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E 시리즈와 브런치북 프로젝트
상상했던 내용과 달라 끝까지 읽진 못한 것 같지만, 내용과 관계없이 책장에 홀로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뽐내던 ABE 시리즈 중 <우리 어떻게 살 것인가>는 특히 시험기간 혹은 방학이 끝날 무렵마다 나에게 질문을 던지던 책이다. "그래서 '우리' 어떻게 살아야 되니?" 하고 굵고 단단한 글씨체로. 난 그 속에 어떤 내용이 들었을지 멍하니 상상하며 앞에 놓인 과제물들을 효과적으로 미룰 수 있었다.
실제로 ABE 전집을 보유했거나 열심히 읽었던 사람들이 가득한 이 링크(ABE는 어떻게 기획된 시리즈였을까요?) 속 게시물과 댓글에는 적확한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 '교양'이 흐르는 것만 같고, 댓글에 시리즈 기획자를 인터뷰했다는 과거 언론인도 등장해서 흥미를 끈다. "당시 그 출판사(동서문화사)가 운동권 출신들이 모여 만든 출판사여서 자연스럽게 그런 의식(?)이 있는 분들이 좋게 읽었던 책들을 추천하면서 그게 모여서 문고가 된 것이라고 하더라"고. ABE 시리즈가 아동용이었다는 사실은 내겐 조금 충격적이었다.
갑자기 이 책을 검색하게 된 것은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을 표방하며 베타 서비스 중인 '브런치'와, 그 플랫폼에서 시작한 이벤트 #브런치북 프로젝트 때문이다. 자신만의, 혹은 다른 작가와 브런치북 매거진을 만들고 그 안에 10개 이상의 글을 한 달 만에 써 내면 응모되어 당선작에 한해 크리스마스에 책을 발간해 준다고 한다.
브런치의 론칭과 이 이벤트를 보는 느낌은 아이패드를 처음 구매해서 ibooks 앱을 처음 실행하고 나만의 서재에 넣어볼 때의 그것과 흡사하다. 실제 꺼내 읽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존재감만은 확실하다는 느낌. 지금은 전자책이나 아이패드를 이용하지 않지만 여전히 그 첫인상은 내 기억 속에 남아있기 때문에, 그 존재감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존재감을 떠올리자 내게 은근히 영향을 준 ABE 시리즈 책 한 권이 떠오른 것이다.
브런치는 꽤 오랜 기간 동안 베타 서비스로 돌아갈 것 같다. 적어도 그동안은 '작가 선정' 절차가 그렇게 개방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 선정된 작가들은 저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이 서비스에 대한 인상을 습득하고, 또 형성하고 있다. 그 인상은 마치 서두에 언급한 게시판에서 느껴지는 '교양'과 비슷하단 것이 신기하다. 작가 등단(?)의 난이도에 비해 기존에 만들어 둔 매거진으로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은 클릭 단 세 번이면 된다. 어젯밤에는 내 매거진 태그 3개 중 어떤 것을 지워야 하나, 고민하며 잠들었는데 기우였다. 추가로 태그 하나가 붙는 것.
브런치가 커다란 가상의 서재라면, 이번 이벤트는 아마 그 서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처음으로 진열할 책들을 고르는 일일 것이다. 한 달 동안 작가들은 열심히 혹은 늘 그랬듯 쓰고 엮을 것이다. 그 한 달을 지켜보는 것도 기대되지만 그보다 더 기대되는 것은 브런치라는 서재에서 앞으로도 늘 존재감을 지닐 작품들 - 브런치북 -이다.
표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화면 캡쳐
이미지 출처 : 유어마인드 http://your-mind.com/product/detail.html?product_no=246 화면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