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오케스트라 : 층간소음

우리 아파트에 브레멘 음악대가 사는 것 같다.

by 레이다


쿵, 쿵쿵쿵.


재택근무와 층간소음을 견디던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귀가 트였다.


정확히는 이 집에 이사 온 5년 만에 재발했다.

발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거실로 튀어나왔다.

발소리가 멈췄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불쾌한 소음이 소름 끼치게 진동했다.


귀트임.


그것은 소음에 예민해져 아주 작은 소리까지 들리게 되는 초대형 재난을 뜻한다.

나는 창밖의 마른 나뭇잎 굴러가는 소리도 들리는 초능력이 생겼다.


한마디로 인생 난이도가 격상했다.

5년 전. 층간소음으로 고통받던 우리 집은 윗집에 모든 회유를 실패하고, 단지 내 다른 동으로 이사 왔다.


한 번의 이사로 자리 잡으면 해피엔딩.

하지만 이사 간 집에서 또다시 층간소음을 마주하면 돈도 희망도… 모두 잃는 꽉 닫힌 배드엔딩.


절대 귀가 트여선 안 된다.

소음에 무딘 것은 큰 자산이니까…




초능력자가 된 이후, 아파트의 소리가 다채로워졌다.


먼저, 누군가 묵직한 뭔가를 바닥에 쿵! 쿵! 던졌다. 내 심장도 쿵! 쿵! 뛰었다. 심장을 통제하려 찾아간 병원에선 약을 처방해 줬다.


농구공을 튕기는 소리도 들렸다. 아이들은 개인 공간과 공용 공간을 자유롭게 내달렸다. 내 심장도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파트에 쿵! 쿵! 소리가 울릴 때면 누군가는 피아노를 주먹으로 연주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발을 구르며 끔찍한 오케스트라를 이뤘다.


우리 아파트에 브레멘 음악대가 사는 것 같다.




관리실에 전화해 보았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누군가 소음을 기록하라고 했다. 법적 증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들려오는 소음을 모두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록할수록 소리에 더 귀 기울이게 되었고, 멀리서 들리던 소음은 점점 또렷해졌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각. 걸음이 떼지지 않았다. 언 발을 꼼지락대며 불 켜진 아파트를 올려다봤다. 빼곡히 켜진 불들. 두통이 머리를 조여왔다.


자기 전, 침대에서 유튜브를 보는데 이명이 울렸다. 귀를 막으니 들리지 않았다. 저주파 소음 공격… 층간소음 커뮤니티에서 본 적 있다. 곧 멀리서 위압적인 고함 소리가 들렸다. 이명 같던 저주파 소음이 잦아들었다.


거의 모든 시간을 거실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조용하면 좋을 것 같지만,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소음에 예기불안이 생겼다. 작은 소리에도 몸이 삐걱거렸다.


콘크리트를 진동하는 소음과 질주가 이어지던 어느 날. 나는 약에 기대어,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데 집중하려 애썼다. 모니터 두 대가 필요한 상황. 카페나 도서관으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사물놀이 북 속에 갇힌 것 같았다.


무력감.


내가 시도한 모든 것이 실패했다. 무력감에 남은 의욕마저 잡아먹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침대에 널브러져 마음껏 울지도 못했다. 노이즈 캔슬링을 뚫고 소음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 하하…”

텅 빈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던 안락함은 이제 남아있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건 소음 없는 일상이었다.

다음 날, 나는 짐을 챙겨 집을 떠났다.


정숙과 예절, 배려가 근간인 공간.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망치듯 찾은 그곳에서 한가닥 희망을 발견했다. 우연히 펼친 책이 건넨 질문. 그 답을 적기 위해선 나를 깊이 들여다봐야 했다. 이 과정에서, 절망 속에 잊었던 무언가가 다시 떠올랐다. 붕괴된 삶의 분진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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