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은 어디로 갔을까?
사회심리학자 수전 피스크(Susan Fiske)와 셰리 테일러(Shelley Taylo)는 사람을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고 정의한다. 구두쇠가 돈을 아끼듯이 사람은 생각마저 아낀다는 말이다. 사람은 주어진 자료를 종합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과거 경험과 스키마(경험에서 만들어진 반응 체계로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대처하는 것)에 따라 빠르게 판단한다. 되도록 생각하는 노력을 절약해서 신속하게 판단한다. 그렇게 일부의 이미지만 가지고 전체를 판단한 후 이성적 판단을 했다. 그 순간 '오류'가 시작된다.
퀴즈~를 같이 풀면서 생각해 보자.
알뜰 살림 꾼인 손님 A와 B는 각자 배추5포기를 사려고 시장에 갔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배추 5포기 묶음엔 1만 4천 원 배추 10포기 묶음엔 2만 원이라고 했다. 각자 5포기를 사는 것보다 10포기 묶음을 사서 5포기씩 나누면 4000원 더 싸게 살 수 있네! 손님들은 배추 10포기 묶음을 들고 각각 현금 1만 원씩 내어 계산을 한 후 가게를 나왔다.
그때 가게 사장님이 들어오더니 점원에게
“좀 전에 배추 10포기 들고나가던 손님에게 배추 얼마에 팔았죠?”라고 물었다.
“2만 원이요”’ 점원은 대답했다.
“배추 10포기에 17,000원에 세일한다고 광고했는데. 약속은 지켜야 하니 3천 원 돌려주세요!”
점원은 3천 원을 손님에게 돌려주려고 돈을 들고뛰면서 생각했다. ‘손님들이 현금으로 각각 만원씩 냈는데…. 거스름돈도 깔끔하게 나눠야 하는데 천 원 3장이라….’ 고객 마인드(?)가 있는 점원은 고민했다.
“죄송합니다. 계산을 잘못했네요. 천 원씩 받아 가세요”하고 점원은 2천 원만 돌려주고 천원은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A와 B는 2만 원을 내고 2천 원을 받았으니 18,000원에 배추를 샀다. 점원이 얼마 갖고 있을까? 천 원. 앗! 18,000+1,000=19,000원.
천원은 어디 갔을까? 천. 천. 히 검산을 해 보자! 손님 1만+1만=2만. 2만-2천=1만 8천. 점원 천 원. 천원이 없어졌다. 만약 이 상황이 20억 거래라면 1억이 없어진 것이다. 1억은 어디로 갔을까? 다시 한번 계산해 보자.
생각은 한번 길을 잘못 가면 검산을 해도 답이 안 보인다. 논리적으로 천원은 없어질 수 없다. 계산도 틀리지 않았다. 천원은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야 답을 얻을 수 있다. 배추 값은 17,000원. 2만 원 중 남은 돈 3천 원을 손님 A와 B, 점원이 각각 천 원씩 가진 것이다.
퀴즈에서 보듯 한번 잘못 시작한 생각의 착오는 검산을 해도 찾기 힘들다. 거기에 경력과 논리가 쌓이면 확신하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처음부터 생각하기 연습이 필요하다.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기 전에 빠르게 판단하는 것은 쉽다.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미인이 왜 저 남자를 만나? 돈이 많으니깐!’ 생각하면 편하다. 결론을 낼 수 있는 만큼만 생각하면 된다. 이런 현상은 내편과 적을 단순하게 구분해야 생존이 가능했던 원시시대 본능이 남아있어서이다. 지금처럼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사회에 과거 경험이나 스키마에 따라 판단하면 생각이 자라지 않는다. 세상은 간단하지 않다. 통계학 분야 석사이며 의사인 한스 로슬링(Hans Rosling)의 유작. [팩트 풀니스]에서는 제목 그대로 ‘사실 충실성’을 강조한다. 간극 본능, 확증편향, 편견에 대한 경계심이 필요하다. 사실과 판단을 구분할 때 진실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
※간극 본능 : 양극화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본능. 부자와 가난한 자, 적과 아군 등 이분법적 사고방식. 선명하게 분리되지 않는 것조차 구분하고 불평등으로 해석하는 본능이 있음.
일부의 한정된 경험으로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틀에 갇히게 된다. 틀은 필터가 되어 새로운 경험과 사실마저도 선별하여 틀을 더 견고하게 만든다. ‘최대리=불성실’을 사실이라고 믿으면 불성실한 모습들만 강조되어 보인다. 성실한 모습은 걸러낸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하며 생각이 고착된다. 생각이 고착화될수록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생각이 고착되면 위험하다. 지도 업데이트도 안 되었고, 실시간 교통정보도 없는 고장 난 내비게이션만을 철석같이 믿고 따라가는 것과 같다. 새로운 길도 생겼고, 시간대 교통량도 변하고 심지어 목적지가 달라졌는데도 말이다. 결국 실패했을 때 깨닫는다.
경험을 통한 생각의 틀은 일상에서 매우 유용한 역할을 한다. 상황이나 사건을 효율적으로 인지하여 판단을 돕는다. 매번 판단하는데 에너지를 쓰지 않아 뇌의 부담을 덜어준다. 순간순간 생각이나 마음이 개입하지 않도록 자동적으로 빠른 결단과 행동을 하게 한다. 생각의 틀은 좋고 나쁜 것이 아니다. 내가 보고 경험한 것 이외의 것이 있다는 것, 내가 믿었던 것이 (사실이 아니라) 생각이라는 인지가 필요하다. 다른 생각에 대한 인정, 유연성이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다. 내 생각(판단)만이 옳고 사실이라 믿는다면 틀에 갇혀버린다. 젊어도 꼰대가 된다. 자신의 생각의 틀을 인지하고 어떻게 확장하고 업데이트할지 고민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내가 틀에 갇혀있다는 인지는 쉽지 않다. 논리적일 때 더욱 그렇다. 업데이트도 중요하지만 틀에 갇히지 않으려면 경로 수정보다는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찾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경험은 내가 보고 겪은 일부분일 뿐 진리가 아니다. 내가 사실이라고 여겼던 많은 것은 주관적 생각이었다. 이것을 받아들일 때 못 보던 것을 보게 된다. 경험과 생각을 업데이트할 때 새로운 것을 보게 된다. 결과를 바꾸고 싶다면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렇지 않으면 틀에 갇히게 된다. 틀에 갇히면 잘못된 결과가 반복된다. 틀의 위험과 결함을 안다면 새롭게 수정할 수 있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