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권 12장 팝니다.

...제가 오늘 권고사직 당해서요.

by 레이다


그날은 유난히 사무실이 어수선했다.


점심시간도 아닌데 사무실 곳곳에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팀원들은 대부분 자리를 비운 채였다.


[오늘 출근했어요? 잠깐 차 한 잔 괜찮은지…]

카톡으로 대표님의 호출이 왔다.


입사 첫날 이후 세 번째 독대였다.

마주 앉은 대표님은 평소와 같이 미소 띤 얼굴이지만, 묘하게 난처한 기색이 묻어났다.


운을 띄우며 무슨 이야기할지 아냐고 물었다.

모시는 신은 없지만, 다음 순간 대표님 입에서 나올 말이 선명하게 보였다.


“…팀 해체하기로 했어. 미안하게 됐어.”


이러저러한 복잡한 사정으로 그룹사에서 우리 팀을 해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했다.

다음 달은 재택근무, 남은 달은 유급휴가 처리 될 거라고. 퇴직사유는 권고사직.


매번 엎어지던 프로젝트, 완전히 달라져 버린 기획 방향성… 사실 이미 이 팀의 끝은 보였고, 우리는 모두 간절하게 그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루아침에 13년 동안 다닌 그룹사에서 책상을 빼앗겼다. 예견하던 일이어서였을까, 책상에 내 짐은 거의 없었다. 토스터기 만한 가방 하나에 모든 짐이 담겼다.

올 때도 가볍게 왔는데, 갈 때도 가볍게 가는구나.


...아, 처리해야 할 게 하나 남았다.

보름치 미리 구매했던 구내식당 식권.


구내식당 점심 멤버도 나와 같은 신세라, 서로 양도할 수 없어 씁쓸하게 웃었다.


식권은 당근마켓에 올렸다. 등록한 지 십여 분 만에 연락이 왔다. 근처 건물에 근무하는 직장인이었다.

나는 이제 남는 게 시간이다. 내가 구매자 회사 건물로 찾아가겠다고 약속을 잡았다.



당근 거래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기묘하게 알아본다. 저 사람이 맞나, 아닌가? 하는 의문과 어색한 긴장감이 삐걱거리는 모습으로.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이체해 주며 물었다.

“다음 달 식권도 파실 거예요?”

그는 내가 회사에서 식권을 무상으로 제공받는다고 착각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

‘10원 한 푼도 지원받지 않은 내돈내산입니다.’


속으로 혼잣말을 줄줄 읊고 있는데, 갑자기 서러움이 급발진했다. 권고사직 통보받을 땐 덤덤했으면서 청개구리 심보도 아니고!


권고사직 통보보다 더 마음을 짓누른 건, 누군가는 나 대신 식권으로 여전히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제가 오늘 퇴사했어요. 그 식권이 마지막이에요. 맛있게 드세요.”



버스를 기다리던 중 알림이 울렸다.

[감사합니다. 잘 들어가세요!]

구매자가 메시지를 남겼다.

또한 그는 내게 후한 매너 평가를 주었다.


매너 평가란, 당근 거래 후에 서로의 매너를 평가하는 성적표 같은 거다.


- 친절하고 매너가 좋아요.

- 시간 약속을 잘 지켜요.

- 제가 있는 곳까지 와주었어요.


회사도 내 평가를 후하게 쳐주었다면 지금, 이 대낮에 집으로 돌아갈 일은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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