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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해 Aug 17. 2022

모두가 그렇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여보 당신도 어서 들어와봐”

나는 분명 싫다고 했다. 싫다는 것을 왜 강요하는걸까. 남편이 미웠다. 더 이상 거절하기도 귀찮아 남편의 시선을 피했다. ‘정말 싫다니까!’  

   

 나는 바다가 싫었다.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휴가철 바다에 북적이는 사람들의 모습만 떠올려도 피곤하다. 수영도 못 할뿐더러 추운 것을 끔찍이 싫어해 차가운 바다에 몸을 담근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바다에 들어가면 추워서 이를 딱딱 부딪히며 덜덜 떨것이다. 물에 젖은 발바닥에는 모래가 덕지덕지 붙어 아무리 털어내려고 해도 털어지지 않을 것이다. 발바닥에 붙은 모래를 떠올리면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변신’에서 그레고르의 등에 박힌 ‘사과’가 연상된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등에 단단히 박혀 떨어지지 않는 그레고르의 사과는 발바닥에 붙어있는 모래와 같았다. 모래는 이따금씩 반짝이는 모습을 드러내며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레고르 역시 등에 박힌 사과를 바라보며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6월 중순 이른 휴가를 떠났다. 강릉으로 향하는 길은 한산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양옆에 푸른색을 품은 산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산을 보면 떠오르는 고유한 느낌이 있다. 숭고함, 경건함, 쾌적함, 산뜻함 등이 있다. 가족들은 바다보다 산을 더 좋아하는 나를 배려해 늘 산을 찾았다. 그러나 이번 휴가는 양양의 쏠비치 호텔을 저렴한 가격에 숙박을 할 수 있다는 소식에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단, 나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다로 향했다. 물론 나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을테니 책과 모자, 얇은 겉옷을 챙겼다. 바다와 적당한 거리인 것 같으면서도 매우 가깝게 느껴지는 곳, 내가 알맞은 거리라고 흔쾌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남편과 아이들은 원했고 나도 나쁘지 않아 좋다고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바다에 뛰어들어 파도를 타며 소리를 쳤다. 오랜시간 차를 타고 와서 그런지 피로감이 몰려와 자리에 누웠다. 그때 멀리서 남편과 아이들이 들어오라며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들어오세요. 진짜 재밌어요!”

 아이들과 남편은 번갈아 가며 들어오라고 성화였다. 처음에는 거절을 하며 귀찮아 했지만 문득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니 어쩐지 신비롭게 느껴졌다. 바다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느껴보자. 모자와 겉옷을 벗고 바닷물에 엄지 발가락 끝부터 천천히 물 속으로 미끄러졌다. 허벅지까지는 차갑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서서히 물이 깊어지고 작은 아이가 내 손을 잡아 당기는 바람에 어느새 바다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큰 아이와 남편은 나에게 물을 끼얹었고 소리를 지르며 나도 같이 물을 끼얹다보니 이미 물은 가슴까지 차올라 있었다.           

 “말도 안돼. 내가 여기까지 들어 온거야?”

 초등학생 시절 이후 바다에 이렇게 깊이 들어와본 적이 없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나는 분명 바다를 싫어했는데 이상하게 심장이 요동을 쳤다. 수평선 너머 반짝이는 바다는 우주와 닮아 있었다. 반짝이는 물결은 우주에서 빛나는 수 많은 별들과 같았다. 바다가 이렇게나 아름다웠단 말인가. 눈을 감고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의 흐름을 느껴보았다. 파도가 이끄는 대로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 앞으로 향하기를 반복했다. 인생의 흐름과 닮아 있었다. 잠시 물러설 때가 있는가 하면 힘든 시기가 지나 앞으로 향할 때가 있다. 파도와 인생 또한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바다에서 느꼈던 자유가 바로 이런 느낌이었을까. 자유와 해방 그리고 살아있음을 느꼈다. 늘 계획하고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면 힘들어 했던 삶에서 바다가 리드하고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겨두니 힘들었던 일들이 해소가 되는 것 같았고 자유를 되찾은 느낌이었다.      


 그동안 나는 왜 바다를 싫어했을까. 바다를 온전히 느껴본 적도 없었다. 짧은 경험에 빗대어 그것이 마치 바다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 마냥 무조건 거부했다. 바다에 발을 담그는 순간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바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와 해방, 신선함과 편안함 그리고 따뜻함. 바다 밖에서의 물은 너무도 차갑게 느껴졌다면 바다 안은 매우 따뜻하고 포근한 곳이었다.      


 오랜 시간 나는 바다를 싫어하고 거부했다. 어쩌면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나만의 기준과 판단으로 선을 긋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의 시처럼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고정된 관념과 편견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온전히 품을 수 있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와 내가 그런 것처럼. 모두가 그렇다.     



<함께 읽으면 좋은 추천 도서>

나태주 시인의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이 초등학교 교장으로 학교에 몸담고 있던 시절 쓴 시 '풀꽃'

아이들을 사랑하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담긴 그림책이다.


우리와 함께 하는 모든 것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자세히 보고, 오래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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