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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근 Sep 26. 2017

추방이요? 제가 한번 당해보겠습니다 - 1

영주권 분투기


2017년 9월 1일,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캐나다 영주권 카드다. 흑백사진 속 더위에 지친 짧은 머리 소녀가 나를 말끄러미 쳐다본다. 그 옆에는 캐나다의 상징인 단풍잎 모양이 앙증맞게 찍혀있다. 괜스레 카드를 이리저리 기울여본다. 빛을 받으며 반짝이는 빨간 단풍잎. 영주권 연장 신청 패키지를 보내며 마음 졸였던 기억이 벌써 가물가물하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카드 한 장을 얻기 위해 겪은 수난을 생각하면…. 아 잠깐만, 눈물 좀.


Act 1. 추방당하다

캐나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내 잘못이지만)


2007년 9월 밴쿠버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자의식 최고봉 시기였기에 이미 형성된 친구 그룹에 끼지 못하고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소소한 우정을 누릴 수도 있었지만, 꽉 막힌 아이였던 나는 학창 시절에 추억보다는 외로움을 쌓았다. 그 마음이 가득 묻힌 곳이 캐나다 땅이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간 그곳에 머물렀다. 엄마와 동생은 캐나다에 살며 시민권을 땄지만, 굳이 '돌아가야'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캐나다는 내 집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오랜 기러기 생활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들어오시게 되었다. 갈 곳 없는 취준생이던 나도 캐나다에 있는 가족과 합류했다. 구직활동으로 시간을 보내던 나는 마음 한편에 키워오던 선생님의 꿈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마침 살던 곳에 교육 사범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가를 위한 교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라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해 겨울 지원서를 보내고 합격 통지를 받았다.


문제의 4월, 미국에 남긴 나머지 짐을 몽땅 싣고 캐나다에 들어오는 중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에서.


"어? 이 영주권 카드는 만기 되었네요?"


캐나다에서 살 확실한 동기가 없어서, 미국 살 때 연장 신청을 어영부영 미룬 탓이다. 국경관 아저씨는 직업 정신이 유난히 투철한 사람이거나 새로 부임한 새내기인 게 분명하다. 나의 치부를 열정적으로 캐내더니, 내가 최근 5년 동안 최소 2년을 캐나다 땅에 머물러야 하는 영주권자의 법적 의무 residency obligation 도 충족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야 말았다. 나도 몰랐던 사실! 미국에서 대학 다닌 기한을 빼니 날수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다. 빼도 박도 못한 내 잘못이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으나, 나는 캐나다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는 등 새 인생을 살 준비가 되었다는 말로 국경관의 마음을 끌어보려 했다.


국경에서의 모든 결정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전권이 있다. 따라서 국경관의 성정에 따라 비슷한 사례에도 전혀 다른 결론이 나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정황상 넘어갈 수도 있지. 내 앞에 서 있는 국경관이 자비심 많은 사람이기를 바라는 수밖에. 미국이 뭔가요? 저는 캐나다에서 뼈를 묻을 사람입니다요, 나리.

국경관 아저씨는 매정했다. 만기 된 영주권 카드를 시작으로, 영주권자로서 나의 불성실한 모습을 전부 알아내고야 만 시점에 예견했듯이 그는 예외 없이 나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다.


Act 2. 항소 신청


"고딩 때 그렇게 캐나다 욕을 하더니만, 캐나다의 역습 아니냐."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말이 없던 엄마가 그날의 걱정을 장난스레 마무리하려 했다. 맞네. 자연 빼고는 별 볼 일 없는 맹탕이라고 은근히 무시했던 캐나다에 한 대 맞았다.


영주권자가 아니면 학비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나는 유학생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큰 액수를 지급할 여력도 없다. 손에 닿는 몇몇 한인 기관은 정착 서비스에 특화되어 있어서 나 같은 사례는 생소할 뿐이다. '영주권자가 추방 명령을 받은 경우' 같이 구체적인 사정에는 전문 변호사가 제격이라는데, 상담료만 몇십만 원이란다. 전화로 상담하는 것과 직접 만나서 상담하는 비용이 다르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무서운 법정 신세계….


정신없이 수소문한 끝에 캐나다 온타리오주 법률협회 The Law Society of Upper Canada 에서 공공 서비스 차원으로 30분간 무료 법률자문을 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움이 필요한 분야를 설정하면 나에게 맞는 법률사무소를 소개하고 위탁 번호를 발급해 준다. 법률사무소에 직접 문의하면 어떤 식으로 상담을 진행할 것인지 연락을 준다. 직접 방문을 하는 일도 있지만 나는 전화상담을 받게 되었다. 이메일로 전후 사정을 미리 나눈 후, 정해진 시간에 전화가 왔다. 젊은 여자 목소리의 법무사는 당장 밟아야 하는 조치를 빠르게 읊었다.


"영주권자가 추방 명령을 받으면 항소 appeal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한을 채우지 못한 것이 확실하므로 인도적 고려 조항 Humanitarian and Compassionate cause, H&C 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겠네요. 추방 명령을 받은 날짜로부터 30일 이내에 항소 신청을 해야 합니다. 신청서가 접수되면 재심 날짜가 잡힐 건데, 현재 대기 시간은 18에서 20개월 정도예요. 항소심이 열려서 특별 위원회가 판결문을 내릴 때까지는 영주권자 자격으로 캐나다에 있을 수 있습니다."


항소 승패를 떠나, 항소심 자체가 열리기 전에 학업을 충분히 마칠 수 있는 기한이었다. 뭐든지 느리고 인력이 부족한 캐나다 아주 칭찬… 이, 이건 욕이 아닙니다.

 


Act 3. 유예 기간

캐나다, 넌 나를 싫어하지만...
네가 좋아져 버렸어.


추방 명령 이후 캐나다에서 보낸 1년 3개월은 핑크빛이었다. 교대 수업 내용은 재미있었고 삶을 들여 오래오래 사귀고픈 사람들을 만났다. 누군가와 이렇게 가깝게 지낸 적이 없을 정도로 깊은 관계를 맺어갔다. 나는 설익은 사람인데, 내 맛을 찾기 시작하고 사람 사귀는 즐거움을 익혔다. 외로움에서 멈춰있던 캐나다의 계절이 서서히 바뀌어 '우리 동네'가 될 만큼의 시간이었다. 코털이 어는 캐나다의 겨울이 이번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학업을 마치고 다시 모든 것이 불투명해졌지만 방학을 맞은 기분이었다. 임용 시즌도 아니고 캐나다 영주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상황이라 구직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아주 좋은 변명이었으므로 중국식 뷔페 집에서 몇 달간 아르바이트하며 용돈을 벌었다. 그렇게 스스로 연장한 허니문 기분에 젖어 있던 2016년 막바지. 드디어 항소심 날짜가 잡혔다. 2017년 3월 1일. 네 달여 남은 기간 나는 성격대로 별걱정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살다가 항소심 두 달 전 불현듯 깨달았다. 아 망했구나.


- 영주권 분투기 2편으로 이어집니다.



영주권 분투기 2편

영주권 분투기 3편 (마지막)


글 상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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