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돈 때문이었어요
귀욤은 블로그 댓글로 야영 신청을 할 때, 나희의 책 제목을 언급했다. 출간 초기에도 정작 나희의 책을 읽고 책 때문에 모임에 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5년이나 지난 이제, 많이 팔리지도 않았던 책 얘기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붕도 벽도 없이』를 서점에서 처음 보았을 때 저는 건축 코너에 있어야 할 책을 누가 여행 코너에 놓고 간 줄 알았습니다. 무심코 펼쳐보았다가 덮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세 시간 넘게 서서 끝까지 다 읽었지 뭐예요. 너무너무 공감했답니다. 이번 목요일 노숙 신청 입금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의 시차를 두고 비밀 댓글이 덧달렸다. “사정은 많이 다르지만, 저도 한때 집 없이 떠돌아다닌 적이 있거든요. 사실 빚이 많아 도망 다닌 거였어요. 작가님처럼 삶을 넓힌다거나 멀리서 돌아본다거나 그런 생각은 저는 당시에 하지도 못했었는데도 책을 읽으면서 한 구절 한 구절이 어찌 그리 내 얘기 같던지요.”
댓글을 읽으며 나희는 귀욤을 만나면 나도 돈 때문이었어요, 책에 적힌 내용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라고 깊숙한 말문을 열고 싶었다. 언젠가 들었던 은행원의 이야기도 그녀에게 해주고 싶었다. 얼굴이 까맸던 그 은행원은 입행한 지 3년 만에 돈의 실체가 없다는 걸 깨닫고 자신의 업무가 연극이라는 걸 알게 됐으며 연극을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했다. “명배우는 자신이 연기하고 있다는 걸 아예 잊는 쪽일까요, 아니면 오히려 늘 의식하는 쪽일까요?” 그가 물었던 질문의 답을 나희는 아직 모르는데, 귀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역에서 만난 이후, 귀욤은 나희에게 책 이야기는커녕 어떤 말도 따로 걸지 않았다. 별로 웃지도 않았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답만 짧게 했다. 나희는 댓글을 보며 그녀가 책을 가져와 사인이라도 부탁하면 어쩌나, 무척 쑥스러워질 일을 걱정했었는데, 그런 걱정을 했던 일이 더 쑥스러워졌다고, 산을 오르며 혼자 두어 번 생각했다. 서점에 서서 다 읽어서 정작 책은 사지 않았으려나, 그런 생각이나 했다. 밤중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아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