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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근 Aug 07. 2017

처음 뵙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4]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기

올해 초 아버지가 취직하셨다. 오랜 기러기 생활을 정리하고 캐나다에 들어온 지 3년 만의 일이다. 그래서 가족 전체가 영세한 공업도시인 키치너로 이사 오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와 같은 시기에 학업을 마쳤으므로 자연스러운 흐름 상 키치너에서도 얹혀살게 되었다.


정말이지 내가 바라던 일은 아니었다. 원체 사이가 좋지 않으신 부모님과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동생이 만들어 내는 시너지 효과로 집안 분위기는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놈의 돈이 문제다. 취직하기 전까지, 아니 향후 몇 년간은 학자금 덕에 마이너스 통장이 예약된 나는 발이 묶인 심정이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는 의미가 있고 배울 점이 있는 법, 이라고 나의 이성은 욕지거리하느라 바쁜 감정을 설득했다. 이성이는 열일 하느라 힘들었다. 순풍에 돛 단 듯 흐름에 몸을 맡겨도 원하는 대로 살아지면 참 좋을 텐데. 이유를 찾고 의미를 주입시키려 고군분투하지 않으면 소화되지 못한 감정이 넘쳐나 나는 잠길 것이다.

누나이니까, 딸이니까, 집안 분위기에 함께 가라앉은 채 변변치 않은 도움조차 주지 못하는 모습이 싫었다.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고 꼭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울하고 날 선 태도에 동참하는 건 악순환의 고리를 심화할 뿐이다. 그렇다면 누나와 딸의 의무감에서 벗어나 나에게 집중하면 상황은 나아질까? 가족 내 나의 역할을 져버리는 이기적인 사람이 될까 겁나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진퇴양난이다. 가족의 상황을 나몰라라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함께 정체되고 싶지도 않다. 이 갈등을 하는 와중에 아빠가 새벽기도에 나가기 시작하셨다. 게으른 나는 흐름 타기 선수다. 어부바하는 꼴로 아빠의 의지에 의지해서 아침시간을 기도하며 보내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답은 일련의 사건에 담겨 배달되었다.




금요 술 모임


아빠와 속내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술을 마시고부터였다. 첫 잔도 아빠와 함께 했고 아빠 외에는 같이 마셔본 사람이 없다. (딱 한 명 빼고... 음 두 명인가... 허허.) 새벽기도 얘기하고 바로 술 얘기하는 게 내가 봐도 좀 이상하긴 하지만 아직 덜 자란 아이들의 성장 과정이라 이해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 거의 십 년을 떨어져 살았고 회사원 생활을 오래 하신 아빠와 가까워지려면 사실 함께 술 먹는 방법밖에 없기는 하다. 말 없기로 유명한 경상도 남자인 아빠는 맨 정신에는 대화 자체가 부담이다. 나름대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말을 걸지만, 단답형으로 끝나는 질문만 한다는 걸 본인은 아직 모르신다. 그래서인지 2년 전 처음 마신 맥주 맛을 내가 좋아하자 못내 기뻐하시는 눈치였다. 이제는 같이 한잔하자 먼저 제안하신다. 가장으로서 아들 문제, 부부 문제로 떠안는 복잡한 심정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으시겠지.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저 혼자 삐지고도 아무 말 않는 소심함이 쓸데없이 닮았다. 서로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지만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다. 이렇게 불건전하나마 소통을 시작하며 아빠와 나는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그 전에는 몰랐는데, 너와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이제는 네가 다~컸구나...

한 사람 몫을 하게 되었구나, 인! 정! 한다! 오늘 이! 쉬간부터."

"나도! 아빠를 아빠가 아니라 인간 ***으로 보게 되어서 좋구나~요."

하하 호호.


이렇게 서로를 인정(?) 해 주며 도닥거리다 보니 맨 정신의 대화도 조금 수월해진 것 같다. 어느 날은 차 안에서 아빠에게 서운했던 일을 여럿 털어놓았다. 아빠가 이렇게 저렇게 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걸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하니,


"네가 나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 같다."


라고 대답하셨다. 전 같으면 탁 하고 마음을 쳤을 말. 어라, 술도 안 마셨는데 안주 넘어가듯 숙 들어간다. 아버지는 당신이 해 주지 못한 부분을 나의 배우자가 채워줄 수 있도록 기도한다 덧붙이셨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불가피한 외로움을 딸의 외로움이라 착각하고 말았던가. 아버지라는 역할을 인질 삼아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었나.


한 사람 몫을 한다는 것은 나의 결핍을 부모님이 처리해야 할 잔업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 같다. 내가 떠안은 문제는 부모님 대에 해결되지 못한 숙제일 수 있다. 부모님을 닮은 문제는 부모님은 닮은 나에게 남겨졌다. 이런 법이 어디 있냐, 법대로 하자! 베니스의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처럼 따져 본다. 웬걸. 싹둑 잘라내려고 보니 내 살덩이다. 삶은, 피 한 방울 내지 않고 베어낼 수 있으면 베어 내라고 말한다.




예티 카페


키치너는 사실 별 재미가 없는 동네다. 눈에 띄면 시청에서 벌금이라도 물리는지 거리에 있는 것들 전부 평범하기 그지없다. 옷 가게, 음식점, 담배 가게, 카페 모두 각자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몸부림을 친다. 나는 나대로 창문 없는 운전 연수원 교실에서 졸지 않으려 애썼다. 잠 깨는 마법의 물약을 구하려다 Yeti Cafe를 발견했다. 예티는 눈 덮인 산 위에 산다는 상상의 괴물인 설인이다. 주택가로 향하는 한적한 골목길에 덩그러니 서 있는 설인처럼 동떨어진 느낌의 예티 카페는 저 혼자 알록달록이다. (숨어있는 미친 설인을(를) 보았다!) 전체가 수작업으로 만들어져 키치 kitsch 감성이 충만한 브런치 카페였다. 원래 커피 안 마시지만 이곳 커피는 좀 맛있는 것 같다. 먹을 것 취향은 시각적인 자극과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데, 인정. 많이 받았다.


며칠 후, 엄마와 함께 예티카페를 다시 찾았다. 내 마음에 든 카페이니 검증이라도 받고 싶었나 보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응한 엄마는 커피는 고사하고 매의 눈으로 카페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결론은 시덥잖다는 거였다. 얼렁뚱땅 사람 손 탄 느낌이 너무 강하다나. 아니, 이, 엉성함에서 오는 따뜻한 인간미 안 느껴지나요?


엄마는 뭐든지 수작업으로 이뤄졌던 사회에서 자랐다. 그리고 돈이 모이자 마땅히 계획도시 분당으로 이사 갔다. 잘 짜인 도시에서 자란 나는 빈티지가 멋있는 줄 안다. 우리는 '조잡한' 데코레이션 때문에 정신없는 카페를 나와 나무 그늘진 벤치에 앉았다.


"너는 내 세대가 하지 않은 고민을 해야 하는 세대야."


엄마가 이따금 내게 하던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니 으레 취직이 되고, 결혼을 해서 당연하다는 듯이 아이를 둘 정도 낳아 키우는 과정에 큰 마찰은 없었다고 한다. 동생 일을 겪기 전까지 엄마의 모토는 '노력하면 된다'였다. 증명이라도 하듯 삶엔 외적 동기가 손 닿는 거리에 차려져 있었다. 수순으로 정해진 퀘스트는 명확했고, 성취하고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면 되었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지는 삶의 요소에 집중하느라 내면과 대화할 기회가 쉬이 주어지지 않는 시기였다. 벽이 보호와 한계의 두 가지 속성을 지니는 것처럼 엄마의 삶은 너무 많은 정보와 선택으로부터 보호받는 동시에 어떤 면으로는 제지당했다.


엄마는 내가 왜 대학을 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 참 신기한 애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의 세대는 사회적 지위, 성과, 점점 커지는 연봉이라는 신기루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먼 길을 가야 하는 여행자처럼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큰 맘을 먹는다. 내리쬐는 뜨거운 시선과 출처가 불분명한 보물지도가 주는 삶의 부담을 인내하고 걸으며 자기도 모르게 주절거린다. 옆에는 늘어진 그림자뿐 대답은 고사하고 들어주는 이 하나 없다. 결국 혼자가 된 말은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철학적인 사유가 아니라는 것은 내가 먼저 안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고, 포트폴리오를 꾸며야 하고, 정체된 시간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신음처럼 나오는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게 뭘까? 아직 모르겠다."


식어가는 커피를 손에 모으고 엄마가 말했다. 삶이 준 통찰과 경험이라는 장비를 갖추었지만 무엇을 만들지는 그려내지 못한다. 퀘스트를 모두 클리어하고 만렙이 되었지만 프로그램을 넘어서지 못하고 게임 속 캐릭터로 남아버린 자신을 발견했다. 경제 발전 시기라서, 온 나라가 허리띠 졸라매던 시절이라서, 새로운 룰이 만들어지던 시대라서 적응하느라 바빴던 부모님들. 세월이 흘러 사회는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었다고 한다. 그런 요즘 아이들은 코딩을 배운다. 게임의 룰을 만드는 개발자로 출발선에 선다. 그런 초딩들과 사회의 플레이어로 산 부모님 세대, 그 사이에 낀 나는 뭘까?


개발자든 게임 캐릭터이든 프로그램 안에서 생을 마감하고픈 사람은 없다. 책임감이 강한 엄마는 사회 가 준 부모라는 타이틀에 준거하는 기준을 지키려 평생 애썼다. 그리고 희생의 깊이만큼 정체성이 매몰되는 오류에 빠졌다. 엄마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 나와 맞닿아 있었다.


세상 모든 엄마는 딸의 희생물이다. 엄마는 가장 가까운 내 모습이기에 순전히 딸의 기분에 따라 엄마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내 인생이 이 모양 이 꼴인 이유가 되기도 한다. 엄마의 행동과 습관에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쌓여 온 역사가 있다. 그 이면을 볼 수 없는 정보의 불균형을 우리는 잊곤 한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엄마의 생소한 모습에서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나를 응원해 주던 엄마를 내가 응원해야 하는 상황이 새로운 저울추가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 내듯 엄마를 다르게 보이게 했다. 엄마의 역할을 벗고 새로운 얼굴로 나를 보고 있네. 엄마도 나와 똑같이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사람이 아닐까.


독립이 관계의 '단절'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정리'로 보이기 위해 자녀로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에는 자신을 위해 독립해야 한다. 쓸데없는 뒤처리로 과로사 직전인 나의 이성이를 위해, 오랜 세월 부모 역할을 지고 살아온 엄마 아빠를 위해 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다. 서로에게 "서운한 부모" 또는 "냉정한 자식"이 되지 않도록 산모(부)와 아이 모두 건강하게, 나를 분리하는 작업을 어설프나마 시작했다.




글, 그림 상은리


재미로 보는! 만년필 그림'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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