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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울 Nov 04. 2024

그럼에도 목욕은 하고 싶은 욕심

몸이 살살 안 좋아지고 있단 걸 느낀다.

 슬슬 안 좋아지는 몸을 느끼며 시작한 한 주 이자,  예전에 얘기한 적 있던 밀물과 썰물 같은 개념에서 일을 마주해 보자면 밀물도 아주 제대로 밀려들어오고 있는 시간들을 보내는 중입니다. 이 와중에 조금 쉬어보겠다고 하루동안 꾸역꾸역 좋아하는 것들을 해낸 이야기를 오늘은 풀어보려고요. 


 지난주 중간쯤부터인가, 갑자기 오른쪽 상반신이 잘 안 움직여졌어요. 조금만 펜을 들고 있어도 펜이 달달 떨렸고요. 이런 적이 처음이라 너무 놀랐고 당황스러웠고 화가 났습니다. 그러다 기억 하나가 떠올랐고 또 슬퍼졌습니다. 아 이게 갑자기 지금 이렇게 찾아올 일인가. 고3 때 바닥에 엎드려서 공부하던 버릇이 있었는데 그때 팔꿈치 신경에 만성염증을 만들었어요. 계속 저리고 아파서 병원에 계속 가서 치료받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진전이 없었고 (계속 공부를 해야 했던 시기였으니까..?) 의사 선생님은 그쪽 신경을 잘라서 아픔을 못 느끼게 하는 시술을 추천해 주셨어요. 왠지 두려웠기 때문에 그냥 이 고통 안고 가겠다고 했는데 그때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거든요. 이거 나중에 더 많이 쓰면 팔꿈치가 끝이 아니고 위아래로 타고 가서 손목이랑 어깨가 똑같아질 거라고요. 마법처럼 고3이 끝나고 한 번도 안 아팠던 팔이었는데 요즘 다시 이 상태가 되고 보니 의사 선생님의 예언이 적중했단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오른쪽이 전부 다 저려요. 쉬고 싶어 졌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창 밀물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 평일에는 쉴 엄두를 못 냈거든요. 마침내 일요일이 되었고, 욕심을 내어 어제는 하루를 통으로 쉬어보았습니다. 월요일의 제가 알아서 해결해 주겠거니 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어제는 하고 싶던 일을 다 했어요. 일단은 목욕부터.

240122 드로잉챌린지때 그렸던 거품목욕그림.

 저는 몸이 안 좋을 땐 목욕을 합니다. 마침 이사 온 집에는 욕조가 있어서 (이 집에서 제일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 일단 뜨거운 물부터 받았습니다.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남편 친구부부가 놀러 왔다가 주고 간 러쉬 선물세트를 꺼냈어요. 초콜릿처럼 생긴 보습제를 조각내어 뜨거운 물에 토독토독 떨어뜨리고, 거품목욕용 바디워시를 쭈욱 짜 물에 풀었습니다. 작은 샤워기의 구멍 사이로 힘차게 뻗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바디워시를 푼 물의 표면에 닿아 밀도 높은 하얀 거품들을 만들어 냈어요. 하얀 거품이 반짝이는 파란 물 위를 뒤덮고 뿌연 김이 화장실을 가득 덮었습니다. 이 몽실한 냄새와 온도를 한껏 즐기며 물에 몸을 담갔어요. 전 요즘 한창 크리스마스 시즌을 즐기고 있어서, 좀 잔잔한 크리스마스 음악을 틀어놓고선 눈을 살포시 감았습니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물이 온몸을 감싸면서 몸이 열로 채워지는 순간에 저도 모르게 아 살 것 같다 내뱉었어요.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그렇게 눈감고 온도와 음악을 즐기며 있다가 정신 차려보니 40분이 지나있었습니다. 손이랑 발은 쪼글쪼글해졌지만은 몸과 마음이 풀충전되어 빵빵해진 기분에 목욕하기를 잘했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일 안 해! 외치고 목욕도 하고 낮잠도 자고 좋아하는 음악도 들으며 시간을 보냈더니 생각보다 앞으로의 일들이 조금 더 정리가 되더라고요. 이참에 마사지기도 꺼내어 오른쪽 어깨와 등도 토닥여주면서 좀 더 버텨내 보자 되뇌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이 돌아왔습니다. 


 토요일부터 있었던 두통(근육이 뭉쳐서 생긴 것 같은...)도 아직 없어지지 않았고 미뤘던 일들을 아침부터 하면서 다시 오른팔이 저려오지만은 이번주 금요일까지만 좀 더 바쁘면 또 주말은 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득 안고서 버텨볼 수 있게 됐어요. 욕심을 내어 쉬었던 결과가 좀 더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다는 게 제 기준으로 매우 새롭고 신기한 일이라, 이런 걸 리프레시 라고 하는 건가?! 싶으면서 욕심내길 잘했단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쉬고 싶은 욕심들을 실행에 옮겨가며 일을 해나가야겠다 생각했어요. 


 혼자서 벌어먹고 살겠다고 뛰쳐나온 지 11개월 차. 또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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