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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력도시 연구소 Mar 01. 2018

스페이스 이치이치고,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매력도시 매거진 | 스페셜 리포트_홋카이도 (7)


앞선 글에 이어, <스페이스 이치이치고>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한마디로 스페이스 이치이치고는 안과 밖의 대반전이 매력입니다. 겉에서 보기에는 평범한 아파트인데 안에는 방마다 재미있는 가게가 들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재미의 원천을 손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은밀함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파트 문을 하나하나 열어서 개인의 영역을 구경하는 은밀한 재미 말입니다. 사적인 공간에 가게를 차려놓은 느낌을 주기 위해, 스페이스 이치이치고의 외관, 입구, 복도, 엘리베이터는 밋밋한 아파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면 깜짝 놀랄 반전이 일어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 꼭 튀는 사람이 하나쯤 있죠. 현관문에 까만색 페인트를 칠한 303호 사장님. 나름 독특하다고 생각하시나 본데.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지난 글에서는 주로 방문객의 경험을 중심으로 살펴봤으니, 이번에는 가게 사장님의 입장에서 스페이스 이치이치고를 체크해보죠.

'나만의 가게를 갖고 싶어' 이런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주변에 이런 생각 하는 사람들, 요즘 꽤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입니다. 온라인을 통해 물건을 팔거나 작가가 되어 글을 쓰다 보니 인터넷 너머에 있는 상대방이 궁금해집니다. 작은 가게에서 고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낭독회를 통해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지고 싶곤 하죠. 가게로 그리 큰돈 벌지 않아도 좋으니, 내 카페에서, 내 서점에서, 내 편집숍에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은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가게를 통해 이윤을 내야겠다는 목표 외에도, 내 물건과 내 생각을 소비하는 대상과 마주하고 싶은 대면 욕구가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있는 것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타케차스 레코드>의 멋쟁이 사장님도 비슷한 경우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윤보다는 교류를 중시하는 가게를 운영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1) 우선, 경제적 부담이 적어야 합니다. 재미있는 나만의 가게를 하는데, 임대료를 메꾸기 위해 허덕이고 싶진 않겠죠. 시설비 문제도 중요합니다. 공간을 꾸미는데 과도한 돈을 들이고 싶지도 않을 테니까요.

해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관둬버리거나 다른 장소로 옮겨도 아깝지 않게, 투자 비용이 가벼워야 합니다. 당연히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에 비교적 작은 공간을 가지는 것이 합리적이겠죠. 스페이스 이치이치고처럼 도심을 약간 벗어난 외곽에 가게를 차리는 것이, 이런 경우에 합당해 보입니다.


(2) 돈도 돈이지만, 시간의 부담도 적어야 합니다. 하던 일 그만두고 가게 운영에만 하루 종일 매달릴 순 없으니까요. 얼마 되지도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일주일 내내 가게를 지키는 일, 괴롭겠죠. 열고 싶은 때 열고 닫고 싶을 때 닫고. 혹은 주말에만 운영해도 좋은 곳. 예약이 있을 때만 문을 여는 가게라면 더욱 좋고요. 한정된 시기에만 문을 여는 팝업 숍 pop-up 의 형식도 있습니다.

주말 위주로 각자 사정에 맞게 2-3일만 문을 여는 스페이스 이치이치고는 주인들의 운영시간 부담을 줄여줍니다. 인터넷에서 오픈 시간을 확인하고 현관에서 벨을 눌러 찾아가는 절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느슨한 예약을 하고 방문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모든 가게가 같은 시간에 오픈하지 않아도 손님들은 그다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3)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변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별로 알아주지도 않는 과자를 끊임없이 굽는다는 것, 도자기를 쉼 없이 만든다는 것, 이거 쉬운 일 아닐 겁니다. 열정이 변곡점을 지나는 순간, '내가 무슨 대단한 영화누리자고 이러고 있나', 힘이 빠집니다. 권태의 독이 주인에게 퍼지면 손님들이 금방 냄새를 맡고, 가게는 활기를 잃습니다.

이럴 때 서로를 격려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일 겁니다. 우리 옆집 사장님, 잘 팔리지도 않는 레코드 잔뜩 쌓아 놓고 저렇게 밝게 웃는데 뭐. 이런 게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됩니다. 행복해지려면 행복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야 합니다. 스페이스 이치이치고에서는 행복한 옆집 사장님과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의 물건을 팔아주고, 운영의 정보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함께 홍보도 하고요.



자, 이 글을 읽고 어딘가에 스페이스 이치이치고 같은 매력 공간을 만들려고 생각 중인 기획자, 혹은 행정가 여러분. 여러분의 입장에서도 이 건물을 들여다봅시다.


여러분에게 이 건물은 장점이 많은 사업 모델일 겁니다. 어딘가 도시 외곽의 평범한 건물을 매력 넘치는 장소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개성 있는 사람들이 가게 공동체를 만들어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모습도 그려집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 일을 하려면 아마도 건물을 통째로 임대한 후, 공간을 분배하고 관리하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마스터 리스 Master lease라고 부르는 방식 말입니다. 일반적인 상업 시설의 경우라면 마스터 리스를 해야 하는 여러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건물 안에 빈 가게들이 띄엄띄엄 생기는 일일 겁니다. 공간에 좋은 가게들을 빠짐없이 채운 후, 짠 하고 그랜드 오프닝 행사를 가지고 싶은 것이 보편적인 마스터 리스의 꿈이니까요. 그래서 빈 가게가 두렵습니다. 셔터를 내린 가게가 하나 생기면 전체 쇼핑몰의 분위기가 우울해지고, 옆 가게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망한 쇼핑몰이 으레 겪는 악순환이죠.



그런데 스페이스 이치이치고는 좀 다릅니다. 아파트 철제문 뒤에 숨어있는 가게를 찾아내는 은밀함이 소비 경험의 핵심이다 보니, 모든 방을 임차인으로 채워 넣지 않아도 건물의 운영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작은 가게를 하나하나 둘러보는 소소한 재미가 매력 포인트다 보니, 유명한 식당을 앵커 anchor로 모셔 오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숨겨진 가게를 발견하기 위해 손님들은 아무 불만 없이 8층 건물을 걸어서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일반적인 쇼핑몰의 상식이 이곳에서는 정반대로 돌아가는 것이죠. 마스터 리스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업 모델입니다.



일반적인 쇼핑몰의 상식이
정반대로 돌아가는 곳


그런데 여러분이 신경 써야 할 일은 따로 있습니다. '재료의 맛을 알기 쉽게 과자로 표현하는' 파티시에, '은둔형 레코드 살롱'을 운영할 수 있는 음악 매니아, '손맛 나는 도자기'를 굽는 도예가가 가벼운 마음으로 가게를 열 수 있는 제안을 해야만 합니다. 임대료와 운영 시간의 부담을 덜어주고, 비슷한 부류의 매력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손님들이 육성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오래오래 가게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요.

최대한 짧은 시간에 기획하고 임차인을 모집해서 공간을 팔아치우고 빠져나와야 하는 마스터 리스의 일반적인 속성과 정반대로, 어떻게 하면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매력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까? 이런 고민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는 그랜드 오프닝 행사를 화려하게 하면 안 됩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찾아올 경우, 이 공간의 중요한 매력인 은밀함이 날아가버릴 테니까요.


규모는 작게, 시간은 짧게. 매력 사람들이 모이기 쉽도록 운영의 부담을 줄이고 지속성을 강화한 상업 시설의 모델, 이것이 스페이스 이치이치고 였습니다. 매력을 얻기 위해 성장의 시간이 꼭 필요한, 소년소녀 같은 가게를 위해서 말입니다.   [매력도시연구소]



매력도시 매거진 스페셜 리포트_홋카이도

6편: 완성형 가게, 육성형 가게: 스페이스 이치이치고


1편: [특집] 매력도시연구소, 홋카이도 리포트

2편: 후라노의 눈 밭에서 달콤한 푸딩을: 아무푸린 제조소

3편: 매력 풍경을 발견한 남자들: 비에이 쿰푸샤

4편: 홋카이도에도 근사한 커피 로스터가 있다구요: 모리히코

5편: 최종병기 커피: 호텔 포트멈 스테이&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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