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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이 숭숭 난 철제 철망을 폴짝 피해 가던 넌
칠흑 같은 곳에 네가 꼭 흘러 내려갈 것만 같다 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이름 없는 손이 뻗어 나와
내 발목을 잡을 것 같았고
깜깜한 밤 혼자 산 길을 걷다 만나는
사람이 무서워, 귀신이 무서워?
무화과 깜빠뉴를 뜯어먹으며
곰이 있으면 나눠 먹을 텐데
산에서 튀어나오는 게
붉은 리본을 단 테디베어라면 두렵지 않을 텐데
우리는
일 인분의 수채구멍 위에서
일 인분의 수도꼭지를 쥐고
밤이 되자 하필이면 그 아이가 생각났다
행복을 쉽게 여기며 조금도 행복하지 않던 아이
물렁뼈에 앞니가 반으로 부러진 아이
눈 옆에 까만 점이 예쁘던 아이
그 아이도 무서웠을까 칸칸의 수챗구멍이
손끝이 하얗게
풀지도 못할 수수께끼를 쥐다가
산 길은 어둡네 어두워서 그윽하네 이제는
아무것도 상관없다는 듯 노래하다가
모든 건 결국 점점 낡고 닳겠지만
비밀인데 요즘 내가 무서운 건
말하고 싶을 때 말할 사람이 없다는 거야
가만히 앉아 뚫린 수챗구멍이나 바라보면서
난 이게 무서워 넌 뭐가 무섭니
말할 사람이 없다는 거
시커먼 구멍 앞에 서서
언제 손이 뻗어 나오나 기다리다
사람이 더 무서울 거 같아, 너는?
너의 대답을 떠올렸다
사람은 있어도 없어도 무서워
그렇게 나는 대답했던가
아무리 기다려도 손은 뻗어 나오지 않았다
수챗구멍 아래 손을 깊게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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