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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사랑 Jan 07. 2020

내가 번호를 바꾸지 못하는 건


완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순 있다는 모순적인 말을 믿는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이 말을 처음 듣고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가족이었다.


아빠랑 싸우고 독립을 했다. 아무리 먹어도 언젠가 배는 또 고프다는 게 슬펐다. 짜증이 나서 며칠이고 먹지 않으면 애인이 슬퍼했다.


어느 날은 맥도날드에서 같이 햄버거를 사 먹으며 맛있다고 말했다.


그가 일주일 동안 부산에 있는 본가에 가겠다고 했다. 햄버거를 먹으려고 입을 벌리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다. 가족이랑 사이가 좋고, 마치 휴가인 양 아무렇지 않게 본가에 갈 수 있는 그가 부러웠다. 적어도 당시의 나에게는 그런 곳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만든 건가. 입가에 햄버거 소스를 묻힌 채 처량하게 울었다.


추석에도 그는 부산에 갔다.


짐을 싸서 그의 집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옆에는 없지만 냄새라도 맡으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너저분한 옷을 개고 바닥을 밀고 더 이상 할 일이 없자 다시 누웠다. 그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거지?’ 세상에 오롯이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아 이번엔 소리 내 엉엉 울었다. 궁상도 그런 궁상이 없었다.


설에도 그는 부산에 갔고 나는 밥을 먹지 않았다.


엄마가 집에 오라고 했다. 배고픈 게 싫어서 결국 나도 집에 갔다. 누구와도 제대로 인사하지 않았다. 엄마가 “배고프지?” 하며 전과 떡국을 줬다. 그걸 먹고 있는데도 또 세상에 오롯이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아서 몰래 울었다. 속이 쓰렸다. 아빠가 내 휴대전화 충전기를 챙겨 주었지만 웃을 수 없었다.


언제나 내가 어떤 감정으로 어떻게 행동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두려움, 슬픔이 한데 뒤섞여 다리가 후들거리고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무언가에 압도된 사람처럼. 결국 나는 터져 버렸다. 이곳에 오는 게 아니었다고 소리쳤다.


폭력이 당연한 세대와 폭력이 얼마나 나쁜지 아는 세대. 서로 상처 주는 관계를 절대적인 천륜이라 부를 수 있는 건가? 왜 이해하려는 노력을 선행하지 않고 모든 잘못을 나에게 덮어씌우며 나만 잘못된 거라고 생각할까?

결국 상처투성이가 된 건 나뿐인데.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람은 나뿐인데.          



나는 너무나 가만히 있는데 불안정한 사람들은 내 곁으로 와 나를 상처 입힌다. 그래서 나의 감정을 표출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하면 그들은 오히려 더욱 나를 몰아붙이며 또 다른 상처를 준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려고 공부하는데 그들은 나를 이해하려고 공부하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는 폭언을 하고서 사과할 사람은 나고, 기어야 할 사람도 나라고 생각한다. 왜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입은 상처가 내 탓으로 돌아오는 것이 참 익숙하다는 게 서글펐다. 세상에 이렇게나 치명적인 오류가 있는데 그 누구도 고치지 않았다. 나는 그때부터 죽은 듯이 내 방에만 갇혀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렇지만 번호를 바꾸지는 못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어서일까?


다른 사람을 쉽게 받아 주지 않는 성격이 되려면, 전화번호를 쉽게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왜 그들은 내가 그들을 떠나지 못할 거라고, 떠나면 안 된다고 생각할까? 일생일대의 미스터리다.          




나는 멍청한 나의 역사를 되짚어 봤다. 가장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나의 원숭이를 도둑맞았던 그때의 기억.

이상하게 원숭이를 좋아했다. 애착이 심해 24시간 내내 지니고 다녔던 원숭이 인형 목도리가 있었다. 동네 문구점에서 산 분홍색 원숭이였다.


한겨울 늦은 저녁, 같은 공부방에 다니던 한 여자애와 집에 가는 길이었다. 그 애가 자기 가방을 놀이터에 놓고 왔다며 대신 찾아다 달라고 했다. 난 바보같이 달려가 그 애 가방을 가져왔다. 그사이 내 가방을 맡았던 여자애는 내 원숭이 인형을 몰래 꺼내 숨기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제 가방을 들고 돌아오자 급히 인사하며 집으로 갔다.


매일 밤 목을 감싸던 보드랍고 포근한 감촉이 없어지자 잠이 안 왔다. 혹시나 내가 공부방에 인형을 안 가져간 게 아닐까 싶어 온 집 안을 다 뒤졌다. 침대 밑에 기어들기도 하고 어린애 팔 하나 겨우 들어갈 장롱 밑에 손을 넣어 보기도 했다.


착각한 게 아니라 역시 도둑맞은 거였다. 그게 뭐라고 상실감에 흑흑 소리 죽여 울었다. 눈치가 보여 엄마에게 똑같은 걸 사 달라고 말도 못 하고 포기해 버렸다.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그 애가 내 원숭이 목도리를 맨 채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있었다. 색도 모양도 같은 내 원숭이였다. 한참을 고민하다 그거 내 거 아니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 애는 절대 아니라고, 어제 너와 헤어지고 문구점에 가서 산 거라고 발뺌했지만 나는 모를 수가 없었다. 그 인형을 파는 문구점은 그 애 집에서 반대편으로 한참은 떨어진 곳에 있었으니까.


그건 내 원숭이였다.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는 일찍부터 그런 애였다. 어쩌면 날 때부터. 실컷 당하고, 당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또 당하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인사하는 멍청이.


그 이후 인형에 더 집착했다. 열세 살이 넘도록 학교에 다녀오면 어딘가에 누워 인형만 가지고 놀았다.          


멍청한 나는 그렇게 당하고도 늘 잠들기 전에 ‘그래도 이 사람의 이런 점은 좋지.’, ‘그래도 이 사람과 이런 일을 했을 때는 즐거웠어.’, ‘이 사람은 그래도 이땐 너무 착했어.’라며 상대를 두둔하는 생각을 한다. 날 괴롭게 한 사람이 꿈에 나와 나에게서 멀어지면 눈물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고 곁에 있으면 괴로운 사람인데도.


이윽고 ‘내가 먼저 사과할까.’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면 네가 그렇기 때문에 계속 상처받는 거라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결국엔 또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눈감아 버릴 거면서. 어쩌면 사람들이 나를 해치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를 해치는 상황을 자꾸 조성하기 때문에 힘든 걸지도 모른다.          



인스타그램을 켰다. 많은 사람이 저마다 행복한 명절을 보내고 있었다. 있잖아, 너에게는 정말 아무 문제도 없어? 정말 나만 이렇게 힘든 거야? 또 불쑥 밀려드는 생각.


나는 나로만 살자. 누군가의 딸도 애인도 친구도 아닌 그냥 나. 나에게 주어지는 역할 이름 때문에 필요 없는 의무감과 감정이 생기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이불을 덮었다.


졸업식이 끝났다.

언제부터 잘못됐을까?


며칠 후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는 하나뿐인 딸인 내가 의지되는 사람이길 바랐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했다. 나는 그게 부담스러워 화가 났다. 그러면서 나는 하나뿐인 엄마가 의지되는 사람이길 바랐다.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끌어당기기 무서워한다. 제발 나의 고통을 알아 달라 말하는 게 서툰 사람은 눈물 흘리는 대신 모질고 억척스러워진다. 곁에 누군가가 필요한 사람일수록 인간관계에 서툴다. 그렇기에 인간사는 외롭고 잔인하다.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그냥 서로 외롭고 힘들었을 뿐인데. 처음부터 그걸 이해했으면 되는데.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늘 누군가 의지되는 사람을 찾지만, 정작 누가 날 의지하려 하면 도망친다. 이로 인해 놓쳐 버린 인연이 얼마나 많나.


한 친구는 “너를 받아 주기엔 내가 별로 여유가 없어.”라는 내 말에 “뭐가 그렇게 여유가 없는데?”라고 물었다. 난 당연히 그 반응을 보고 도망쳤고. 하지만 여전히 그렇게 끊어 낸 인연을 떠올리고 그리워한다. 완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완전히 사랑할 순 있다, 라. 그래도 역시 상처받는 건 싫다. 상처받지 않고 도망친 다음 뒤에서 실컷 그리워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사랑해도, 그렇다.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도로 위의 사람들. 그들도 저마다의 사정을 안고 살아가겠지. 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지겨웠지만 별수 없었다.


정말 언제부터 잘못됐을까. 몇 달이 지나도 의문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아빠의 생일날 아빠가 자주 사 오라 시켰던 헤어 젤을 샀다. 돌고 돌아 결국 “고마워.”로 갈무리된 관계. 더 이상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어느새 내가 묻지 않아도 그 대답을 알 수 있을 만한 어른이 되어서 결국 내게 상처를 줬던 그 사건들엔 사실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는 걸, 아무런 의도가 없었다는 걸 알게 되면 그대로 우리는, 그대로 우리는 얼굴을 보면 마냥 서글퍼져서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고.

한때 어쩌면 제일 즐거웠던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아니 먼 하루에 그 기억을 둘 중에 하나만 갖고 우연히 만나게 되었을 때도 그저 웃으며 인사하겠지만, 사실 나는 모두 기억하고 있단다. 그때의 빛나던 머리카락들과 빛나던 이빨들과 그때의 빛나던 단어들과 그때의 기억나던 손짓들과 그때를 비추던 거울들과 그때와 똑같은 습관.

일어나자마자 나지막이 불러 보았던 몇 개의 이름들.

— 이랑,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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