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만한 기운이 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잠이 깼을 때는 아무 일도 없었다. 나희는 이너와 침낭과 커버의 지퍼를 차례로 50센티미터쯤 내리고 일어나 앉는다. 아직 캄캄하지만, 서쪽에 비해 동쪽의 나뭇가지들이 남색 하늘을 뒤에 두르고 약간 더 선명하게 보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침낭들이 가만한 것을 헤아리고 다시 눕는다. 보통은 돌아다니며 일일이 확인하는데 오늘은 그럴 만한 기운이 나지 않는다.
중간에 깨어 사람들 자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나희는 사람들이 잘 자는 것이 놀랍다고 매번 새로 느끼곤 했다. 밖에서 자는 것이 불안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못 자는 사람이 드물었다. 여러 이유가 떠올랐지만, 그들이 돈을 내고 어떤 프로그램에 참가한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지금의 나희는 머물고 있다. 이 일은 자신이 하는 일이지만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나희는 생각한다. 참가비와 대여료는 나희가 임의로 정한 액수이고 고안된 프로그램이랄 것도 딱히 없다. 장소를 안내하고 주의 사항 몇 가지를 일러줄 뿐이다. 아무리 고생에 단련되어 강해 보인다 해도 젊지 않은 여자인 나희가 참가자들을 위험으로부터 완력으로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치 돈을 주고 검증된 상품을 구입한 양, 편안하게 노숙이라는 경험을 소비한다. 나희에게는 이것이 놀랍고 또 이상하다.
나희는 그런 것 없이 혼자 벌벌 떨며 노숙을 시작했는데 말이다. 밖에서 지내거나 숙식이 제공되는 일자리를 전전했다. 주소가 없으니 뿌리내리고 오래 할 만한 직업은 어려웠다. 그런 생활이 몸에 익으니 잠을 짧게 나눠 자는 일이 습관이 됐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섯 시간, 일곱 시간씩 길게 잘 자는 모습을 매번 보면서도 볼 때마다 속으로 조용히 놀란다. 자신이 저런 삶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나왔는지 실감한다.
일어나서 돌아다니며 점검해 볼까도 싶었지만 나희는 그냥 누워있다. 몸이 무겁다. 난데없이 자다 깨어 욕을 들으며 긴장했던 탓인 것 같다. 감기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어쩐지 목이 간지럽고 눈이 뜨거운 것 같기도 하다. 최대한 휴식을 취하고 조금이라도 더 자야 한다. 어차피 몇 시간 남지 않았다. 목요일에 모이는 팀은 늘 무난했다. 간밤에 잠깐 뜻밖의 사고가 있었지만 어쨌든 조용히 넘어갔고, 아침에는 뭔가 방법이 나올 것이다. 날이 밝으면 모두 일어나 각자의 금요일을 시작할 것이다. 산을 내려가면 나희는 여느 때와 같이 역 앞 사우나에 갈 것이다. 온기가 간절하다. 나희는 침낭 안에서 몸을 웅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