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와 오덕이가 집으로 돌아가고 사용했던 찻잔과 접시, 포크 등을 설거지 하면서 갑자기 터져 나오는 웃음에 데이지의 어깨가 살짝 들썩인다.
오덕이의 개인 파티셰 의뢰는 너무 뜬금없고 황당했지만 기분은 정말 좋았었다.
데이지는 다양한 요리와 디저트류를 만들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나 대부분 혼자 먹거나 가끔 주위 마법사나 마녀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지만, 이런 격한 반응이나 칭찬은 단 한번도 없었기에 자기가 만든 음식들이 얼마나 맛있는지는 알 수 없었는데, 나나와 오덕이를 통해 자신의 솜씨의 정도를 대략 가늠하게 될 수 있어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오덕이는 개인 파티셰가 내키지 않는다면 자신이 투자할 테니 레인보우시티에 가게를 시작해 보는 게 어떠냐는 통 큰 제안도 했다.
그 말을 들은 데이지는 물론 나나도 크게 놀라며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오덕이는 진심이었고, 성공을 자신했다.
데이지는 이런 오덕이에게 너무나 고맙다며 몇 번이나 같은 인사를 하며 기뻐했다. 그러나 이 역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 숲밖을 떠나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으며 낯선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두려웠기 때문이다.
설거지를 끝내고 나나가 선물해 준 찻잔에 홍차를 마시며 서서히 노을이 지려는 하늘을 바라보는 데이지.
오덕이의 제안이 계속 머리에 맴돌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디저트가게.
밝은 색의 나무문을 열고 들어선 가게 안은 밝은 햇살이 가득하고, 다양한 쿠키와, 빵, 케이크들이 진열대 위를 가득 채워져 있으며, 가게를 방문한 손님들은 자신이 고른 것이 담긴 포장상자를 들고 웃으며 밖으로 나가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분명 최고의 손님이자 단골이 되어줄 나나와 오덕이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까지...
데이지는 그렇게 노을이 지고 어두워질 때까지 창밖을 보며 이루어질 수 없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같은 시간 오덕이와 나나는 데이지의 쿠키와 빵, 케이크를 너무 많이 먹어 저녁을 거른 체 응접실에 앉아 레몬티를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직도 소화가 안된 것 같아, 마지막 남은 빵은 먹지 않았어야 했는데”
나나가 자신의 배를 슥슥 문지르며 말하자 오덕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 나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데이지 씨는 왜 그 숲을 떠날 수 없다고 했을까?”
“응?, 글세... 어떤 이유라기보다 네 제안이 부담스러우니까 그냥 그렇게 대답한 게 아니었을까?”
“그런 건가?”
“아마도... 하지만 진짜 데이지 씨의 솜씨라면 장사도 잘 되고 금방 유명해질 텐데 나도 좀 아쉽긴 해”
“그렇지? 역시 다시 한번 정식으로 제안을 해봐야 하나?”
오덕이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듯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오덕이 자신도 이런 생각까지 하는 것에 놀라워할 만큼 데이지가 만든 것들은 모두 훌륭했다.
바삭하면서도 촉촉한 쿠키들은 너무 달지도 않으면서 고소했고, 알맞게 구운 스콘은 겉과 속에 들어있는 부재료의 맛 하나하나 모두 느껴졌으며, 폭신하면서 부드럽던 빵들은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차나 음료를 곁들이면 맛이 증폭되었다.
그리고 이 케이크의 시트는 어떻게 만든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층층이 쌓아 올린 새콤함과 달콤한 맛들이 입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흩어지듯 합쳐지는 맛의 딸기케이크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진짜 드림쿠키가 생각날 정도였어...”
오덕이가 레몬티를 홀짝이며 중얼거리자,
“드림쿠키? 그게 뭐야?” 하며 나나가 묻는다.
“벌써 5년도 더 된 것 같은데? 지미엘씨 베이커리 가게가 빛을 잃은 게...”
“지미엘씨? 누구지...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나나는 지미엘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잠시생각해다, 순간 아~ 하고 어떤 손님 한 명을 기억해 냈다.
“혹시 그 지미엘씨가 1-A3번지 골목에서 베이커리 가게를 운영하는 그 사람이야?”
“응, 맞아~ 진짜 그 가게의 모든 것들은 굉장했지만 드림쿠키가 나오는 날이면 진짜 레인보우시티 시민이 모두 줄을 선다 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엄청났어”
오덕이는 그때를 회상하는 듯 눈을 감은채 답하자, 나나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 그 지미엘씨가 아닌가? 나도 몇 번 그 가게에서 파는 것들을 사 먹어봤지만, 맛은 그냥 평범했는데? 특별하게 맛이 있지도 그렇다고 맛이 없지도 않은 그냥 흔하게 맛볼 수 있는...”
나나가 이상하다는 듯 말끝을 흐리자 눈을 뜨고 자기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쉰 오덕이가 말했다.
“맞아, 지금은 그냥 평범한 그저 그런 베이커리 가게로 전락했지... 5년 전 지미엘씨 부인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모든 게 바뀌었어, 지미엘씨도, 그 가게에서 구워지던 많은 음식들도”
오덕이의 설명에 나나는 자신이 봐왔던 지미엘씨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덥수룩한 머리스타일에 언제나 어두운 표정으로 구부정하게 서서 베이커리 관련 서적을 보던 모습을 말이다.
웽이 아는 체를 할 때만 잠시잠깐 짧고 어색한 미소를 보이던 손님.
그러고 보니 웽에게서도 드림쿠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았다.
지미엘씨와 부인이 같은 꿈을 꾼 그날 아침, 가게에는 초승달 모양의 등이 켜진다.
이 등이 켜지면 같은 꿈에서 얻은 영감으로 이른 새벽부터 부부가 함께 만든 달과 별모양의 드림쿠키라 불리는 쿠키를 판다는 뜻이었는데, 이 등이 켜진 날 에는 드림쿠키를 사려는 사람들로 가게 밖 멀리 까지 줄이 섰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이 쿠키는 맛도 최고였지만 먹고 난 후에도 하루종일 행복감이 느껴진다는 말을 쿠키를 먹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 했기 때문에 드림 쿠키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졌다.
하지만 언제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 부부가 같은 날 동시에 똑같은 꿈을 꾸어야만 만들어졌기 때문에 언제쯤 다시 맛보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어, 매일아침마다 가게주위를 서성이며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중 오덕이는 전담 직원을 고용하여드림쿠키가 판매되는지 아닌지를 매일 확인 했으며,드림 쿠키가 팔리는 날에는 제일 먼저 구매했을 정도였다.
물론 지미엘씨 부부의 가게에는 이 드림쿠키 외에도 모든 종류의 음식들이 독창적이면서도 훌륭한 맛을 자랑했기 때문에 드림쿠키가 있건 없건, 가게게안은 손님들로 항상 붐벼, 점심시간을 갓 넘긴이른 오후에도모든 진열대가 비워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5년 전 갑작스러운 부인의 죽음으로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끝이 났다.
너무나 사랑하는 아내이자, 동업자이며, 친구였던 존재를 잃은 지미엘씨는 한 동안 슬픔을 이기지 못해 술에 빠져 있었고 오랫동안 문이 열리지 않는 가게는 사람들 기억 속에서도 하나둘 잊혀 갔다.
그러다 1년 전쯤 오랫동안 꺼져 있던 간판에 불이 다시 켜지고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렸지만, 너무나 달라져 버린 지미엘씨의 쿠키, 빵, 케이크들은 사람들을 실망하게 만들었다.
평이하고 흔한 맛에 변하지 않는 메뉴들, 항상 미소 띤 얼굴로 유쾌한 농담을 건네던지미엘씨는 퉁명스럽고 귀찮다는 듯이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들로 오랜 시간 기다리며 지지했던 많은 단골마저도 하나 둘 모두 떠나버렸고, 지금은 그저 그런 수많은 가게 중 하나가 되어 버린것이다.
그날밤 오덕이는 침대에 누우려다 다시 몸을 일으킨 채 생각에 잠겼다.
사실 지미엘씨 부부의 드림쿠키는 오덕이에게는 특별했다. 세상을 떠난 엄마가 너무나 좋아했던 드림쿠키.
눈을 감기 전날 판매 되었던 드림쿠키를 웃으며 나눠먹던 엄마와의 즐거웠지만 슬픔으로 매듭지어진 그 마지막의 기억이 왠지 모르게 오늘 데이지의 쿠키를 먹는 순간 생생히 떠올랐었다.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엄마, 두 번 다시 맛볼 수 없는 드림쿠키.
잠시 멍하니 앉아있던 오덕이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이불속으로 몸을 말아 누웠다.
레인보우시티의 장미축제와 같이 진행되었던 행사가 끝이난 후 한동안 웽의 말처럼 서점은 한가했다.
나나가 이렇게 손님이 없어도 되는것일까? 하는 걱정이 들정도로 한산했는데 웽은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처럼 손님들이 북적이고 바빠질 테니 그런 생각 하지 말고 지금을 즐기라고 말한다.
이날 점심을 먹고 우체국에 들러 엄마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를 부치고 돌아오던 중, 등뒤에서 누군가가 나나의 이름을 큰소리로 불러 멈춰 서서 돌아보니 루 인쇄소의 푸푸루였다.
서점의 행사기간 동안 여러 번 마주치기는 했지만 서로의 일이 너무 바쁜 상태였기 때문에 간단한 인사 외의 다른 이야기를 할 틈이 없었는데, 오늘 푸푸루가 나나를 발견하고 달려와 웃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나나야~ 안녕. 점심 먹고 들어가는 길이야?”
“응, 점심 빨리 먹고 우체국에 들렀다 지금 서점으로 가는 중이야, 너는 점심 먹었니?”
“응, 대충 먹고 인쇄소 본점으로 심부름 가는 길이야”
나나와 푸푸루는 나란히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서점에 도착했다.
“안녕~ 수고하고 다음에 보자”
나나가 인사하며 직원용 출입문인 후문으로 들어가려 하자, 푸푸루가 황급히 나나를 불러 세운다.
“저기, 나나야 우리 약속했던 젤리 사탕 내일 먹으러 갈래?”
내일은 한 달에 한번 있는 위대한 서점의 정기 휴일이다.
“내일?”
갑작스러운 푸푸루의 말에 놀란 나나가 선뜻 대답하지 못 안채 서있자, 푸푸루가 묻는다.
“왜? 무슨 약속 있어?”
“아니, 딱히 약속이나 일이 있는 건 아닌데...”
“그럼 내일 젤리사탕 가게 같이 가자, 오후 1쯤 위대한 서점 정류장에서 만나는 걸로!”
푸푸루는 나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혼자 말해버리고는 루 인쇄소 봄점이 있는 방향으로 뛰어가며 크게 손을 흔들며 사라져 버린다.
“아니, 잠깐~ 야!”
나나는 당황하며 푸푸루를 불러보지만 이미 푸푸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나는 황당함을 안고 2층 자신의 매대로 돌아와 업무를 시작하면서도 갑자기 생긴 이 약속에 대해 생각을 했다.
기분 같아서는 이 어이없는 일을 당장 웽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왠지 근처에 있는 베리가 신경이 쓰여 영업시간이 모두 끝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나는 왜 자기가 이런 일로 베리의 눈치를 봐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 약간의 짜증이 났다.
하지만 집으로 들어가기 전 나나는 표정을 풀고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현관문을 열며 큰소리로 인사한다.
“다녀왔습니다~ 오덕아 나 왔어~!”
요즘 무슨 일인지 오덕이의 기분이 좋지 않다.
언제나 무표정에 심드렁한 오덕이었지만, 우울해하거나 풀이 죽은 모습은 아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오덕이는 요 며칠 계속 기운이 없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이 많아진것이다.
딱히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었지만 오덕이가 걱정된 나나는 조금이라도 즐거운 느낌을 주려고 일부러 평소보다 더 밝게 행동했다.
나나의 소리를 들은 오덕이가 응접실에서 걸어 나오며 나나를 맞이해 준다.
“어서 와 나나야~ 오늘도 별일 없었니?”
“아니, 오늘은 별일이 있었어”
나나의 말에 오덕이가 호기심의 눈빛을 보내자, 나나는 씩 웃으며,
“일단 씻고 내 방 가서 얘기해 줄게”
나나의 말에 궁금증이 생긴 오덕이가 방으로 올라가는 나나를 따라가면서 계속 묻는다.
“뭔데? 무슨 일인데?”
“잠깐만 기다려~ 금방 말해줄게”
샤워를 마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나나가 욕실을 나오자, 오덕이는 벌써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마치고 창가 앞 작은 테이블에 따뜻한 차와 말린 과일이 담긴 접시까지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빨리 와 나나야~ 기다리다 목이 늘어나서 기린이 될 뻔했다고”
“오덕이씨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셔야죠~ 평소보다 빨리 씻었고, 누구의 목도 전혀 길어지지 않았으니 타박하지 마세요~”
나나의 말에 오덕이가 킥킥거리며 웃자 나나도 같이 웃으며 의자에 앉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고~ 아까 점심시간에 말이야...”
나나는 말린 과일을 입에 넣어 오물거리며 푸푸루와의 갑작스러운 약속과 오후 내내 베리를 신경 쓰고 있던 자신의 기분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
나나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도대체 내가 왜 베리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니까, 내가 푸푸루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말이야”
나나가 짜증 난다는 듯 한참을 투덜거렸지만 오덕이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내일, 나나 네가 데이트를 하러 나간다는 거지?”
오덕이의 말에 펄쩍 뛰며 나나가 큰소리로 항변하듯 말한다.
“데이트는 무슨 데이트야~ 그냥 내 대답도 없이 무작정 잡힌 약속이라니까~!”
“그래~ 무작정 잡힌 네 첫. 데. 이. 트!”
“데이트 아니라니까~! 그냥 젤리사탕인지 뭔지 그거 먹으러 가는 것뿐이라고”
“그래~ 젤리사탕 가게로 남자와 가는 휴일의 데이트”
오덕이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아니라고 부인하는 나나를 놀리듯 계속 데이트를 운운하며 즐거워했고,이런 오덕이를 바라보며 친구의 기분이 조금은 좋아진것 같아 속으로 안심하는 나나였다.
그날밤 잠자리에 든 나나는 오덕이의 데이트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데이트라니...무슨...'나나는 괜스레 베개를 다시 정리하고 이불속에 몸을 묻고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