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연대
저녁을 지을 요량으로 넓은 볼에 쌀을 담았다. 검은콩과 잡곡도 한 움큼씩 집어넣었다. 건강하게 잘(?) 차려진 잡곡밥을 마주한 두 녀석들은 숨바꼭질하듯 꼭꼭 숨어있는 검은콩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밥공기를 헤집을 것이다.
이내 잘 골라진 콩들을 밥공기 한편에 얌전히 앉혀두겠지. 잡곡밥을 짓는 엄마의 마음을 알아줄 리 없다. 때때로 아이들에게 나의 마음이 닿질 않아 유감스러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두 녀석의 아우성과 온몸으로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널찍한 볼에 물을 가득 담아 쌀과 한 몸을 이룬 잡곡을 손으로 휘휘 저어가며 씻었다. 한 번 헹구고 두 번 헹구고 여러 번 헹굴수록 물에 잠긴 쌀은 맑은 호수처럼 투명하게 속내를 드러냈다. 뿌옇던 물이 걷히고 맑은 물을 품은 쌀을 밥솥에 옮겨 담았다.
흐트러진 쌀과 잡곡들을 얌전히 토닥였다. 손등을 덮을 듯 말 듯 한 그 어디쯤의 경계까지 물을 채웠다. 전기밥솥의 취사 버튼을 누르고 숙고의 시간을 견디면 형형색색의 잡곡밥이 완성된다.
완성된 잡곡밥을 공기에 담았다. 흰 쌀은 투명한 빛깔을 띠며 윤기가 흘렀다. 고유한 자기 만의 색을 갖고 있던 잡곡들은 한데 어우러져 맛깔스러운 빛을 낸다. 밥공기에 담긴 잡곡밥의 건강함을 품은 맛과 색은 엄마로서의 나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제 각기 다른 색을 품은 잡곡들이 뒤죽박죽 뒤엉켜 있을 때면 따로국밥처럼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취사가 완료된 잡곡밥은 오동통하게 살이 올라 밥을 짓기 전보다 더욱 깊은 빛을 띠며 반짝이는 윤기까지 머금고 있다.
밥이 되어가는 과정은 우리의 삶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었다. 사람은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나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이외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다. 관계 안에서 우리는 따뜻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음에 상처를 받고 휘둘리기도 한다. 그러나 힘든 시간을 버티고 나면 우리는 더욱 견고해지고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오롯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우리는 쌀과 잡곡이 모인 볼처럼 세상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 쌀과 잡곡들은 거센 물살을 맨몸으로 맞으며 이리저리 휘젓는 손놀림을 견딘다. 인고의 시간이 지나면 먼지가 씻기고 맑은 물을 품게 된다. 이내 각자의 고유한 빛깔을 뽐내고 잡곡들과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풍채를 띤다.
아이들 역시 자신만의 색과 모양을 갖고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한 채 대학 입시만을 바라보며 앞만 보고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쌀과 잡곡들이 자신만의 색을 찾고 함께 어우러져 근사한 잡곡밥이 되듯 아이들도 저마다 갖고 있는 자신만의 색을 찾길 바란다. 곁의 친구와 경쟁과 갈등을 빚는 관계가 아닌 사랑과 연대의 관계 속에서 세상과 함께 어우러지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은 추천 도서> 브리타 테큰트럽의 ‘다 같이 함께하면’
우리는 서로 생김새도 다르고 꿈도 다르지만 한 명 한 명 소중하고 존재로서 의미가 있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함께 한다면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는 잡곡밥처럼 우리의 삶도 더욱 밝고 환한 빛을 띠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