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는 점심을 먹고 루 인쇄소 2-1 지점을 찾아가고 있었다.
곧 있을 장미축제 기간 동안 위대한 서점도 여러 다양한 세일과 행사 등을 함께 진행하는데, 층의 각 코너와 매대마다 작은 이벤트를 열고 그에 필요한 포스터와 안내장 등을 만든다.
나나가 있는 B-111 매대와 B0-23 책장에서는 정원에 심기 좋은 꽃과 나무 관련 책들을 할인하고 꽃씨를 무료 나눔 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 이벤트에 필요한 여러 인쇄물의 시안을 제작해 인쇄소에 미리 보냈으며, 오늘이 그 인쇄물의 마지막 체크와 함께 먼저 필요한 대형 포스터들을 찾아오기 위해 까가미누 코너장의 지시로 나나는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루 인쇄소로 가는 중이었다.
물론 나나가 가기까지 베리는 나나 대신 본인이 가거나 함께 동행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까가미누 코너장은 가뜩이나 바쁜 시간에 둘씩이나 인쇄소에 보낼 이유가 없었기에 베리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베리의 뜨거운 눈총을 뒤로한 채 웽이 자세히 설명하며 그려준 약도를 들고 인쇄 골목에 들어선 나나는 얼마 가지 않아 눈에 확 들어오는 루 인쇄소 본점 앞에 서있었다.
“우와~ 엄청 크다”
4층 높이의 네모난 상자들을 살짝 어긋나게 쌓아 올린 것 같은 외형의 이 큰 건물이 루 인쇄소의 본점이었고 작은 분점들이 주위에 나눠져 다양한 업무 분담을 하고 있었는데, 나나가 찾아가는 2-1 지점은 주로 이번일 같이 작은 건에 해당하는 일들을 맡아하고 있는 곳이다.
본점을 지나 골목길을 두어 번 꺾고 돌아서 마침내 찾은 2-1 지점은 1층으로 이루어진 작은 인쇄소였고 입구에는 여러 인쇄물들의 샘플들과 루 인쇄소의 소개와 여러 분점들의 위치 등이 쓰여있는 커다란 안내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여기가 맞나?”
입구에선 나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간판 맨 아래 작게 쓰여 있는 2-1 지점 이라는 글을 발견하고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낡은 나무 문을 밀고 들어선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여러 잉크냄새와 엄청난 기계소음이 나나를 덮쳤다.
잠시 정신이 멍해져 서있는 나나 뒤로 누군가가 묻는다.
“어떻게 오셨나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조금 놀란 나나가 뒤돌아 보자, 작은 키에 온화한 인상을 가진 할머니 한분이 커다란 돋보기를 코 위로 올리며 서 있자, 나나는 빠르게 인사하며 용건을 말했다.
“안녕하세요~ 위대한 서점에서 일하는 송나나라고 합니다,
오늘 인쇄할 포스터를 확인하고 일부를 가져오라고 하셔서요”
“아~ 그러시군요, 잠시만요” 하며 현관문 옆에 자리한 턱이 낮은 책상으로 다가가 스케줄표가 적힌 종이 한 장을 찾아들고는 다시 나나 곁으로 온다.
“음~ 어디 보자 아, 1시 30분에 2층 B-111 매대에서 오기로 되어 있군요”
“네, 맞아요”
나나가 밝게 대답하자, 할머니도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잠시 기다리세요, 곧 담당자를 불러드릴 테니”
책상 쪽으로 다가간 할머니 직원은 빨간색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건다.
“아~ 나예요, 지금 여기 위대한 서점 2층 매대 손님이 왔어요, 어디 보자 매대 번호가 B-111이에요”
할머니가 전화를 하는 동안 나나는 주위를 살펴본다.
오래되어 보이는 나무 마룻바닥과 여기저기 손때와 흠집으로 가득한 굵은 나무 기둥들이 천장을 받치고 있으며, 정면으로는 작은 유리창이 달린 문들이 나뉘어 있고 그 문 위로 1부터 6까지의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저 안쪽이 인쇄를 하는 곳이구나’
나나가 고개를 쭉 빼고 유리창 안쪽을 기웃거리고 있을 때 3번이라고 쓰인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나나를 반갑게 부른다.
“나나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얼마 전 웽의 소개로 인사했던 푸푸루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 안... 안녕하세요”
순간 푸푸루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은 나나는 속으로 당황했다.
‘큰일이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이름을 기억해 내려 애쓸 때, 이런 속마음을 알아챘는지
“뭐야? 설마 나를 잊은 거야? 내 이름은 푸푸루고 우리 친구 하기로 했었는데?”
나나 앞으로 성큼 다가와 조금 실망스럽다는 투로 말하자,
“아~ 푸푸루, 맞다! 죄송합니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어요” 하고 고개를 숙이며 나나가 사과하자 푸푸루는 살짝 표정을 찡그리며,
“괜찮아~ 이름이야 다시 알려주면 되는 거고, 근데 우리 친구 하기로 했는데...”
“아... 그랬지요... 가 아니라 그랬지”
나나가 머뭇거리며 이상한 반말로 대답하자 크게 웃는 푸푸루.
“나나 너 진짜 재밌는 애구나~ 여하튼 2층에 있는 일부 매대 일은 내가 담당이야, 물론 B-111 매대도”
나나에게 자기가 열고 나온 문을 다시 열어젖히며 손짓으로 나나를 부른다.
“인쇄준비는 다 끝난 상태니까, 네가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만 마지막으로 확인하면 바로 인쇄작업에 들어갈 거야”
“알았어, 고마워”
나나가 푸푸루의 말을 듣고 할머니 직원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한후 열린 문으로 들어간다.
문안 쪽은 양옆으로 유리창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나뉜 복도를 따라 큰 인쇄기계들이 굉음을 내며 다양한 크기의 종이 위에 수많은 인쇄물들을 뱉어내었고, 그인쇄물을 확인하며 지정된 곳으로 옮겨 끈으로 묶거나 상자에 담고 있는 직원들의 바쁜 모습이 보였다.
처음 보는 장면에 나나가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며 연신 감탄사를 터트린다.
“우와~ 굉장하다, 나 인쇄소는 처음이야”
나나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며 놀라워 하자,
“처음만 신기하지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금방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
푸푸루는 늘 있는 일이라는 듯, 말했지만 나나는 왠지 몇 번을 봐도 신기함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걸음을 멈춘 푸푸루가 나나에게 말했다.
“자, 여기야, 이곳에서 내가 맡고 있는 2층 매대들이 필요한 것들을 뽑아내고 있어”
“굉장하다~”
커다란 인쇄기계 앞에 선 나나가 또 한 번 놀라워한다.
“응? 이 귀여운 아가씨는 누구야?”
누군가가 푸푸루에게 묻자,
“아, 삼촌~ 매대 b-111에 신입 송나나 씨라고 해요”
얼굴 가득 덥수룩한 수염이 있고 덩치가 산만큼 큰 남자에게 나나를 먼저 소개하고는,
“나나야, 이 분은 이 기계를 관리감독 하시는 쵸토부 기사님” 하자
나나는 얼른 “안녕하세요 송나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며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나나씨 반가워요~ 난 쵸토부 라고 하는데, 그냥 삼촌이라고 불러도 되고 기사님도 상관없는데 아저씨라고만 안 부르면 돼요~”
한쪽눈을 찡끗하며 덩치처럼 엄청난 성량으로 크게 웃으며 말하는 쵸토부를 보며 나나 역시 웃는 얼굴로
“네~” 하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오늘 가져갈 포스터 내용들을 인쇄가 들어가기 전에 꼼꼼하게 확인한다.
B-111 매대와 23 책장은 주로 홈베이킹과 정원 가꾸기 책들이 주력 상품인데, 2주 후 레인보우 시티 장미축제 기간 동안 대대적인 할인과 여러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나나는 111 매대와 23 책장에서 축제기간 할인될 책들의 제목과 일정금액 이상을 사는 구매자에게 주는 선물 품목, 어린이를 동반한 손님들에게는 꽃씨를 나누어준다는 이벤트 내용과 함께 영수증 추첨행사에 뽑힌 손님 한 명에게 주는 마법의 식물에 대한 설명도 틀린 글자 없이 잘 적혀있는지 살폈다.
“어때? 이상 없지?”
나나 옆에 서있는 푸푸루가 묻자,
“응, 내용도 오타도 모두 문제없어”
“좋아 그럼 인쇄 들어갈게~”
“응, 부탁해”
나나가 한걸음 뒤로 물러서자 원본 포스터 한 장을 넓고 얇은 유리가 붙은 기계 속에 올려두고 조심스럽게 검고 무거워 보이는 덮게를 닫고 버튼 몇 개를 누르자 위이잉~ 하며 소리가 시작되면서 연결되어 있는 인쇄기계에서 촤르르 빠르게 포스터들이 인쇄되어 나온다.
그렇게 50장의 a1 사이즈의 포스터가 모두 나오자, 쵸토브는 좀 더 큰 사이즈의 종이로 바꾸고 또다시 푸푸루가 버튼을 누르자 전지사이즈의 대형 포스터 2장도 인쇄되어 나왔다.
“우와아~ 너무 신기해요”
나나가 두 눈을 반짝이며 감탄한 듯 말하자, 쵸토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조금만 더 기다려요, 가지고 가기 편하게 담아줄 테니까”
큰 몸과 덥수룩한 수염으로 덮힌 얼굴과는 다르게 세심하고 다정한 쵸토부의 말에 나나가 연신 미소를 띠며 감사인사를 하자, 이 모습을 바라보던 푸푸루가 갑자기 쵸토부가 포스터를 담아주려는 봉투를 낚아채듯 가져가며 빠르게 말했다.
“삼촌~ 마무리는 제가 할 테니까 얼른 다음시간 인쇄물의 색과 잉크 조절을 확인하세요”
푸푸루는 쵸토부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A1사이즈의 포스터들은 살짝 반으로 접어 손잡이가 달린 종이봉투에 담고, 큰 전지 사이즈의 포스터는 얇은 유선지를 가운데 끼워 넣고 돌돌 말아 나나에게 준다.
“자, 이렇게 들고 가면 편할 거야”
“어? 으응, 고마워 푸푸루”
종이봉투와 길게 말린 포스터를 받아 든 나나는 쵸토부에게 다시 한번 인사 후 인쇄실을 나와 출입구로 향했다.
들어올 때 만났던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인사를 하고 가려 잠시 기다려 봤지만 시간이 길어질듯해서 출입문을 밀어 밖으로 나와 골목길로 들어설때, 뒤에서 나나를 부르는 푸푸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나야~ 잠 깜만, 나랑 같이 가자~” 하며 푸푸루가 뛰어와 나나 옆에 선다.
“어? 바로 다음 예약손님 있다고 하지 않았어?”
나나가 푸푸루를 바라보며 묻자,
“아~ 괜찮아 아직 시간이 있기도 하고 나도 서점에 볼일이 있어서...”
푸푸루는 어깨를 으쓱이며 나나의 의견도 묻지 않고 나나의 손에 들려있던 종이봉투를 자기가 가져가며 한 발 앞서 걷기 시작한다.
나나가 “괜찮아 무겁지도 않은걸” 하며 다시 종이봉투를 달라는 듯 손을 뻗었지만 푸푸루는 나나의 행동을 못 본 척하며 “나나야 저 모퉁이 앞에 젤리가게 있는 거 아니? 그 집 젤리사탕이 진짜 맛있는데 하나씩 먹으면서 갈래?” 웃는 얼굴로 다른 소리를 한다.
“젤리? 갑자기 무슨 젤리야, 그리고 난 지금 업무시간인걸, 빨리 매장으로 돌아가야해 지금이 제일 바쁜 시간이거든”
나나가 살짝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하자 “그래? 아쉽네 저 젤리사탕 맛을 꼭 알려주고 싶었는데, 그럼 오늘 말고 다음에 같이 먹자? 알았지?”
푸푸루가 능청스럽게 나나에게 다음을 이야기하자 얼떨결에 “그래... 다음에 먹자, 같이...” 하며 약속을 해버린 나나.
그 모습에 만족한 듯 푸푸루가 빙긋이 웃고는 포스터가 든 종이가방을 흔들며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위대한 서점으로 향했다.
인쇄소 골목에서 위대한 서점까지 보통 걸음으로 20분 정도가 살짝 넘게 걸린다.
푸푸루는 걷는 동안 나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묻지도 않은 자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금방 위대한 서점 후문에 도착해 있었다.
“자, 여기”
푸푸루가 나나에게 포스터가 담긴 종이봉투룰 다시 건네준다.
“응, 고마워”
나나가 봉투를 받아 들자,
“그럼 남은 시간 동안 수고하고 우리 약속한 거 잊지 마~”
“약속? 무슨... 아. 젤리사탕? 알았어”
나나가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푸푸루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 서며 인사한다.
“그럼 안녕~”
“어? 푸푸루 서점에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나나가 푸푸루에게 묻자, 잠시 멈칫하던 푸푸루는,
“아~ 생각해 보니까 지금 당장은 필요하지 않은 거였어” 하고는 팔을 흔들며 인사하고는 빠르게 사라지는 푸푸루.
나나는 그런 푸푸루가 조금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하며 서둘러 후문을 크게 돌아 정문으로 갔다.
그리고 정문 양 옆으로 각종 행사와 이벤트 같은 것들을 미리 홍보하고 알려주는 게시판의 담당자를 찾아 전지 사이즈의 포스터 한 장을 건네주자 게시판 안쪽 문을 열고 들어가 2층 b-111 매대와 23 책장의 장미축제 관련 포스터를 붙여 주었다.
그리고 나나는 a1사이즈의 포스터들 몇 장을 층을 오가며 계단과 엘리베이터, 화장실등과 같이 많은 손님들이 지나가는 자리에 한 장씩 붙이고, 남은 포스터들을 챙겨 매대로 돌아왔다.
“나나씨, 지금 오는 거예요?”
돌아온 나나를 웽이 반겨준다.
“네, 코너장님 지시대로 제일 큰 사이즈 포스터는 정문 홍보 게시판에 붙여놨고, 1층부터 4층까지 돌면서 일러주신 곳들 모두 빠짐없이 포스터를 붙였어요”
“수고 많았어요, 루 인쇄소는 잘 찾아갔죠?”
웽은 붙이고 남은 포스터수를 세어보며 묻자,
“네 헤매지 않고 금방 찾아갔어요, 아 그리고 푸푸루가 있어서 도움도 받았고요”
“도움? 푸푸루에게 무슨 도움을 받았는데?”
좀 전까지 보이지 않던 베리가 푸푸루의 이름이 나오자 갑자기 나타나 나나에게 따지듯 물었다.
나나는 자기도 모르게 살짝 인상을 쓰며 “우리 매대 일을 쵸토부 기사님과 푸푸루가 하는 거잖아요? 가니까 푸푸루가 쵸토부 기사님도 소개해주고 인쇄되는 과정들도 알려주던데요?”
나나의 대답에 베리가 끼고 있던 팔짱을 풀며, “흥~” 하고는 뒤돌아 베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손님에게로 책 한 권을 들고 가버린다.
“쳇, 나도 흥이다~”
나나가 입술을 삐죽이며 작게 말하자, 웽이 “와~ 드디어 나나씨도 한계인가 봐요? 이제 베리 큰일 났네~” 하면서 재밌어 하자 조금 머쓱해진 나나가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요, 매번 왜 저러나 싶어서요”
“그러게요~ 베리가 일 욕심이 많고, 살가운 성격은 아니지만 유독 나나씨한테만 더 심하네요”
웽의 말에 나나가 뭔가 묻고 싶어 입을 열려는 순간 매대의 전화가가 울렸고 웽이 전화를 받아 든 모습에 하려던 말을 삼키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웽씨에게도 푸푸루와 젤리사탕 같이 사 먹기로 약속했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겠지? 그게 무슨 큰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