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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사랑 Apr 12. 2019

돈을 많이 벌고 싶지 않다는 게 이상해?



내 미래를 결정할 진로를 생각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이력서를 꾸며 가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적성과 안정성과 추구하는 가치가 서로 충돌해 머리가 복잡했다.


사람들은 내게 머리가 좋다고들 말했다. 그러니 다른 곳을 거치지 말고 얼른 오래오래 일할 안정적인 직장에 도전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내게 머리가 좋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얼마나 맹목적으로 공부했는지를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들 기준에 맞춰 사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지도.


열네 살 때 처음으로 공부하느라 밤을 새워 봤다. 공부가 너무 싫어서 종종 머리를 쥐어뜯거나 소리 내 엉엉 오열했다. 언제는 너무 화가 나서 문제집을 구기고 찢고 벽에 던졌다. 한참 씩씩거리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시 주워서 공부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었다. 분노 조절이 안 되는 불안정한 인성을 가지게 되는 것마저 내 탓으로 돌아온다는 걸 깨달은 뒤엔 문제집을 망가뜨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섬뜩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공부했다. 인생에 관한 주관을 갖거나 자아를 성찰해 꿈을 찾고자 하는 능동적인 의지는 없었다. 따라서 달리 다른 곳에 노력할 생각을 못했다. 다른 것에 노력한들 인정받지 못할 것도 알았다.


그냥 시키니까, 남들보다 잘하고 싶으니까, 칭찬받으면 기분이 좋고 자신감이 생기니까 열심히 노력했다. 그 결과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냈고 선망하던 대학에 들어갔다. 그런데 내 아이큐는 평범하다.


하고 싶은 걸 하도 참아서 어느새 참는 게 당연해졌다 해도 욕망이란 게 있긴 했다.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고등학교 3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하느라 영화관에 가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수능을 보기 두 달 전이던가. 짐 캐리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가 개봉했고, 마침 9월 모의고사가 끝난 때였다. 오늘은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집에 영화관에 가고 싶다고 말해서 아빠가 데려갔는데 그 후 시험 칠 생각은 있는 거냐고 엄마에게 된통 혼이 났다.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어찌나 서럽던지. 지금 열아홉 때 다이어리를 펼쳐 보면 어떻게 이리 통제하고 살았는지 신기할 정도다. 수능 D-100에 같은 반 친구가 밖에서 놀자고 독서실로 데리러 왔는데 쓰게 웃으며 사양했던 것까지 적혀 있었다. 뭐가 그리 절박했을까. 그때의 날 안아 줄 순 없으니 다이어리라도 꼭 안았다.


그렇게 살았다 보니 스무 살 이후 공부가 아닌 무언가에 노력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공부 외 무언가를 진득이 하며 성과를 내 본 기억이 없었다. 인생에 쓸 노력을 학창 시절에 다 써 버린 느낌. 그때 한 게 공부뿐이어서 어른이 되어서도 공부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싫은 걸 하며 살아야 할까?


누군가 나에게 영어를 공부하고 대외 활동을 하고 어학연수와 해외여행을 가라고 할 때, 처음엔 다 그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보다 재미있는 게 세상에 너무 많았다.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사니.” 그런 말이 너무 잔인했다. 남들이 하는 하기 싫은 일을 맹목적으로 따라 하면서 10대를 다 보냈는데 어찌 이 이상 더 하기 싫은 일을 하라 말할 수 있는가. 언제까지 나 자신을 고문하라고 그렇게 말하는가. 하다못해 감옥에 들어가도 출소란 것을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한 이후로는 도저히 하기 싫은 걸 할 수가 없었다.


대학에서는 내 마음에 드는 수업, 나에게 의미가 있는 수업만 잘 듣고 공부했다. 필수라는 토익, 한국사, 컴퓨터 자격증 공부 같은 건 일주일도 못 하고 그만두었다. 웬 괴상한 입체 도형의 전개도를 고르라는 건 둘째치더라도 인성 검사라며 ‘한 달에 한두 번 설사를 한다.’, ‘걱정이 많은 편이다.’, ‘보수적인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 가족은 항상 화목하다.’ 같은 질문으로 사람의 성향에 점수를 매기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채용 방식에 진정 소름이 끼쳤다. 어떻게 이런 시스템으로 사람을 거르고 뽑을 생각을 했을까? 심지어 이런 검사에마저 정답이 존재하고 인터넷 강의가 있다고 하니 말 다 했다.


나는 성인이다. 내가 원하는 일을 고를 자격이 있다. 남들 기준에 무조건 맞추지 않을 자격도.


사람들이 나에게 끊임없이 권하는 직장이 다른 직장보다 비교적 안정적이고 보수가 좋은 건 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 물어보지 않았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무슨 일을 할 때 보람을 느껴? 어떤 직업을 갖고 싶어?’ 안정성이나 보수 등에 관한 조언은 위와 같은 질문 다음에 이어져도 된다.


이런 내 주장은 보편에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나는 직장이 아니라 직업을 갖고 싶었다. 가끔 사람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직업을 일부러 모른 척하는 것 같다.


누구보다 나에 관해 고민하는 사람은 나다. 누구보다 내가 살아가야 할 사회를 고민하는 사람도 나다. 그런 나에게 사람들은 “네가 아직 세상을 잘 몰라서 그래.”라고 말했다. 그러는 그들은 나를 얼마나 잘 아는가.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지 않다는 게 이상해? 딱히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고 느끼는 게 이상해? 정장 입고 일하고 싶지 않다는 게 이상해?



나는 그저 영원히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보고 싶은 드라마를 보고 입고 싶은 옷을 입으며 마음 편히 살고 싶다. 언젠가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여유롭게 살고 싶기도 하다. 굳이 큰 회사에 들어가서 보람이 느껴지지 않는 일에 밤까지 스트레스받으며 매달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간절하지 않은 곳에 들어가려고 재미없는 공부를 하며 스펙을 쌓고 의미 없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건 너무 싫다. 그냥 적당히 괜찮고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며 재밌고 의미 있고 소소하게 살고 싶다. 사주에도 그렇게 나온다. 큰일을 할 사주가 아니란다.


이제는 주변의 잘된 사람과 나를 비교해도 자괴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자괴감이라기보다는 나와 비슷한 주변인이 얼마 없는 것 같아서, 내가 비주류인 것 같아서 외로움이 느껴진다.


어느 작곡가 친구는 “한때 음악으로 성공해서 내가 틀렸다고 말한 사람들에게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그를 이해했지만 한편으론 안쓰러웠다. 우리는 왜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이해받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잡지 교육원에서 이 교수님이 말했다.


“어차피 지금 경제 성장률로 돈을 많이 버는 건 무리다. 대부분의 월급쟁이가 내 집 마련이 가능할 정도로 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버지 세대로 끝이다. 개천에서 용 나기는 실현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현대 사회의 경제 성장률을 쉽게 간과하고 변해 가는 욕망 구조와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이해시키려고 화를 내면 그건 그것대로 폭력이다.”


그는 이어 말했다.


“어차피 어떤 일을 하든 다 능숙해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그 일에 재능이 없어도 하다 보면 는다. 중요한 건 성향이다. 내가 그 일에 맞는 성향을 가졌느냐다. 성향에 맞지 않으면 그 일은 오래할 수 없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교에 합격하기만 하면 인생이 쭉 행복할 줄 알았다. 막상 대학생이 되니 어디든 나와 맞는 곳에 취직만 되면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올해 몇 번의 구직 활동 후 채용된 첫 직장은 힘들었다. 나는 수습 기자였다. 업무 환경은 나쁘지 않았는데 일이 너무 싫었다. 일을 하며 이런저런 사건도 터지고, 성향에 안 맞는 걸 계속하는 바람에 자아 정체성에 스크래치가 나서 결국 한 달 만에 퇴사했다.


상담 대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당장 입에 풀칠하기 바빴다. 나는 모든 생활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했다. 그게 서러워서 잠시 또 동굴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풀타임 일을 하면서는 취업도, 고시도, 대학원도 다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에게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치 같았다. 이불 속에서 서럽게 우는 나를 달래는 친구에게 “나는 쓸모없는 쓰레기야.”라며 화풀이나 해 댔다.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스펙을 쌓거나 다른 걸 배워서 좋은 곳에 지원해 보라는 말을 들으면 ‘그래서 네가 보태 줄 거야?’라며 삐딱하게 생각했다. 난생처음 보는 내 모습이었다. 내가 이토록이나 어둡고 무기력해질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큰 회사에는 흥미가 없고, 가고 싶은 회사에는 떨어지니 결국 아무나 뽑아 주는 회사에 들어갔다. 당장 다음 달 월세를 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그곳은 최저 임금도 안 줄뿐더러 근로 계약서, 퇴직금, 초과 근무 수당 등 고용자의 입장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법마저 지키지 않았다.


화가 나서 사장에게 이 문제를 얘기했다. 그는 자기가 노무사도 아니고 노동법 운운할 거면 딴 사람을 뽑을 테니 나가라며, 나를 앞에 세워 두고 다른 사람 이력서를 훑었다. 업계 관행이란 법까지 씹어 먹을 만큼 무시무시했다. 이래서 다들 ‘한 달에 한두 번 설사를 한다.’에 ‘아니오.’를 찍으며 더럽고 치사해도 인적성 검사를 준비하는구나 싶었다.


결국 또 다른 고민이 생긴 셈이었다. 그 와중에 일은 재밌고 적성에 맞았다. 누군가는 가치 없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출근을 하는데 마음이 편했다.


나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어떻게 돈을 이것밖에 안 주는 거야?’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돈까지 주네.’라고 생각하며 버티다 같은 일을 하지만 더 좋은 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전 직장이 다닐 만하지 않은 곳이었던 건 확실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 이전 직장보다는 낫다고 확신할 수 있다.


인생은 끔찍한 것에서 나쁜 것, 나쁜 것에서 그나마 덜 나쁜 것, 그나마 덜 나쁜 것에서 그나마 좋은 것을 선택하며 점점 나아지는 것 같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끊임없이 나와 맞는 곳을 찾아 한 단계씩 올라가다 보니 성취감과 뿌듯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혹자는 “솔직히 님이 글을 잘 쓰는 것 같지는 않아요. 결혼 안 해요? 애 안 낳아요? 현실적인 충고를 해 드리는 거예요. 겨우 그 정도 월급을 받을 거면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요?”라며 내 선택을 말렸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이런 사고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안타까웠다. 꿈이 없는 사람들. 결국 현실에 매몰돼 버린 사람들.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 타인을 자기 기준에 맞추며 판단하는 사람들….


나는 부를 창출하는 지식과 능력을 갖고 있진 않다. 만약 내가 그런 특출한 능력을 가졌다면 어디서든 나를 데려가려고 할 것이다. 그저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해서 무조건 큰 회사에 지원해야 하는가? 가령 나를 떠받들어 주고 돈을 지금 회사보다 훨씬 많이 주지만 업무가 끔찍하게 안 맞는 회사에 들어간다면 나는 행복할까?


얼마 전 그런 꿈을 꿨다. 어떤 회사가 나에게 입사 제의를 하며 연봉 5,000만 원을 주겠다고 말했다.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대차대조표가 나오는 생소한 분야였다. 한참 고민하다 꿈에서 깼다. 그리고 눈곱도 떼지 않고 이어 고민했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고민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나 자신조차 놀라게 했다. 나는 그 회사에 가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돈과 워라밸보다 중요한 건 편하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인 ‘자아’를 따르고 싶을 뿐이다.


모든 게 완벽할 순 없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잃는다. 아직은 어떤 선택으로 잃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얻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살고 싶다.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어쨌거나 당장 재미있는 일을 하며 조금씩 돈을 모으면서 젊음을 더 즐기자.’다. 종종 치킨이 먹고 싶을 때 부담 없이 시켜 먹고, 필요한 생필품은 망설임 없이 사고, 가끔 비싼 칵테일을 마시고, 매해 괴상한 옷을 입고 좋아하는 페스티벌에 가는 것…. 아직은 그렇게만 살 수 있다면 충분하다. 언젠가 다른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언젠가를 위해 오늘을 다 바쳐 살고 싶진 않다.



‘일어서서 영화 보기’라는 말이 있다. 모두 앉아 있으면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데 앞사람이 일어서니 뒷사람도 일어서고 결국 모두가 일어서서 힘들게 영화를 보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원래는 과도한 사교육 문화를 빗댄 표현이다.


나는 이 표현이 굳이 사교육에만 적용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앞사람이 일어서서 영화가 안 보이면 다른 영화를 보러 갈 수도 있지 않은가? 그 다른 영화가 이전 영화보다 더 재미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왜 항상 모든 사람이 보는 영화를 억지로라도 따라 보지 않으면 안 되는가? 그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재밌었다’보다는 ‘다리가 아프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세상은 넓고 직업은 많다. 지구에는 수십억 개의 인생이 있다.


하지만 가끔 우리 사회에서는 가족, 나이, 성별, 학력, 경제력 등 한 사람의 인격과 가치를 판단하는 데 하등 쓸모없는 몇 가지 기준 때문에 각자가 가진 개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안 좋게 대우받는 직업을 대하는 태도를 개선해야 한다. 아이에게 ‘무조건 돈 많이 버는 직장이 최고야.’가 아닌 ‘너는 어떤 일을 할 때 보람을 느껴? 어떤 인생이 널 행복하게 할 것 같아?’라고 말해야 한다. 개개인의 다양성을 최대로 발휘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이상적인 바람일지라도 나는 죽을 때까지 그런 사회를 꿈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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