리 일이 또 밀려서 여섯 시 삼십 분쯤.


불은 있는 대로 다 켜고 창가의 블라인드도 올렸다. 엄마는 양 다리를 한 번에 잡아 아예 다 들어올렸다. 이브닝번한테 물어본 대로 요도가 좀 특이한 데에 있었다. 그래도 한 번에 찾아서 카테터를 넣었다. 엄마는 반들반들한 피부의 애를 보고서 누구누구 쉬야 할 거야, 잘 잤지, 했다. 아침이 덜 밝은 그 병상. 달콤함, 사랑, 애정,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하여튼 잘 쓰지도 않아 떠오르지도 않는 그런 단어들로 가득한 눈빛으로. 어떤 번화가의 커플들과 길거리의 사람들에게서도 본 적 없던 정서의 농도. 저런 표정이 연기가 아니라는 게 몹시 신기했다.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전동을 받을 때 봤던 아빠 반, 그리고 내 앞의 엄마 반. 이러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냥 교복을 입고 마라탕이나 사먹으러 다녔겠지.


신기했다. 자는 거나 안 자는 거나 그냥 그게 그건데. 어차피 늘 자고 있는 거잖아. 어차피 늘 제정신은 아니잖아. 저걸 떼면 그냥 생명이 꺼지는 애잖아.






걔 사진 봤어? 뭔 사진? 의무기록에 그 사진. 뭐? 아 어싸인인데 환파 똑바로 안 하네. 뭔데. 여기 외래 처음 왔을 때 안과에서 찍은 거 봐봐. 그게 언젠 줄 알고 찾아봐. 멀쩡할 때야. 아, 그래? 몇 년도야 그럼. 그냥 맨 밑에 기록 누르면 나와. 아. 이거? 그리고 스크롤을 한참 내려 열었던 기록. 메롱도 스마일도 아닌 이상하게 웃긴 표정의 플래시 터진 사진.


몇 가닥 안 남은 머리카락, 연고가 처덕하게 올라가 있던 안구. 마찬가지로 로션 같은 걸로 반들거리는 귓구멍, 뒤틀려버린 것 같은 이목구비의 배치가 아닌 정말 멀쩡할 때의 사진. 암이든 염증이든 그 어떤 병마가 시간을 전부 덮치기 전의 모습. 내가 아는 얼굴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침상에 누워 있는 걔가 아니라, 이제 바깥에서 보더라도 아는 체는 할 수 있을 정도로 면을 익힌 그 애의 엄마와 아빠를 닮은 여자애. 장난기가 많아 보였다. 새삼 느꼈다. 태어날 때부터 이랬던 게 아니구나.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아파서 이곳으로 왔으며 어떤 치료를 어떻게 받고 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할지를 정리한 자료. 의무기록. 그걸 기반으로 의사들은 처방을 냈고 나는 그 기록과 처방의 방향이 다르면 노티를 하거나 확인을 받아야 했다. 이게 맞는지, 아니라면 어떻게 할 건지. 아무튼 그런 거였다. 병원에 온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자신의 히스토리이자 병의 역사.


주산기 특이력 없고 건강했던 환아. 많은 시작이 그랬고 그 한 줄이 가장 아팠다. 내가 뭔데 좀 그랬다. 얘가 처음부터 이랬던 게 아니라는 그 첫 문장이 보일 때 기록을 읽어야 하는 눈이 덜컥, 하는 기분이었다. 그럴 수 있는 거잖아.

chief complaint. 주증상. 그러니까 애가 좀 이상해졌다는 거. 별 것도 아닌 것 같은 그 한 줄로 너무 많은 게 시작됐고 바뀌어 있었다. 캔서도 아니고 무슨 어택도 아니고 인펙션도 아니고 당장은, 병원에 엄마 아빠가 애를 데리고 올 때의 상황에서는, 얘가 오늘 왜 이러지, 했을 것.






심박수가 내내 60중반에서 50대로 떨어지자 엄마는 밤새 나를 계속 호출했다. 봐 달라고. 혈압은 열한 시 반에도 열두 시 반에도 세 시 반에도 일곱 시 이십 분에도 정말 다 똑같았다. 약간 높았지만 그 높은 대로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호출하는 건 상관없었다.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혈압이 너무 높거나 낮으면 노티하고, 뭔 약을 줄지 확인받고, 주라는 대로 주고. 나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사실은 별다를 것도 없는 일이었다. 낮에 니카디핀을 썼던 것 때문에 엄마는 겁을 먹은 것 같았다.


걱정은 그녀의 몫이었다. 보호자는 영원히 눈을 뜰 일 없는 애에게 일일이 말을 걸어 그녀가 너 괜찮게 해 주려고 프레셔를 잰다고 영어로 말했다. 이해되지 않았지만 5월에 찍힌 사진을 보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한테나 얘는 처음부터 뇌사 상태였지 그녀한테는 아닌 기간이 더 길었으니까.






다시 출근하니 그 애는 중환자실로 가 있었다. 연휴가 아니었다면 그냥 병동에서 혈조실에 보내 중심정맥관을 꽂았겠지만 모두가 노는 날 아닌가. 인계를 듣기로는 사실 신경외과에서는 흔한 일이라 했다. 머리 여는 수술 좀 하고 나면 원래 며칠간은 심하게 붓는 거라고. 아무튼 항생제도 항바이러스제도 잔뜩 써야 했기 때문에 IV도 없는 상태로 일반 병동에 놔둘 수 없어서 보냈다고 했다. 어제 인계를 줄 때 엄마가 또 우는 걸 본 데이번이 애 많이 찔렸냐고 했다. 아니요, 그거 때문에 우는 거 아니예요. 아, 주사 많이 찔렀다고 우는 거 아니야? 걍 걱정돼서 그렇죠. 아.


기구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누구든. 그렇게 행복한 사진을 찍어 놓고 잠자는 왕자가 되어 버린 애를 옆에 두고 전전긍긍하는 보호자와, 사랑이라 믿었을 누군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애를 홀로 돌보는 애 엄마와, 본인이 누군지는 그전에도 앞으로도 알 일 없는 상태로 누워만 있는 또다른 여자애가.

시작. 단지 애가 눈을 안 맞추고, 덜 먹고, 덜 보채고 앞이 흐릿하게 보인다는 말이었을 그 조용한 시작이 참 기구하다고 생각했다.





둘 중 내 인생에 진입될 수 있는 것들은 뭘지 생각해 봤다. 부정적인 판타지였다. 긍정적인 것들보다 실현 가능성이 더 높았다. 애를 안 낳는다면 나열했던 많은 일들이 없겠지. 그 열몇 살짜리 여자애? 내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일이 불미스럽게도 생겨난다면. 그런데 그건 정말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잖아. 그러니 제치기로 한다.


멀쩡하던 애들은 인공호흡기를 달고 위루관을 꽂았다. 부모들은 한 시에도 세 시에도 다섯 시에도 쪽잠을 자다 일어나서 경관유동식을 먹이고 오줌을 빼고 기저귀를 갈고 가래를 빨아들이고 또 시간을 맞추어 항경련제를 먹였다. 바깥으로 나갈 일이라고는 이곳이나 다른 병원 외래를 향할 때 말고는 없을 피부에 로션이며 약을 정성스럽게도 발랐다.

웃고 있어도 늘 두려움과 불안을 잔뜩 숨기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한 보호자는 선임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했다. 하더라도 애는 낳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그 자리에서, 열 살쯤 됐을 딸 앞에서 했을 그 마음을 좀 생각해보다가 말았다. 슬픔도 분노도 아니었던 그 어투 뒤에 쌓인 시간과 감정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어.




인간은 하루에 2만 개의 생각을 한다고. 이것 역시 아마 스쳐지나갈 생각이다. 하지만 안 바뀌면 좋겠다. 별로 감당하고 싶지 않고 겪고 싶지 않다. 그 사랑만큼 외롭게 아픈 게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감성적인 이유가 아니라, 그냥 낳고 싶지 않다. 기억하기 위해 쓴다.


어쩌다 운이 좋아 기회가 닿는다 해도, 낳지 말라고.

이 변수들을 기억하라고. 적지 않게 보아 온, 그 건물 안에서나 일상일 이 장면들을 잊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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