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금붕어 똥처럼 불안을 견인해 왔다.

자존감 장례식

by 레이다


재택근무가 시작됐다.


사실상 유급휴가와 다를 바 없었다.

한 달 내내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으니까.


프로젝트 협업과 사내 구성원에서 떨어져 나온 집콕 생활은 편했다. 앱으로 ‘출근’과 ‘퇴근’ 버튼만 제때 눌러주면 하루 일과가 끝이었다.


명목상의 재택근무는 한 달 동안 이어졌다.




사무실을 떠나던 마지막 날.

가장 먼저 대표님을 찾아뵙고 인사했다.

퇴사하면 어떻게 지낼 거냐는 대표님께 부족한 공부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쉬고 싶다고 했다.


“13년 동안 한 번도 안 쉬었으면 그래도 돼.”

대표님의 대답은 잠시 쉬어가도 된다는 허락처럼 들렸다.


그 와중에 어필도 잊지 않았다.

“디자인 필요하시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세요.”

“웹, 앱, 편집, 출판, 일러스트 다 됩니다.”


잠시 떨어지는 것뿐이라는 대표님의 말이 돌아온다.

형식적인 인사에 의미를 부여하며 희망을 찾는 나.

부디 새 회사를 차리시면 다시 절 고용해 주시고, 하시는 일마다 만사형통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아까부터 맴도는…


미안함.


그 많은 직원들을 보내고서도 익숙해지지 않으실까.

…하필 그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는 나.


“대표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잘 놀다 갑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자.

“하하하! 그렇게 생각해 주면 다행이고.”

관객의 웃음이 시원하게 터졌다.


그제야 회의실을 감싸던 공기가 가벼워졌다.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돌며 인사를 건넸다.

거의 초상집 분위기였다. 나는 전생에 광대였는지, 남을 사람들을 위해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나의 관객들은 침을 튀며 웃거나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권고사직이 꼭 불편한 이별이 될 필요가 있을까.

앞날은 어찌 될지 모를 일이다.




사무실 짐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온 주.

10년 만에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충주호에 처음 가보았는데 우리나라에 이렇게 멋진 전망대가 있는지 몰랐다. 드라마 배경지에서 자전거도 타고 홀가분한 시간을 보냈다.


집에 있는 시간에는 PC게임을 했다. 보름의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위험성을 인지하고 게임을 접었다.

이후 밀린 드라마와 좋아하는 영화를 다시 보았다.

그 외의 시간은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며 흘려보냈다.


남들은 출근해서 일하고 있을 시간.

침대에 널브러져 느지막이 눈을 떴다.

집에 있는 시간이 행복했다. 평생 이렇게만 살고 싶었다.


하지만.

행복은 금붕어 똥처럼 불안을 견인하고 다녔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징, 징징징.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회사 동기, 이제는 친구가 된 그녀의 이름이 떴다.

"잘 지내?"라는 안부를 주고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는 불쑥 핵심을 찔러왔다.


“포트폴리오는 만들고 있어?”

“아니?”

“언제 만들게.”

“……”


현재 가장 피하고 싶은 것.

13년 치 작업물을 포트폴리오로 정리하는 거다.

미루고 미룬 일을 처리할 생각에 위장병이 터질 것 같았으나, 두 달 치 월급과 실업급여를 떠올리며 위장을 달랬다.


따라 해, 나는 9개월간 보장된 급여가 있고, 여차하면 퇴직금도 있어.

‘겁먹지 마.’

스스로를 다독여도 불안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내 경력이 사회에서 통할까?’


‘예전처럼 월급 밀릴 걱정 없는 회사에 다시 취업할 수 있을까?’


‘나이도, 경력도 많은 날 받아 줄까?’


‘희망연봉도 파격가로 던져야 하는 거 아닐까?‘


‘나… 땡처리?’


자존감이 관짝을 열고 들어갔다.

놈의 장례를 치르고서야 애써 생각의 끈을 놓았다.

혹시나 대표님이 새로 회사를 차려 다시 불러주지 않을까, 헛된 희망회로를 돌리면서.


앞으로 닥쳐올 재난은 한 치 앞도 예상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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