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 만발하게 피어있는 언덕 위작은 오두막의 안은 좁고 단출했지만 은은하게 나는 약초냄새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살림살이들 사이사이 직접 손뜨개질로 만든 것이 분명한 인형들과 테이블 커버, 방석과 쿠션등이 안락함과 포근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나를 욕실로 안내한 데이지가 자신의 옷과 수건을 내어주며 물이 담겨 있는 큰 양동이에 선반위에 올려져 있던 노란색 금붕어 모양의 조약돌을 집어넣자마자 진짜 금붕어로 변해 양동이 안에서 헤엄을 쳤고 노란색은 점점 빨간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나나씨 저 금붕어 보이죠? 물을 데울 때 사용하는 마법 조약돌이에요, 보이는 것처럼 물에 들어가면 진짜 금붕어처럼 움직이면서 노란색이 붉게 변하고 순식간에 열을 내어 차가운 물이 금방 따뜻해진 답니다”
“우와~ 처음 봐요 너무 신기해요”
나나가 크게 놀라워하며 신기해하자 데이지는 싱끗 미소를 지으며,
“완전하게 빨간색으로 변하면 손을 넣어 물온도를 체크하고 적당하다 싶을 때쯤 금붕어를 건져 저 선반위에 올려두고 데워진 물로 씻으면 돼요, 알았죠?”
“네, 정말 감사합니다”
나나는 연이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그리고 얼마 후 데이지의 설명대로 선명한 붉은색으로 변한 금붕어가 차가웠던 물을 금방 데워 따뜻하게 만들자, 얼른 금붕어를 건져 선반위에 두고는 진흙이 묻은 옷을 벗고 욕조에 물을 옮겨 씻기 시작했다.
온몸에 묻은 진흙을 말끔하게 씻어내고 데이지의 옷으로 갈아입고 욕실을 빠져나오자, 창가 가까이에 있는 테이블에 따뜻한 허브티와 먹음직스러운 쿠키들과 빵이 놓여져 있었고, 데이지가 웃으며 나나를 부른다.
“다행히 옷이 맞네요? 이리 와서 차 한잔하고 좀 있다 같이 휘리리씨댁에 가도록 하죠”
“데이지 씨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나가 연이어 감사 인사하자 데이지는 미소를 띠며 “은혜는 무슨 은혜예요, 어서 이리 와 앉아서 이거나 들어요”
나나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나무의자에 앉아 따뜻한 허브티를 한 모금 마시자, 입안 가득 온기와 함께 허브의 싱그러움이 느껴져 자신도 모르게 후~ 하는 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자 이것도 먹어봐요, 내가 만든 건데 맛이 어떨지 모르겠네요”
데이지가 쿠키와 빵이 담긴 크고 둥근 접시를 나나 가까이 밀어주자 나나는,
“와, 너무 맛있어 보여요” 하며 초콜릿과 견과류 조각이 박혀있는 쿠키를 집어 먹고는 금방 놀란 토끼눈이 되어 큰 소리로 외쳤다.
“세상에! 너무 맛있어요”
나나의 격한 반응에 데이지가 “진짜요? 그렇게 말해주니 너무 기쁘네요” 하며 웃었고, 나나는 얼른 다른 쿠키와 빵까지 입으로 가져가 먹었는데 정말 어느 베이커리나 디저트 전문 가게에서 파는 것들보다 훨씬 맛있었으며, 오덕이가 주문해서 먹는 아주 비싼 백화점과 호텔의 유명 파티셰의 음식들과도 뒤지지 않았다.
나나가 눈 깜짝할 새에 접시에 있던 쿠키와 빵을 모두 먹어치우자 데이지가 크게 웃으며 좋아했다.
“와~ 누군가가 내가 만든 것들을 맛있게 먹어주는 게 이렇게 기쁠 줄 몰랐어요~”
나나는 그런 데이지를 보며 “제가 너무 정신없이 먹었죠? 너무 맛있어서 그만...”
조금 무안해진 나나가 미소를 띠며 마주 앉은 데이지를 바라보자 데이지는 너무 즐거운 듯 케이크 한 조각 더 먹으라며 빈 접시를 들고 부엌 쪽으로 걸어가자, 나나는 사양하지 않고 감사하다며 인사하고는 좀 전까지는 경황이 없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데이지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본다.
나나보다 조금 키가 작은 듯했지만 비슷한 체형에 검고 윤기 나는 긴 머리카락과 같은 크고 까만색의 눈동자와 생기가 도는 붉은 입술을 움직이며 웃을 때마다 생기는 보조개까지 가진 데이지는, 이름처럼 작고 어여쁜 모습이었지만 길게 내린 앞머리로 가린 왼쪽뺨에 화상처럼 보이는 흉이 있었다.
그렇게 맛있는 음식과 다정한 대화로 몸과 마음을 충분히 채운 후 나나는 데이지와 함께 마법식물을 가지러 휘리리씨네를 찾아갔다.
키가 매우 작고 통통한 얼굴의 귀여운 인상의 휘리리씨는 약속한 마법식물을 나나에게 건네 주기까지 쉬지 않고 자기의 고민, 우울한 이유등과 같은 얘기를 한참이나 떠들어 대고서야 마법식물을 주었는데, 이 또한 데이지가 중간에서 정리해주지 않았다면 나나는 날이 샐 때까지 휘리리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지도 모를 만큼 말이 너무나 많았다.
데이지는 마법 식물을 받아 들고 레인보우시티까지 가는 버스가 서는 정류장까지 나나를 배웅해 주었고, 저 멀리 타야 할 버스가 오고 있는 것이 보이자 나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감사함을 전한다.
“데이지 씨 오늘 정말 여러 가지로 감사했어요, 늪에서 구해주시고, 옷도 빌려주시고, 맛있는 음식까지...”
나나가 마법식물과 자신의 옷이 들어있는 종이 상자를 끌어안은 채 몇 번이나 인사를 하자 데이지는 미소를 띠며 말한다.
“아니에요, 전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보통 사람과 이렇게 길게 이야기한 건 정말 오랜만이고 또 나나씨가 제가 만든 쿠키와 빵을 너무 맛있게 먹어줘서 너무 기뻤어요”
나나는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버스를 한번 쳐다보고는 ,
“저, 또 놀러 와도 돼요?”
조심스럽게 나나가 묻자 데이지는 잠시 조금 놀란듯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너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그래주면 전 너무 좋죠, 언제든 다시와요 맛있는 쿠키랑 케이크를 잔뜩 대접해 줄게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데이지가 대답하자 나나는 기쁜 목소리로 “네, 꼭 다시 놀러 올게요” 하고 대답한다.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은 나나가 창을 열고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자, 데이지도 멀어지는 버스를 바라보며 한참 손을 흔들어 주었는데, 그런 데이지의 모습이 왠지 쓸쓸하게 느껴진 나나는 장미 축제가 끝나면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서 꼭 다시 오리라 마음을 먹었다.
레인보우 시티의 장미축제는 정말 화려했고 볼거리가 가득했으며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진행되었던 위대한 서점의 행사로 나나는 살아생전 이렇게 많은 인파 속에서 어떻게 그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가져온 마법식물 추첨이 있던 행사의 마지막날 혹시나 하며 자신이 구매한 책의 영수증으로 기대해 봤지만, 역시나 나나는 당첨되지 않았다.
대신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 부부가 마법 식물을 얻게 되었다.
나나는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며 꽃을 피울 것이라는 당첨 인터뷰를 하는 부부를 바라보며 자기보다 저 부부에게 마법 식물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부부는 분명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가장 예쁘고 향기로운 향을 가진 꽃을 피울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이제 오늘로써 모든 축제와 행사가 끝이 난다.
나나는 처음으로 맞이한 대도시의 축제와 서점의 행사로 신기하고 재미도 있었지만 이제 끝이라는 사실에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더 컸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지만, 행사로 인해 평소 세네 배 넘는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지칠 대로 지쳐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빨리 축제가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들정도로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다.
얼마 전 웽은 나나에게 축제와 행사가 끝나고 난 뒤에는 서점을 찾는 손님들이 급격하게 줄기도 하고 피로감이 쌓인 직원들을 위해 3일 정도의 휴가를 돌아가면서 받는다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 휴가 스케줄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나나는 이틀뒤 3일간의 휴가가 주어진다는 것을 확인하고 마법숲에 살고 있는 데이지를 보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나의 계획을 들은 오덕이도 웬일인지 자기도 따라가고 싶다고 말해 함께 가기로 했다.
“선물은 뭐가 좋을까?”
행사의 마지막날 뒷정리까지 모두 끝내느라 늦게 퇴근한 나나가 피로감에 잔뜩 부어오른 두 다리를 침대에 앉아 주무르며 오덕이에게 묻는다.
“글쎄?, 너는 큰 도움을 받았으니 뭔가 제대로 된 선물을 준비해주고 싶겠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까, 흔하면서도 그 사람에게 필요하거나 어울릴만한 것들을 찾아보는 게 좋겠지?”
“흔하면서 필요하거나 어울리는 것이라...”
나나는 오덕이의 말을 듣고 이틀 내내 고민하며 주위를 살피며 다녔다.
그러다 휴가 전날 점심을 먹고 돌아오던 중 그릇가게 쇼윈도에 장식되어 있는 찻잔들을 바라보다 ‘저거다’ 하는 생각이 들어 지체 없이 들어가 선물로 줄 찻잔을 골라본다.
그렇게 고르고 고르던 중 눈에 들어온 선명한 파란색의 작은 꽃무늬 패턴이 그려져 있는 튤립 모양의 흰색찻잔 세트를 사서 포장을 부탁했다.
넉넉지 않은 나나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사실 그리 비싼 가격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왠지 데이지 씨와 어울릴 것 같은 디자인과 무늬가 무척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나나는 자신의 선택에 만족했다.
그리고 드디어 휴일의 첫날, 나나는 오덕이의 노란색 자동차를 타고 함께 마법숲으로 달려갔다.
마법의 숲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오덕이에게 이미 여러 번 말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다시 하면서 자신이 빠져있던 늪까지 가보았지만 늪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데이지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심어두었던 식물들이 크게 자라 뒤엉켜있을 뿐이었다.
“없어졌네...”
나나가 조금 실망한 듯한 목소리로 말하자,
“진짜 여기에 늪이 있었다고?”
오덕이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되묻자, 뭔가 장황하게 설명하려던 나나가 자신도 지친 듯,
“어... 진짜 있었는데 저 식물들 때문에 늪이 완전히 말라서 사라진 것 같아” 하는 정도로 끝내고 데이지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드디어 데이지의 오두막이 보였고, 좀 더 다가가니 앞마당 텃밭에 앉아 일하고 있던 데이지의 뒷모습이 보이자 나나는 큰 소리로 인사한다.
“데이지 씨~ 안녕하세요 저 진짜 다시 놀러 왔어요!”
“어머, 나나씨~ 너무 반가워요 다시 와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데이지는 갑작스러운 나나의 방문에 너무 기쁜 듯 서둘러 작업용 장갑과 앞치마를 벗으며 나나와 오덕이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저 오늘 친구랑 같이 왔어요 오덕이라고 제 가장 친한 친구예요”
나나는 오덕이를 데이지에게 인사시키자 오덕이는,
“안녕하세요, 오덕이라고 합니다, 제 친구를 구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오덕이의 인사를 받은 데이지는 “감사는요, 덕분에 저를 찾아와 주는 친구들이 생겨서 제가 더 기쁜걸요, 데이지라고 해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데이지도 인사하며 낡은 나무 현관문을 활짝 열어 나나와 오덕이를 안으로 들인다.
“좁고 누추하지만 들어와요, 아침에 구운 스콘과 딸기 케이크가 있으니 차와 함께 내올게요”
데이지는 의자가 두 개뿐인 테이블로 나나와 오덕이를 앉게 하고는 주방 쪽으로 다가가 찻물을 끓이고 스콘과 케이크를 준비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나나는 오덕이에게 아주 작게 속삭인다.
“기대해도 좋아 진짜 정말 맛있을 테니까”
나나의 말을 들은 오덕이는 무심한 듯 주위를 쓱 살펴보고는 “글쎄~ 너의 미각 수준을 그리 높이 사지 않아서...” 하며 이내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오덕이가 대답했다.
사실 자기의 유일한 친구인 나나를 도와준 사람이 누굴까 궁금하기도 했고, 나나가 침을 튀겨가며 칭찬했던 쿠키와 케이크맛이 진짜일까 하는 마음으로 같이 오긴 했지만 맛은 별로 큰 기대 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유명한 파티셰의 디저트들로 맛의 기준이 하늘높이 올라가 있는 오덕이를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았고, 이제 웬만한 새로운 메뉴들도 크게 감동을 주지 못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오덕이 앞에 데이지가 내어온 향긋한 허브티와 알맞게 구워진 스콘과 탐스럽고 싱싱한 딸기가 올려진 케이크가 큼지막하게 잘라져 데이블 한가득 채워졌을 때도 기대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우와아~ 진짜 집에 가서도 얼마나 생각났는지 몰라요~”
나나가 두 손을 모아 즐거워 하자 데이지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데 나나씨 칭찬이 듣기 싫지는 않네요”
주방 한쪽에 놓여있던 등받이 없는 의자를 가져와 앉으며 데이지가 수줍게 말한다.
“어서 편하게 들어요, 혹시라도 더 필요하면 얘기해요, 얼마든지 더 있으니까요”
데이지의 말에 나나는 “네 감사합니다~” 하며 스콘을 먹으려다 말고 가져온 선물 꾸러미를 조심스럽게 먼저 내밀었다.
“저 빌려주신 옷 세탁해서 가져왔고, 너무 감사해서 작은 선물 하나 준비했어요...”
생각하지 못했던 선물에 당황한 데이지가 “선물은 무슨, 이렇게 다시 찾아와 준 것만 해도 너무 고맙고 즐거운데요”
“선물이라고 하지만 그냥 싼 거예요, 제 마음이니까 그냥 부담 없이 받아주세요”
나나는 떠맡기듯 데이지에게 선물꾸러미를 안겨주었다.
선물상자를 풀어본 데이지가 튤립 모양의 찻잔세트를 보자마자 너무 마음에 든다며 환하게 미소 짓자, 나나는 그제야 선물을 사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혹시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눈 녹듯 사라진다.
“너무 예뻐요, 찻잔 선물이라니 처음 받아봐요”
데이지가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그... 그냥 지나가다 데이지 씨랑 어울릴 것 같아 산 거예요”
“정말 고마워요 아껴가며 소중하게 쓸게요”
데이지의 말에 왠지 얼굴이 달아오른 나나가 황급히 주제를 바꾸려 차 한 모금을 마시고는,
“자 이제 맛있는 스콘과 케이크를 먹어볼까요?”
하며 시선을 테이블 위로 옮겼지만 이미 한가득 채워져 있던 스콘의 접시와 케이크 접시 모두가 비워져 있었고 나나와 데이지가 나눈 짧은 대화시간 동안 모든 걸 먹어치운 오덕이가 입가에 묻은 스콘 부스러기를 실크 손수건으로 우아하게 톡톡 두드리며 진지한 목소리로 데이지를 향해 말한다.
“데이지 씨, 제 피티셰가 되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연봉은 원하시는 만큼 모두 맞춰 드리겠습니다”
오덕이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나와 데이지는 아무 말 없이 두 눈만 껌벅이며 오덕이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