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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더 무서울 거 같아, 너는?

by 윤신 Jan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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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이 숭숭 난 철제 철망을 폴짝 피해 가던 넌

칠흑 같은 곳에 네가 꼭 흘러 내려갈 것만 같다 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이름 없는 손이 뻗어 나와

내 발목을 잡을 것 같았고


깜깜한 밤 혼자 산 길을 걷다 만나는

사람이 무서워, 귀신이 무서워?


무화과 깜빠뉴를 뜯어먹으며

곰이 있으면 나눠 먹을 텐데

산에서 튀어나오는 게

붉은 리본을 단 테디베어라면 두렵지 않을 텐데


우리는

일 인분의 수채구멍 위에서

일 인분의 수도꼭지를 쥐고


밤이 되자 하필이면 그 아이가 생각났다

행복을 쉽게 여기며 조금도 행복하지 않던 아이

물렁뼈에 앞니가 반으로 부러진 아이

눈 옆에 까만 점이 예쁘던 아이


그 아이도 무서웠을까 칸칸의 수챗구멍이

손끝이 하얗게


풀지도 못할 수수께끼를 쥐다가

산 길은 어둡네 어두워서 그윽하네 이제는

아무것도 상관없다는 듯 노래하다가


모든 건 결국 점점 낡고 닳겠지만


비밀인데 요즘 내가 무서운 건

말하고 싶을 때 말할 사람이 없다는 거야

가만히 앉아 뚫린 수챗구멍이나 바라보면서

난 이게 무서워 넌 뭐가 무섭니

말할 사람이 없다는 거


시커먼 구멍 앞에 서서

언제 손이 뻗어 나오나 기다리다

사람이 더 무서울 거 같아, 너는?

너의 대답을 떠올렸다


사람은 있어도 없어도 무서워

그렇게 나는 대답했던가


아무리 기다려도 손은 뻗어 나오지 않았다

수챗구멍 아래 손을 깊게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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