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예술공장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2015> 미디어 파티 개막식
"락페 온 것 같은데요"
봄베이 사파이어 칵테일 부스 앞에서, 저 쪽 코너만 돌면 보이는 빈지노의 아쿠아맨을 BGM으로 한 기자가 말했다.
그는 직전에 '1024 아키텍쳐'의 팬이 될 것 같다 이야기한 터였다. 이것이 락페라면 헤드라이너는 빈지노가 아니라 1024 아키텍쳐 겠네요,라고 답할 걸, 하고 집에 와서야 생각났다. 정말이지 센스 없는 홍보 담당자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 처음 만난 프로젝션 매핑 공연, 1024 아키텍쳐의 무대는 내가 처음 소위 EDM이 멋지다고 느꼈을 때(아마도 2012 레인보우 페스티벌의 이디오테잎 무대) , 실내 록 공연에 싸이키조명을 쓰는 게 언제나 무리수인 것만은 아니라고 느꼈던 순간(아마도 2008 섬머소닉 오사카의 실내체육관에서 뮤트매쓰의 티피컬)에 느꼈던 것과 흡사한 감정을 선사했다. 비록 어떤 기자-예술가는 작년과 헤드라이너(라고 지칭하진 않았다.ㅋㅋ)가 똑같다고 툴툴대긴 했지만.
이른 저녁을 먹을 것이 아니라 이들의 렉쳐를 들었어야 하는 것 같다.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2015>는 사실 예술과 기술이 융합한 작품 13점을 선보인 체험전시다. 30일까지 금천예술공장에서 무료 관람과 체험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일종의 전시 리뷰인 셈인데 나는 '미디어 파티'를 표방한 개막식 분위기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내일이 되면 전시는 다시 볼 수 있어도 개막식에 대한 감상은 흐릿해질 테니까.
파티는 일단 북적여야 성공이다. 잔을 하나 들고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주변에 작품만 있고 사람 하나 없다고 생각해보자. 왠지 더 긴장해서 정돈된 말을 던져야 할 것만 같다.
그 점에서 오늘의 파티는 정말 편했다. 불편하기 딱 직전까지 붐볐다. 그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의 기분이란, 외국의 파티 문화에 대한 의구심을 일시에 지울 수 있는 경험이었다. 렉쳐와 사전 등록자에게 주어지는 무료 음료 교환권, 빈지노 공연 등이 주효하지 않았을까?
고작 열세 점의 작품을 하루 수백 명의 사람이 본다. 그런데 몇몇 작품은 자리에 앉거나 침대에 누워서 1~5분 동안 체험을 해야 한다. 자연스레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긴다. 멀리서 보이는 줄은 궁금하다. 궁금하다!!!! 궁금한 것이다. 그래서 줄을 선다. (대림미술관은 좁아서 흥합니다. 다들 한 번씩은 가 보셨잖아요.) 사실 무엇보다도 작품이 흥미롭긴 했다. 뉴스로 2분 만에 둘러보기
내가 처음 금천예술공장을 방문했던 건 아마도 2010년이었을 거다(그땐 나도 나름 기자였네). 큰 레지던시였다. 공용주방과 쉼터가 깔끔하고 개방적이어서 인상적이었던 기억인데 오늘은 적당히 배치된 앉을 공간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사람들은 곳곳에서 쉬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좀 더 깊은 네트워킹에 열중했다.
음식은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빵과 소시지 팝콘 등이었다. 손에 묻지 않고 크기가 크지 않았다. 그래서 남기는 것이 별로 없었다. 길목마다 휴지통이 쉽게 눈에 띄었다. 앉아 쉬는 곳에 먹다 남은 음료들이 많이 보이긴 했지만 장담컨데 관람객 수에 비해 깔끔한 편이었다.
너무 칭찬만 한 것 같아서. 동선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줄을 기다릴 때면 볼 것이 없어 조금 심심했다. 아마도 늘 이렇진 않을 테니.. 크게 상관없을 것 같긴 하다. 지루하다고 다빈치 아이디어 앱을 다운받는 사람은 딱히 보이진 않았다. 개막식 퍼포먼스나 극히 일부 작품이 15세 미만 아이들이 보기엔 부적절하단건 불분명하게 공지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천예술공장 곳곳에 뛰어다니는 동네 아이들의 모습에서 레지던시가 이렇게 지역주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간 적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문화재단 조선희 대표는 허르만 콜겐(Herman Kolgen)과 1024 아키텍쳐의 개막 퍼포먼스 사이에 있던 시상식 순서에서 단상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전시와 퍼포먼스를 보면 21세기는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단상에 올라와서 시상식을 진행하니 20세기로 돌아온 느낌이다. 내년에는 전시와 퍼포먼스 분위기에 맞춰 이 순서도 조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창고동을 가득 채운 관람객의 박수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페북에서 본 예술계 종사자 한 분의 게시물은 예술 전시장에서 열린 빈지노의 공연을 에둘러 비판했다. 하지만 락페를 즐기는 사람이 기린의 무대를 보고 욕하진 않는 법이지 않나.
무엇보다 전시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지키고 선 신진작가들의 표정이 밝았다. 목소리도 힘이 있었다. 전시를 다 보고 빈지노의 공연을 잠시 함께 지켜보던 한 중견작가는 소감을 묻자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재밌게 봤어요! 그나저나 못 보던 작가들이 많네요?" 그래서 대답했다. "초청작가도 있지만 신진작가 아이디어 선정해서 제작지원을 했다고 해요."
지역 주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축하 공연은 아홉 시를 기점으로 칼같이 끝났다. 하지만 전시는 밤 열 시까지 이어졌다. 축하 공연이 끝나고 '가상현실에서의 죽음'을 체험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모 창작공간 매니저는 놀라움 반 부러움 반 섞인 목소리로 "금천은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했다. 6년 전만 해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특히 미디어 아트 분야의 국제교류에 있어서는 최고 수준에 오른 것이 아닌가 하는 평가였다.
내년 가을이면 3년째를 맞는 이 페스티벌, 모르긴 몰라도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글은 매거진 「문화+서울」 2015년 10월호에 다듬어 실었습니다. 물론 아주 많이 고쳐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