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려도 괜찮아
"OO이 어머님, 오늘도 OO이가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하고..."
지난해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작은 아이는 1년 동안 학교에서 말을 하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은 한 해가 지나도록 말을 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상담과 병원 진료를 제안했다. 아이의 말로는 새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 동안은 발표도 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도 했다고 한다. 아이의 주장대로라면 말을 안 했던 기간이 1년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며 엄마 품에 안겨 눈물을 보였다.
"엄마 제가 많이 힘든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나를 꼭 끌어안고 울던 아이는 이내 마음을 추스르더니 엄마의 마음을 살폈다. 엄마가 속상할까 봐 마음 놓고 슬퍼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니 더욱 마음이 아렸다.
"그럼~ 엄마 걱정 안 해. 우리 OO이가 언젠가는 발표도 잘하고 친구도 많이 사귈 거라 믿어!"
잘 해낼 거라는 엄마의 응원이 혹여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싶어 아이에게 전하는 말 하나하나가 마음에 걸렸다. 1년 동안 말을 하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상담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지만 학원에서나 다른 공간에서 타인들과 만날 때는 곧잘 자기 의사를 표현했다. 유독 학교에서만 말을 하지 않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고 무엇보다 아이 스스로 용기내고 싶다며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학교에서 말도 안 하고 친구도 없었지만 아이는 거부감 없이 잘 다녔고 하교 후에 엄마를 만나면 수업시간에 있었던 이야기와 친구들의 에피소드를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아이는 그 누구보다 간절히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학교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며 걱정하는 선생님을 마주하고 의기소침해 있는 아이를 보며 나 또한 가슴앓이로 눈물을 훔치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엄마인 내가 불안해하고 흔들리면 아이는 더욱 힘들어질 것 같았다. 속으로는 걱정이 되었지만 아이에게만큼은 괜찮다며 누구나 그럴 수 있고 별거 아닌 거라고 용기를 주고 싶었다.
다행히 이제 아이는 3학년이 되어서 담임 선생님의 도움으로 친구도 사귀고 이제는 스스로 손을 들고 발표도 한다. 심지어는 수업 시간에 친구와 떠들다가 선생님께 지적을 받는다며 깔깔 웃어 보이기도 한다.
"엄마는 oo이가 잘 해낼 줄 알았어! 용기 내줘서 고마워!"
학교에 수업을 가면 반에 한 명씩은 발표를 어려워하거나 말하는데 용기가 필요한 친구들을 종종 만난다. 독서 수업의 특성상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많아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발표는 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정해져 있다. 늘 발표를 하던 친구들만 손을 들고 이야기한다. 스스로 열심히 참여하는 친구들도 대견하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이 늘 마음에 걸렸다.
수업시간에 종종 손을 안 드는 친구들을 찾아서 그 친구의 곁으로 가서 생각을 물어보곤 한다.
"민지(가명)는 어떻게 생각하니?"
나의 질문에 아이는 눈을 굴리며 당황한 듯 친구들의 눈치를 살핀다. 민지의 모습을 보며 옆에 친구들은
"선생님, 민지 말 못 해요, 말 안 해요. 지금까지 한 번도 발표한 적 없어요."
이러한 친구들의 표현에 민지는 더욱 말을 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민지가 당황하지 않도록 아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서 물어본다.
"민지야 크게 말하기 힘들면 선생님한테 귓속말로 이야기해줄래?"라고 물어본 뒤 그래도 답이 없으면
"생각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하구나. 그럼 이따가 생각나면 선생님한테 와서 이야기해줄래?"라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인다.
당황한 아이에게 답을 강요하기보다는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용기가 없어 말을 못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늘 듣고 있기보다는 다른 아이들처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수업 시간에 종종 민지의 자리로 가서 질문을 던졌고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날은 좀 더 생각해보고 생각이 나면 언제든지 선생님에게 와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했다.
"선생님, 저 오늘은 피아노 학원 가는 날이에요"
어느 날 민지는 수업이 끝나고 교실을 나서려는 나에게 오늘은 피아노 학원에 가는 날이라며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옆에 친구들은 민지가 선생님한테 이야기를 했다며 탄성을 내질렀다.
"아~ 오늘 피아노 학원 가는 날이구나. 선생님 피아노 연주곡 너무 좋아하는데. 다음에 민지 연주도 들어보고 싶다. 근데 민지야 너 목소리 정말 예쁘다. 예쁜 목소리 들려줘서 고마워."
민지 역시 다른 친구들처럼 발표도 하고 싶고 여러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겠지. 다만 혼자서는 용기가 나지 않았고 때로는 상대방의 반응도 두려웠을 것이다. 교사가 꾸준히 아이에게 관심을 갖고 손을 내밀어주면 아이도 언젠가는 마음의 문을 열고 용기를 내게 될 것이다.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판단하고 결론짓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은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 비단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누구나 변화의 가능성이 있고 우리는 발전될 수 있다. 안된다. 어렵다. 할 수 없다는 생각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방향을, 도와줄 수 있는 방향을 강구해본다면 누구나 변화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신뢰와 믿음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이다. 누군가 규정해놓은 잣대로 아이들을 판단하기보다는 아이의 입장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며 보듬어 살피는 어른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은 추천 도서>
마키타 신지 글 / 하세가와 토모코 그림 '틀려도 괜찮아'
언제나 정답만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말하는 게 두렵고 어려울 것이다. 특히나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정답만을 요구하는 교실에서 부정을 당한 경험은 성장하면서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어려움을 겪는다.
교실이라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온화한 교실이 되어야 한다. 누구나 틀릴 수도 있고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으면 손을 내밀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경험하도록 교사와 어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