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VE CAR
요란스럽게 울려대는 알람 소리. 손을 뻗어 머리맡을 더듬거리며 스마트폰을 찾았다. 아침 7시. 정신없이 울리는 알람을 껐다. 어젯밤 잠들기 전 맞춰 놓았던 나머지 알람들도 모두 꺼버렸다. 10분만 더 잠을 청하려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런데 베란다 창밖 너머로 기다리던 소리가 들렸다. 비다. 비가 온다. 단잠을 깨운 알람 소리가 야속했으나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에 알람 소리가 고마워졌다. 일어나자.
기지개 켜는 일도 잊고 벌떡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양치를 하고 세수를 했다. 아이들을 깨우고 서둘러 아침을 준비했다. 이어 아이들 옷을 챙기고 물병을 챙겼다. 반려견 크림이의 물과 밥도 챙기고 배변 패드를 갈아주었다. 임무 완수. 이제 외출 준비를 하자. 소설책 한 권과 공부할 책 한 권을 가방에 넣고 서둘러 현관으로 나가 신문도 챙겼다. 필통, 물병, 다이어리도 챙겨 넣었다. 준비 완료. 아이들을 등교할 때 나도 같이 백팩을 메고 나섰다. 출발.
비가 오는 오늘, 특별한 일이 없어 아이들이 등교할 때 함께 집을 나섰다. 아이들을 학교 근처에 내려 주고 나는 주정차 단속 카메라의 눈을 피해 빈 상가 앞에 주차를 했다. 8시 40분 도착. 나는 오늘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갈 예정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은 차 안이다. 나는 운전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조건이 따른다. ‘혼자’ 운전하기를 좋아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운전을 하면 상대와 호흡을 맞추며 대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운전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쉽게 피로를 느낀다. 특히나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멈춰 있는 차 안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매우 좋아한다. 내가 차 안을 사랑하는 이유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집안일을 안 해도 된다. 나는 집이 부담스럽다. 집은 가만히 생각하고 집중할 수 있는 곳이 못 된다. 설거지, 빨래, 방 정리, 바닥청소, 저녁 반찬 준비 등등해야 할 일들이 눈에 보여 괴롭다. 나는 집안일이 싫다. 싫다고 또 집안일을 안 하는 성격도 못된다. 억지로 집안일을 하면서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있으니 괴롭다. 그래서 부담스러운 집을 피해 차 안에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듣고 싶은 노래를 듣고 쓰고 싶은 글을 쓴다.
두 번째, 명상에 집중할 수 있다. 나는 매일 짧은 시간이라도 명상을 하고 있다. 바쁜 날에는 운전을 하면서 하기도 하고 버스 안에서 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곳에서 명상을 해본 결과 멈춰 있는 차 안에서 크게 명상 음악을 틀어놓고 호흡에 집중하면 다른 때와 달리 잡념이 사라지고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세 번째,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기에는 주변이 너무 소란스럽고, 조용한 도서관을 찾으면 커피를 마실 수 없고 음악도 들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음악도 들을 수 있고, 때로는 졸리면 잠을 청할 수도 있는 차 안은 나의 최애 장소이다.
네 번째, 다양한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차 안에서 듣는 강의는 더욱 몰입이 잘된다. 이유는 집이 아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특히 철학 강의는 어려워서 반복해서 듣는 경우가 많은데 몰입이 잘되는 차 안에서는 희한하게 한 번에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다섯 번째, 비가 내리는 광경과 소리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집에서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비가 안으로 들이쳐 창문을 열어 놓을 수 없다. 창문을 닫아 놓으면 빗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차 안에서는 창문을 닫아도 차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얼핏 들으면 빗방울이 일정하게 떨어지는 소리로 들리지만 가만히 집중해서 들어보면 크게 한 방울 툭, 작게 토독, 후두두둑.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저마다의 소리를 내고 있다. 서로 다른 소리들이 연결되어 하모니를 이룬다. 사람도 저마다 생김새와 성향이 다르듯이 빗방울도 각각의 고유한 소리를 내고 함께 어우러진다. 참 아름답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한 번 담근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말했다. 오늘 나와 함께 한 비는 내일 또다시 만날 수 없다. 오늘 내린 비는 내일 내리는 비와는 다르다. 오늘의 나 역시 내일의 나와 다르다. 온전히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고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겠다. 편하게 누울 수도 없고 같은 자세로 3~4시간을 앉아있게 되지만 비좁고 불편한 이곳에서 나는 진정한 자유를 느낀다.
<함께 읽으면 좋은 추천 도서>
조오 작가의 '나의 구석'
구석을 발견한 까마귀. 까마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공간을 가득 채운다. 벽면을 가득 채운 까마귀는 행복했지만 어쩐지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결국 한쪽에 벽을 뚫어 작은 창을 내고 창밖 너머 하얀 새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내가 사랑하는 공간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우면 좋을까? 아이들과 함께 자신의 좋아하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