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운해 Jul 06. 2022

다됐다. 예쁘다!

'사랑'이었을까?

 "나는 커서 아빠랑 결혼할래요."


 작은 아이가 다섯 살 무렵, 아빠와의 결혼을 선언했다. 일곱 살이 되면서 가족과의 결혼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아빠와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살겠다'라고 정정했다. 아이의 다짐은 열 살이 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맙소사.




 나는 아빠에게  혼이 났다. 숙제도 제대로 하지 않고, 원고지에 글도 짧게 쓰고, 깔끔하지 못하다는 이유였다. 하루는 아빠에게 혼나는  무서워 숙제도 다하고, 원고지에 글도 길게 쓰고, 방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샤워도 마쳤었다. 그러나 그날도 나는 아빠에게 혼이 났다. '엄마를 힘들게 한다' 이유였다.


 그 외에 나는 납득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로 혼이 났다. 나를 보며 다정하게 웃는 아빠를 보는 건 드문 일이었다. 아빠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아빠가 아침마다 머리를 빗겨주겠다며 손을 잡아끌 때면 함께하는 시간이 어색하고 불편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아빠가 머리를 빗겨 주는 게 나는 불편하고 어색했다.


 “지하야 잠깐만 여기 머리카락 삐져나왔어!”     


 어린 시절 아침 일찍 회사에 가시는 엄마를 대신해 내 머리를 빗겨주는 일은 아빠의 몫이었다. 버스 운전을 했던 아빠는 막차 운행이 있는 날이면 새벽 한 두 시에 일을 마치고 오셨다. 아빠는 퇴근이 늦은 날에도 아침이면 감겨오는 눈꺼풀을 끌어올리며 나의 긴 머리를 정성껏 빗겨주셨다.    

  

 늦잠을 잔 날에는 머리를 빗지 않고 학교에 가려다가 아빠에게 붙들려 머리를 빗고 가기도 했다. 아빠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라고 했다. 나는 입을 앙다물고 한껏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빠는 커다란 손으로 새끼 강아지를 쓰다듬듯 천천히 나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아빠의 손길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일이었다. 어느새 흩어져있던 내 머리카락은 정수리 위에 올려져 단단히 묶여있었다.     

 

 “다됐다. 예쁘다!”     


 다됐다. 예쁘다. 두 마디 말은 나를 흐뭇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빠가 머리를 빗겨 주는 시간은 꽤나 오래 걸렸다.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 지루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아빠의 손길이 닿은 날은 왠지 기분이 좋았다. 수업 중에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거슬리는 일이 없었고 동네 어른들은 단정한 내 머리를 보고 칭찬을 했다.


 “아이고, 지하 머리 예쁘게 묶었네.”


 등교 길에 친구들을 만나면 아빠가 머리카락을 묶어주신 거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내 머리, 우리 아빠가 묶어줬다.”


 친구들은 신기해하며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럴 때면 내게도 다정한 아빠가 있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아빠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무섭고 냉정했던 아빠였지만 내 머리를 빗겨주었던 그때의 시간은 내가 아빠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아빠는 왜 그토록 열심히, 성실하게 나의 머리를 빗기는데 정성을 다했을까. '사랑'이었을까?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에서 아빠의 모습이 그려진다.




<함께 읽으면 좋은 추천 도서>

김영진 작가의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아이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게 서툰 아빠. 며칠 전 아이를 꾸짖었던 기억이 떠올라 아빠는 아이에게 '미안해'라며 솔직한 마음을 전한다. 아이와 하루를 보내며 어느새 훌쩍 자란 아이가 대견하기만 하다.

아빠는 아이를 꼭 안으며 마음을 전한다.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이전 09화 함께 하고 싶은 다섯 가지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