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했던 겨울이 지나고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왔다.
어떤 도파민도 없다. 좋아하던 음식도 그토록 열광하던 덕질도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덕질이나 음식도 여유가 있어야 즐길 수 있었구나… 모든 게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다.
반복되는 실패로 무력감이 학습되면 아무런 의욕도 들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답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 침대에만 누워있게 된다. 나 역시 식음을 전폐하고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으나 그마저도 할 수 없는 고통이란. (내 서사 누가 짰니?)
나는 지금 도서관에 와있다. 한 겨울, 히터가 닿지 않아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구석 창가 자리. 패딩도 벗지 않고 앉아 있다.
…춥다.
하지만 집보다 안락하다.
눈발 사이로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흔들린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이 눈에 띈다. 진작 떨어져서 거름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끈질기게.
그게 내 모습 같아서 봄이 올 때까지 붙어있길 응원해 본다.
우연히 책 한 권을 추천받았다.
<부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읽으며, 기능을 상실했던 정신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책은 사실 돈에 관한 책이 아니에요.”
“삶에 관한 책이죠.”
이런 설명이 나온다.
나는 여기에 한마디 더 붙이고 싶다.
“멈춰버린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책”이라고.
돈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책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사유를 거듭하게 된다.
먼저, 살면서 한 일 중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사회 초년생 때부터 100만 원씩 무조건 저축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규칙을 깨지 않았다. 몇 해가 반복되니 습관이 되었다. 금액도 점차 늘려갔다. 정말 알뜰히 저축했다.
아직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바닷가 마을의 조용한 주택에서 읽고 쓰고 그림 그리며, 매일 아침 소음 없이 눈뜨는 삶을 꿈꿨다.
내가 돈을 열심히 모았던 이유는 노후 준비도 있지만, 세계여행이란 꿈이 있었다. 여행하며 아름다운 것들을 오래 보고 싶다. 영감을 떠올리고, 수집하고, 기록하고, 구체화시키는 일. 그리고 몇 년 뒤 어딘가에서 우연히 이것들을 발견했을 때, 영화처럼 재생되는 그날의 기억. 그 순간을 사랑했다.
가장 큰 충족감을 주는 일은 내가 필요한 존재라고 느껴질 때였다. 나는 내가 인간혐오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선 단절보다 사회적으로 연결되기를 원했다.
절망 속에서 살아갈 힘이 전부 고갈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고, 사유하며 ‘이미 이룬 것도 있었고, 아직 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혼란스러웠다.
무력감은 나를 서서히 죽이고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삶을 버티게 하던 원동력조차 잊게 만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무력감에 빠진 상태에서, 실제 내가 이뤄온 성취들이 충돌하며 머리가 멍해졌다.
이상하고 낯선 기분이었다. 혼합된 감정… 불안, 슬픔, 안도, 기쁨.
형광등이 깜빡깜빡 켜지듯 암전 된 정신이 깜빡거리며 켜졌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제야 조금씩 사고 회로가 작동했다.
아직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정확히는,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벗어나 꿈을 이루고 싶은 의지가 생겼다.
길 잃은 정신이 회복을 향해 목적지를 트는 순간이었다.
이후 나를 더 깊이 취재했다.
층간소음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꿈을 방해하는 벽이자, 꿈을 빼앗는 절망이었다. 이걸 인식하자 차츰 이성이 돌아오고, 감정과 사고가 분리되기 시작했다. 통제 불가능한 현실에 매달리기보다, 진정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집중하기로 했다.
재직 당시, 나는 3개월마다 퇴사계획서를 업데이트했었다. 언제 퇴사해도, 잘려도 길을 잃지 않기 위한 매뉴얼 같은 거였다. (다만 층간소음은 예상 범위에 없던 재난이었다) 퇴사계획서에 세워둔 목표와 리스크를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처음부터 큰 목표를 건들 힘은 없었다. 게임과 비슷하다. 사기당해서 가진 것을 모두 잃었는데 바로 사냥터에 나갈 순 없다. 무력한 죽음과 귀환 엔딩만 기다릴 뿐이다.
할 수 있는 것들을 작게라도 시작했다.
매일 도서관으로 나갔다. 도서관에 나가려면 씻고, 머리를 감고, 옷 갈아입고, 짐을 챙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남들에겐 별거 아닌 이 일상적인 행동을 반복하며, 나는 삶을 회복하는 첫 발을 디뎠다.
집은 항상 긴장해야 했지만, 도서관은 조용하고 몰입에 최적화된 공간이었다.
우선, 유튜브 쇼츠를 만들었다. 매일 쇼츠를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늘어나는 구독자를 보며 보람을 느꼈다. 쇼츠 제작 루틴이 생기자 속도가 붙었다. 어느새 하루에 몇 십 명, 몇 백 명 단위로 구독자가 늘었다. 세 달 동안 구독자 7천 명을 달성했다. 운영 초기엔 예상도 못한 숫자였다. 꾸준히 성장하는 채널을 보며 ‘하다 보면 언젠간 된다.’라는 성취감을 얻었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이제 다음 목표를 시도해도 될 것 같았다.
주단위 스케줄러를 구입했다. 날짜를 적고, 체크박스를 만들고, 할 일을 작성했다. 하루를 마치면 오늘 완료한 일정 앞에 두꺼운 볼펜으로 v표시를 했다. 못해도 괜찮았다. 지금 난 완벽이 아니라 작은 성취가 필요했다.
자기 전, 매일 이 행동을 반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식탁에 앉으면 체할 것 같은 답답함에 정상적인 식사가 어려웠다. 주변에 내 이야기를 하지도 못했다. 개인의 고통이니 혼자 안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귀의 진물이 낫지 않아 에어팟을 내려놓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대체했다. 백색소음이 진동음을 막아주길 기대하며.
혹독했던 겨울이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