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예요?”
정 작가님이 나에게 물었다. 우리는 진눈깨비 내리는 밤, 두부 요리를 파는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유자 맛 막걸리를 마시며 소소한 인생 이야기나 고민거리를 나누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대답했다. 작가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가 제일 행복했다니. 이상한 변태라고 오해받아도 할 말 없는 상황이었다.
제대로 설 수조차 없을 정도로 허리가 아팠던 때 정형외과에 2주간 입원했다. 입원하기 전까지는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른다. 나는 분명 허리를 포함해 둔부와 다리가 저릿저릿하고 아파서 절뚝거릴 정도인데, 가는 정형외과마다 별다른 소견 없이 소염제나 처방해 주고 그쳤다. 물리적으로 겉이 아픈 게 아니라 신경통처럼 안쪽이 아프다고 설명해도 꾀병 부리는 환자 취급을 했다. 한의원에 가도 침 몇 방 놓아 주는 게 다였다. 효과는 별로 없었다. 나는 내 고통을 너무나 이해받고 싶었다.
그냥 내버려 두면 낫겠거니 생각하며 평소대로 생활했다.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결국 드러눕게 되었다. 밖에 나가기는커녕 변기에 앉는 것도 못 했다. 몸이 너무 아프니 불길한 생각이 절로 들었다.
보다 못한 엄마가 나를 차에 싣고 미리 예약해 둔 정형외과로 운반했다.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몸 상태가 상태이니만큼 절박해져 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예상되는 증상은 뭔지 빠르게 메모장에 정리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낫고 싶어서 의사 선생님을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정리해 둔 메모를 읽었다.
내 말을 가만히 듣던 의사 선생님은 엑스레이를 찍은 후 이전에 갔던 병원에서는 하지 않은 검사를 몇 가지 해 본 뒤 아주 간단하게 “척추불안정증.”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MRI를 찍을 필요도 없다고 했다. “낫게 해 줄게.” 그는 쿨하게 말하며 나를 입원실로 보냈다.
그는 아주 미세한 통증도 놓치지 않았다. 다리를 들어 보는 걸로도 내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제대로 가늠했다. 드디어 나의 아픔을 이해받는 순간이었다. 속 쓰린 약이나 왕창 주던 의사들과는 달리 약도 딱 두 알만 줬다.
아마 이전 의사들은 내가 젊다는 이유로 가능성 있는 소견을 몇 가지 거른 게 아닐까? 보통 허리 통증은 나이 많은 사람에게 많이 나타나니까. 그들은 내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기어코 통증이 커져 입원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입원을 하니 아프다 말하지 않아도 아픈 걸 알아주는 사람이 많았다. 같이 있는 사람들도 모두 아파서 좋았던 것 같다. 경쟁뿐인 세상과 격리돼서 계속 누워 있기만 해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그곳에서의 나는 ‘이해받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가위에 눌리고 불면이 와 잠도 못 자고 삼겹살도 못 먹고 변비에도 걸렸지만, 그냥 아프다고 말했을 때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했다.
어쩜 제일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는 질문을 받고 ‘병원’을 가장 먼저 떠올렸을까? 나는 늘 이해받는 것에 목말랐던 건지도 모른다.
2017년 12월 18일, 샤이니의 종현이 죽었다.
나는 야근을 하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주임님이 입을 막고 소리를 질렀다. 기사 페이지에는 내용은 없고 사진과 제목만 있었다.
일단 부정했다. 하지만 어떤 언론이 부고 기사를 오보로 낼까? 계속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다. 가슴이 뛰고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답답했으면, 얼마나 외로웠으면.
“아니, 죽기는 왜 죽어.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그냥 살지.”
멀리서 차장님의 한숨 섞인 말이 들렸다. 그게 아니에요.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세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마음만 쓰렸다. 우울해 본 적 없는 사람들, 우울을 경시하는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차장님과 똑같은 말을 하겠지.
그의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성격 탓이란다. 그렇군요. 결국엔 다 내 탓이군요. 눈치채 주길 바랐지만 아무도 몰랐다. … 조근한 목소리로 내 성격을 탓할 때 의사 참 쉽다 생각했다. 왜 이렇게까지 아픈지 신기한 노릇이다. 나보다 힘든 사람들도 잘만 살던데. 나보다 약한 사람들도 잘만 살던데. 아닌가 보다. 살아 있는 사람 중에 나보다 힘든 사람은 없고 나보다 약한 사람은 없다.
이후 각종 포털 사이트 이용자와 내가 구독하는 여러 심리학자, 임상심리사, 정신과 의사가 ‘우울한 사람에게 도움 되지 않는 말’, ‘종현 심리 분석’, ‘연예인 우울증’ 등과 같은 제목의 글을 써 올렸다. 글은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사며 공유됐다.
나는 기어코 죽고 나서야 마음을 이해받는 그가 안타까웠다. 요즘도 우울할 때마다 자꾸만 그와 동화되는 기분이 들어 혼자 가라앉는다.
왜 사람들은 기어코 무언가가 터져 버려야 반응하는 걸까?
그 전에, 누군가가 입을 열 때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온전히 상대방을 위한 마음으로만 이야기를 들어 줄 순 없는 건가? 누구에게라도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는 건 다들 알고 있으면서 왜 늘 자신의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고 못된 말을 해 버릴까?
사람이라는 존재에게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일은 원래 참 어렵나 보다.
상담 전문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수년간 수련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누군가의 삶을 좌우할 수도 있는 일인데 당연히 어렵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지는 보상과 처우는 너무 박하다. 아직도 세상이 마음을 경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문득 이런 대사가 떠올랐다.
당신은 그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나 궁금해하면서 그의 삶에 대해선 얼마나 알죠?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을 다룬 영화 ‘러빙 빈센트’에 나오는 마르그리트의 대사다. 고흐는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죽기 전까지 그를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술자리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말했다.
“너는 도대체 뭐 하고 살아? 네 얘기를 들은 지 너무 오래됐어. 뭐라도 네 얘기 좀 해 봐.”
그제야 그 술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가. 내가 사는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기는 있구나 싶었다. 그게 뭐라고 듣자마자 코끝이 찡해졌을까. 내 이야기를 물어 준 그 친구에게 삼삼한 고마움을 느꼈다.
당시에는 사람을 별로 만나고 싶지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걸 꺼렸다.
인생이 몇 달간 내 맘대로 풀리지 않던 상태라서 입만 열면 우울한 말을 했다. 몇 년이고 몇십 년이고 인생이 안 풀리는 사람도 있을 텐데, 고작 몇 달 내 맘대로 안 된다고. 그런 내 모습을 보는 게 싫었다. 말한다고 딱히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 데다가 내 약점과 치부만 드러내는 것 같았다. 내 이야기를 마쳤을 때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는 상대방을 보면 약간 박탈감이 들기도 했다.
내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나조차도 모르겠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해도 상대방이 귀담아듣지 않을까 봐 두렵기도 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들어 주고 알아주는 건 힘든 일이니까.
‘내 상황을, 내 심정을 이해하기는 할까?’ 말하자면 이런 생각에 갇혀 있었다.
이러니 방 밖에서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대화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생각해 보면 언제나 그랬던가.
사람과 있을 때면 가만히 있어도 힘들고,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날 오해하지는 않을까, 내 외모를 보고 날 깔보진 않을까 무서웠다. 그런데도 사람이 궁금하고 좋아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관심 있게 들어 주고 눈을 마주치고 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한심했다. 나는 네 마음을 이해하니 이제 네가 내 마음을 이해해 줘. 내 이야기를 들어 줘. 나를 궁금해해 줘. 그리 생각하며 처절하게 세상에 매달리는 내가 애정 결핍자 같아 구차해 보였다.
그런 한편 누군가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마냥 순수하지만은 않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때마다 밀어내고 밀어내며 또 혼자 작아진다. 나는 당신이 궁금하지 않아, 당신이 뭘 하든 신경 안 써, 이리 생각하며 외면하다가도 다시 돌아서서 몰래 지켜보고 그에 관해 생각한다. 생각만 하고 손을 뻗진 않지. 그러면서 내가 생각하는 만큼 상대는 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혼자 서운해하길 반복하지.
내가 얼마나 어두운 사람인지 알아 가는 건 참 신비로운 경험이다.
단순히 상성이 안 맞는 사람이라고 해서 나에게 해를 끼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 곁에서 고립되는 기분을 느끼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자꾸만 도망치고 싶고 내 작고 안전한 방으로 얼른 돌아가서 이불을 덮고 싶어진다.
나는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내가 얼마나 마음이 깊은지, 얼마나 우울한지, 얼마나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는지, 겉으로 보이는 내 모습이 얼마나 진정한 내 모습과 거리가 먼지 알아주길 원했다. 내가 사람들을 생각하고 신경 쓰는 만큼 그 누군가도 나를 생각하고 신경 써 줬으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었으면,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하며 우는 내가 어떤 심정인지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세상의 중심에 두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 생각하면 이렇게 자의식에 빠진다. 그래서 타인이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을 때, 날 좋게 봐 주지 않을 때, 나 자신이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그 순간순간이 고통스럽다. 그렇다 해서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 도망쳐 타인 속에 묻어가면 본연의 모습을 잃으니 그 또한 고통스럽다.
나는 언젠가 내 글로 많은 사람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걸 못 하고 허망하게 죽을까 봐 가끔 두려움에 휩싸인다. 기어코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내야 사람들이 나를 알아줄 테니까, 그전까지는 계속 지금과 같은 심정일 거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누가 나에게 다가오겠어, 의심하고, 하지만 사람을 놓지 못해 기대를 하고, 기대하면 실망하니까 결국 사람들 앞에서 입을 열 수는 없고, 그런데도 글은 쓰고 싶고, 어떻게 써야 할지는 모르겠고.
친구는 원래 타인과 사회는 차갑다고 말했다.
‘차갑다’는 형용사가 지시하는 감각이 적확하게 다가왔다. 무언가를 갖고 태어났다면 그걸 평생 갈고닦으며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그렇게 해 봤자 안 될지도 모르는데 뭐 하러 나를 깎으며 노력해야 하나, 너무 고통스러운데.
그렇게 반응하자 그래도 해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도 그냥 해요. 누군가 날 알아주지 않으면 나라도 날 알아주라고. 그러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를 탓하고 괴롭히고 침전하니까.
물질과 바깥으로부터 멀어지고 마음과 내면에 가까워질수록 괴로움은 커진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남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에 익숙해질수록 외롭다. 이런 나는 종내 어떤 사람이 될까? 내가 바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움에 매몰돼 날카로운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결국 내가 선 곳은 중심과 주변, 딱 그 중간인 것 같다. 그 사이에 끼어 고통스럽고 외로워도 멈추지 않고 주변을 위로하며 걸어가는 그런 사람. 언제나 그런 이방인의 세계를 걷는 기분이다. 이 길의 끝은 어딜지, 늘 같은 질문을 짊어지고 또 살아간다.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냐
연약한 존재들은 비밀을 안고 있지
귀 기울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그런 신비로운 비밀 그런 아름다운 비밀
아름다운 것들은 쉽게 부서지고
되돌리는 것은 너무 어렵다네
신비로운 것들은 꿈결 속에 사라지고
되돌리는 것은 너무 어렵다네
연약하다는 것은 용감하게 산다는 것
한 가닥 실바람에도 온 마음을 내주는 것
연약하다는 것은 외로움을 안다는 것
모두가 함께일 때도 애써 혼자가 되는 것
설명하려 할수록 외톨이가 되네
오후의 햇살도 너에겐 닿질 않네
하지만 그 모든 몸짓이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살며시 감싸네 이름 모를 사람도
— 장혜영,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