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지옥형을 선고받다.

시급 2,000원짜리 인형 눈알 붙이기

by 레이다


새벽 4시.


모두가 잠든 지금.

나는 악착같이 인형 눈알을 붙이고 있다.

핏발 선 내 눈알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모른 척했다.


실업급여 신청 전까지 보름 가량 남았다. 남은 기간 동안 생활비를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 했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재택근무로 전환된 지 보름쯤 지났을 무렵.

2년 만에 소꿉친구 윤지를 만났다. 시끌벅적한 호프집에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오랜만에 만난 윤지는 백수가 되어 있었다.

자발적 실업자가 된 그녀는,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장황하게 설명했다.


“나 얼마 전에 권고사직 당했어.”

이번엔 내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고, 천하제일 불행배틀은 무승부로 끝났다.


“에잇, 오늘 너한테 위로받고 얻어먹으려고 했는데. 나도 백수라 사줄 수도 없고. 더치페이하자.”

그녀는 강호의 도리를 아는 자였다.


그러고는.

앞으로 실업자 후배가 마주할 현실을 낱낱이 읊어줬다.


“내가 말했잖아. 나이 들면 지원할 수 있는 공고 자체가 줄어. 그 줄어든 것 중에서도 또 떨어져. 왜? 어리고 말 잘 듣는 애들만 뽑고 싶어 하니까!”


“지금 모아야 돼. 실업급여 그거 눈 깜짝할 새에 사라져. 시간은 뭐 기다려 주냐고. 7개월 금방이다?”


“알바해서 제주도 여행 가자. 너 지금 안 모으면 나중에 집에서 유튜브 광고나 봐야 돼.”


웃기지? 웃을 때 아니야. 실업 급여받기 전에 바짝 모아야 돼. 진짜 마지막 기회야.”


그녀의 팩트 폭격을 맞고 쓰러진 내게, 윤지는 진통제 대신 아르바이트 자리를 푹 찔러 넣었다.

그리고 암거래하듯 몸을 기울이고…

은밀히 속삭였다.


“이 고급정보 아무한테나 알려주는 거 아니다?”



그녀가 소개한 일은 재택 아르바이트였다.

이른바 온라인으로 인형 눈알 붙이기, 데이터 라벨링. 눈알을 혹사하는 대신, 집에서 혼자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거나, 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이들에겐 최적의 알바다.


허나 단가가 낮았다.

상상한 것보다, 그그그 이상으로 많은 양을 처리해야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내가 했던 알바는 논문 속 오탈자를 교정하는 일이었다. 논문에는 한자가 수두룩했다. 한글이나 숫자는 쉽게 고칠 수 있지만, 한자는 얘기가 달라진다.

틀린 글자를 찾으려면 획 하나하나를 눈으로 따라가야 했다.


교정을 끝내면 검수가 기다린다.

검수를 통과해야 승인.

하지만 반려되면?

끝날 때까지 재작업, 재작업, 또 재작업…




가장 해로운 해충은 대충이라고 한다.

나는 눈알 붙이기를 대충 한 죄로 반려지옥형을 선고받았다.


지긋지긋한 노역에 지쳐 잠이 들었던가.

꿈에서 나는 면허를 따고, 첫 도로주행을 하고 있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 똥차가 앞의 차를 박았다. 선명한 로고가 클로즈업되었다.


페라리.


“…어, 어떡해?”

“내 시급은 2,000원인데...”

“어제도 12,500원 벌었는데…”


오래된 통돌이 세탁기처럼 덜덜 떨리는 몸이 과장되게 느껴졌다. 핸들을 부여잡고 울면서 잠에서 깼다.


“허억...”


불 꺼진 방, 새벽이었다.

눈물로 축축한 얼굴. 꿈속의 정신은 아직 주인을 찾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벌써 5일째, 형벌이 이어지고 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재작업을 반복했다.

검수자들에게 나는 대역죄인이었다.


착실한 검수자는 고쳐야 할 항목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해 줬다.

그렇지 않은 검수자는 ‘전체적으로 오탈자 수정‘하라는 메모를 복사해 붙여서, 수십 건을 반려했다.

...그 역시 반려지옥에 끌려와 노역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쌓이기 시작한 반려건은 사채이자처럼 불어났다. 덕분에 내 시급은 헐값으로 떨어져 2,000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자 획을 하나하나 뜯어보느라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그때였다.


쿵! 쿵! 쿵!


어디선가 들려온 정체 모를 소리.

매일 이 시간쯤 반복되는 소리다. 매번 참고 넘기던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마우스 쥔 손에 힘이 빠졌다.

방금 고친 한자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아, 대체 몇 번을 고치는 거야.'


나는 노트북 화면을 노려보며 한숨을 쉬었다.

마우스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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