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 했던 귀갓길
칸쿤에서 마지막 아침.. 눈을 뜨자마자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짐을 싸고 버릴 것 버리고 오후 5시 비행기니 호텔에서 느긋하게 아침먹고 커피마시고 체크아웃하고 바다 좀 거닐다가 셔틀오면 타고 공항까지 나오면 그런대로 순탄한 일정으로 마무리가 되는 듯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여권 잘 챙기고, 핸드폰으로 비행기 체크인 하고 혹시라도 첫번째 경유지인 미국 워싱턴 DC Dulles 공항에서 입국심사가 길어질라나 국토안보부 앱도 깔아 놓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려는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여기도 좋지만, 내집이 아닌 곳은 3일이면 족하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빨리 집에가고 싶은 이유는 많았다.
사실 칸쿤에서 둘째 날 아침에 난 생각지도 못한 일로 발에 부상을 입었다. 화장실 앞에 커다란 전신거울이 있었는데 옷장과 마주 보면서 좁은 통로 처럼 되어있었다. 난 옷장에 얇은 패딩을 좀 걸어놓으려고 움직이다가 아무 생각없이 내 팔이 거울에 살짝 닿았는데 그만 그 큰 거울이 내 발 뒤꿈치부분의 옆을 때리며 직선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얼마나 아픈지 발꿈치 뼈가 부러진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다행히도 뼈는 괜찮았고 심하게 타박상을 입었는데 처음엔 디딜수가 없었다. 거울이 걸려 있던 윗 부분을 보니 압정을 양 귀퉁이에 꽂아 놓고 거기에 그 무거운 통 전신 거울을 걸쳐 놓았던 것이었다. 행사 디렉터에게 가서 말하려 했는데 뼈가 부러진 정도가 아니니 문제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서 참고 지냈다. 발이 아파서 잘 못걸었고 피멍이 들어 눈에 확 띄었다. 걸음 걷기가 쉽지 않았다. 전에 한번 가보긴 했는데, 또 가고 싶었던 유카탄 치첸이트사, 세노테 동굴 관광가는 날이었는데 발을 다쳐서 못갔다.
이런 일 말고도 미국 동북부 지역, 특히 우리 집 동네에 우리 비행기가 도착하는 그 시간에 소낙눈이 온다고 일기예보가 뜨기에 어쩌면 워싱턴 Dulles 공항에서 우리집 가는 길이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가 결항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우리가 도착하는 그 시간에 우리동네에 눈폭풍이 몰아친다니 걱정이 되었다. 칸쿤 공항에 와보니 여행객이 너무 많아서 대기실에 앉을 자리도 없었고 알려 준 보딩시간이 다 되어가는 데도 Gate가 배정이 안되어서 시작부터 불안불안 했었다. 만원 비행기에서 이상하게 멀미가 났다. 그래도 DC 까지 잘 왔고, 우리 동네까지 연결되는 비행기 연결편도 잘 탔다. 순항하는 듯 했기에 안도하고 잠깐 졸다가 이제 30분후면 도착할 터였다. 그러던 중 갑자기 비행기가 흔들리고 창밖으로 눈보라가 치는 것이 보인다. 창밖에 보이는 날개 옆으로 흩어지는 엄청난 물줄기가 보였다. 비행기가 계속 심하게 흔들리더니 방송이 나왔다. 목적지 공항에 지금 눈 폭풍 때문에 착륙할 수가 없어 회항을 하여 임시 착륙 가능한 공항으로 간다고 했다. 그곳에서 기름을 주유받고 다시 덜레스 공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아이고...ㅠㅠ 어쩐지 비행기 연결편이 캔슬이 안되서 잘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 이런일이 생기고 마는 구나..
겨우 비행기가 진정이 되는 듯 하더니 결국 우리집에서 2시간 떨어진 도시의 공항에 착륙을 했다. 밤 자정이 넘은 시간에..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기름차가 왔고 비행기에 기름넣고 또 한참을 기다리다가 두 시간 후에 다시 출발을 했다. 그래도 DC 덜레스공항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한 번 더 우리동네 공항으로 착륙을 시도해 보겠다고 했다. 그래도 안되면 덜레스로 돌아간다면서..
동네 공항은 고속버스 터미널 같이 작다. 그러니 비행기도 작은 비행기다 .비행기 안에 한 40면 정도 타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돌아오는 길, 우리가 하늘 어느만큼에 떠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찌나 심하게 흔들리던지 정말정말 무서웠다. 귀여운 손주도 다시 못보고 이제 천국으로 가는 줄 알았다. 새벽 3시 였다.
우당탕탕탕탕.....끼익끼익끼익... 쿠당탕탕탕탕...
땅에 우렁차게 착륙했다. 정말 감사해서 난 혼자 박수를 쳤다. 공항에 눈이 엄청 쌓여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쌓인 눈이 하나도 없었다. 도대체 하늘에서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내 머리로는 이해불가였다. 암튼 칸쿤에서 땀을 뻘뻘흘리면서 출발했는데 동네 공항으로 나오니 영하10도가 넘는다. 체감온도가 영하20도란다. 너무 추워서 남편이 자기가 가방 받는다고 안으로 들어가라 하길래 뒤도 안돌아 보고 냅다 공항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비행기가 작아서 기내에는 핸드캐리어를 올릴 공간이 없기에 핸드캐리어를 따로 짐칸에 실은 후 도착하면 비행기 앞에서 받아가야 한다. Baggage Claim 이라 하는 수하물 찾는 곳이 아니다. 마치 고속버스에서 밑에 넣어둔 가방 받아 가듯이... 아마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실 수도 있다. 롱텀파킹장에 차를 놓고 가길 잘했다. 우버 타려고 했으면 이 시간에 와줄 차가 없어서 꼼짝없이 공항에서 자야 했을 것이다.
내 집에 와서 잠을 잘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 너무 감사했다. 칸쿤에서 지냈던 시간들이 그냥 꿈만 같다. 발 뒤꿈치에 생긴 멍이 아니면 그냥 꿈꾸다 일어난 것 같았다. 하늘에서 헤매이던 시간들도 지금 생각해 보니 별일이 아니었던 것 처럼 흐려진다. 내가 무슨일을 겪었든지 아무상관 않는 듯 다시 시작된 춥고도 평범한 겨울날이 마냥 반갑기만 하다. 난 일상으로 돌아왔다.
평범한 일상을 산다는 것은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