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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근 Mar 16. 2018

별이 되지 못한, 세상의 모든 행성들에게

가족 안 졸병의 성장기


"Miranda used to joke that my house is like the earch.
It revolved around the Sun, not the daughter."

"미란다는 우리 집이 마치 지구 같다고 농담하곤 했다.
딸이 아닌 아들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영화 '원더' 의 캐릭터, 비아가 한 말이다. 온 가족의 생활은 선천적 안면기형을 가지고 태어난 동생 어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어기는 열한 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물일곱 번의 성형수술을 거쳤다. 남들과는 다른 모습을 가졌다는 자각을 할수록 타인의 시선에 민감해지는 어기. 누나 올리비아는 누구보다 동생의 상황을 잘 알기에 질투조차 마음껏 할 수 없다. 하지만 가끔은 부모님이 자신을 바라봐 주었으면 한다. 자신도 한창 민감한 사춘기 소녀이기에.


비아의 독백을 들으며 조금은 울컥했다. 부모님에게 착한 딸 소리를 듣지만,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비아. 가장 친한 친구와의 관계가 틀어져 힘들지만 마침 어기도 학교생활에 난항을 겪는 터라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다. 오랫동안 지속하는 문제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경우 가족은 평형을 찾기 위해 일상을 조율한다. 그 과정에 가족원의 헌신과 희생은 불가피하다. 부모, 자녀, 그 형제 각자 다른 문제를 떠안고 줄타기하듯 나름의 중심을 찾는다.


부모가 되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더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인생의 중심, 가치관의 중심이 자신으로부터 아이에게 옮겨가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똑같이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지원이 더 필요한 아이를 향해 관심이 치우칠 것이다. 예를 들어 만성 질환이나 장애 또는 정신 질환을 가진 자녀의 보호자는 훨씬 많은 시간과 자원을 아이에게 쏟는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닌 단순한 '균형 찾기' 다.


그런데 말입니다?


부모의 보살핌이 더 필요한 자녀의 옆에 선 '다른 형제'의 역할은 무엇일까? 영 모호하다. 본능의 법칙은 말이 없다. 형제 사이 의리는 있어도 부모와 같은 헌신의 의무는 없다.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는 가족 간의 정, 부모님과의 연결 고리에 여기저기 얽혀있어 발 빼기도 뭐하다. 게다가 착하다는 칭찬 듣기는 또 얼마나 쉬운지. 문제 일으키지 않고 가만히만 있어도 주변의 평가는 쑥쑥 올라간다. 이해심이 많다느니, 나이에 비해 책임감이 강하다느니. 부모와 형제간 중재자가 되기 가장 적합한 자리에 있지만 그런 정교한 소통이나 성숙한 인격은 쉬이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결국 타인을 위해 내 삶의 일부를 소모하는 행위, 즉 희생을 피할 수 없는 자리다. 문제는 어린 나이부터 균형을 찾는 임무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미션 임파서블은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킨다.




두두두 - 휘유웅- 콰광! 부모님은 문제 자녀와 균형을 찾기 위한 투쟁 중이다.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전문가의 소견' 또는 '친구의 조언' 수류탄에 정신이 혼미하다. 자녀 넘버 투는 갈등한다. 이 전투에 어떤 역할로 참전할 것인가. 아무도 알려주는 이 없다. 옆에 있던 누군가가 목덜미를 부여잡고 쓰러진다. 머리를 굴리자. 나에게 맞는 포지션을 찾아내야 살아남는다. 이건 시방 서바이벌이여. 문제 자녀의 포격에 맞아 타들어 가는 부모님의 가슴을 치료한다. 위생병이다. 내일은 문제 자녀의 진지에 숨어 들어가 정보를 캐내 본다. 위장병이다. 듣고 보니 그쪽 사정도 사정인지라 회유되어 돌아온다. 이중간첩이다. 아뿔싸, 부모님 기지에 돌아오니 내분이 일어나고 있다. 중재하느라 등이 터진다. 이쯤 되니 회의가 생긴다. 내가 이러려고 세상에 나왔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자녀 넘버 투는 최전방에서 제외되어 제 할 일이나 하는 장군의 아들딸이 될 수도 있다. 인연을 끊은 방랑자가 될 수도 있고, 양 진영의 참모나 평화 사절단이 될 수도 있다. 또는 난리 틈바구니에서 이득을 취하는 전쟁 경제의 검은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무궁무진한 경우의 수를 품고 있다. 이게 무슨 전쟁 꿈나무 같은 소리냐고? 그만큼 문제가 발현되는 자녀 형제의 정체성은 위태롭다. 그리고 부모님은 정신이 없다.


온전한 자치 국가로 바로 서는 일은 쉽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되어 온 보조 역할은 자신을 온전한 한 세력으로 확장하는 일에 여러 가지 딴지를 걸어 놓는다.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녔건만 투 스타, 쓰리 스타 진급은커녕 하나의 별도 아닌 변두리 행성으로 남은 자신을 본다.


나의 이야기


우리 가족은 오랜 세월 인터넷 게임 중독과 싸워 왔다. 동생이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우리 가족의 문제는 갖가지 모습으로 터져 나왔다. 당장 고통을 주는 현상은 동생으로부터 나타났기에 우리 가족은 그 아이에게 매달렸다. 동생의 상태가 좋으면 우리 가족은 사이가 좋았고 상태가 나빠지면 온 집안이 어두웠다.


동생의 상태가 불안정하면 다들 그에게 붙어 어르고 달래거나 엄하게 다그쳤다. 나는 항상 밝고 희망찬 누나로서 동생과 가족의 절망을 상쇄해야 했다. 힘내라는 말, 감정적인 지원의 한계가 드러날 즈음에는 누나 상담소를 개업했다. 신앙의 묵상과 깨달음, 교육대 과정을 밟으며 배운 교수법, 심리학 등 나의 지식을 총동원해 지금 상태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분석하고 설명했고, 현재 취할 수 있는 작은 한 걸음이 무엇인지, 장기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열심히 설파했다. 때로는 부모님께 조언을 가장한 하극상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의 지반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은 쉽지 않다. 중독과 감정의 소용돌이가 한 차례 지나고 나면 모든 노력이 뿌리째 뽑혀나간 듯 황망했다. 이 반복되는 과정은 모두에게 지치는 일이었다.


나는 때로 '모진 말을 듣지 않을 권리, ' '오해받지 않을 권리, '솔직한 감정 표현할 권리' 등을 잠시 내려놓아야 했다. 나를 비우고 지워야 상대방의 아픈 마음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체득했다. 나는 동생에게 필요한 조언과 훈육과 격려를 조달할 의무를 느꼈다.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 동생과 부모님 사이에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는 것 같았고 나만이 둘 사이를 왕래할 수 있었다. 마음 터놓을 이 없는 외로움을 알기 때문에 동생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동생의 상태가 나빠지면 죄책감을 느꼈다. 그렇다. 나는 전쟁 참모와 평화의 사절단 임무를 자처했다. 아무도 내 헌신을 요구하지 않았기에 전적인 나의 선택이다. 그러나 나는 괜찮지 않았다.


우리 가족을 향한 열심과 무관심, 희망과 절망의 순환 고리를 따라가던 나는 어느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내가 가정을 꾸렸다가 이런 힘든 일이 반복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내 감정표현에 어려움을 느낄 때, 남들은 힘들다 하는데 나는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할 때, 다가오는 이성에게 때로는 혐오감을 느낄 때, 남들이 가족애 뿜 뿜 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환멸(ㅇ_ㅇ) 환멸~ 이런 표정을 지을 때.


이런 생각의 흐름이 건강한 것일까? 내가 없으면 부모님과 동생의 관계는 정말 잘못될까? 나는 이 부정적인 감정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를 나로 보아준 사람


십 년도 더 전, 가족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 나는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가족이 가장 힘든 시기였다. 힘들다는 한마디를 하면 상대의 힘든 이야기 열 마디를 들어야 했다. 나는 말하기를 그쳤다. 어느 한 목사님이 없었다면 나는 내 감정에 이름조차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다들 부모님의 관계를 걱정하고 동생의 안부를 물을 때, 목사님은 '네 기분은 어때?'라고 물었다. 철들고 아무 앞에서도 울어본 적 없던 내가 대성통곡을 한 일은 목사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목사님은 나에게 처음으로 '너는 네 인생을 살아야 한다.' 말해준 분이었다. 그 말을 가슴에 새겼지만 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삶의 다른 방향을 염두에 둔 덕에 흘러가듯 끌려다니지 않고, 다른 선택을 꿈꿀 수 있었다. 나는 세상은 무섭고 힘든 곳이라 믿을 면면을 보며 자랐지만 감사하게도 희망을 품은 '어른이' 가 되었다.


심리학에 따르면 트라우마는 쉽게 생기고 그에 따른 방어기제도 참 많다. 내가 느낀 이상함은 자연스럽지 않은 의식의 흐름이다. 삶의 방향을 왜곡시키는 나의 방어기제다. '이젠 오히려 불행이 편해졌어요.'라는 과거로의 회귀본능이 생겨버린다나. 나는 자잘한 중독도 있고,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자존감 낮고, 자기표현에 서툴고 쓸데없는 걱정도 많다. 그래,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방 안에 틀어박혀 온종일 유튜브 보고 만화책 읽는 그런 어둠의 시기가 종종 온다. 그러나 그게 나다. 더 나은 삶을 향한 갈망이 있고, 이제는 나에게서 벗어나서 이웃을 사랑하고, '멋진 할머니' 가 되고 싶은 꿈이 있는 사람도 나다.


너는 이미 별이야


감사한 멘토들이 있었기에 남의 전장에서 생을 마감하지 않을 수 있었다. 부모님은 완벽하진 않지만, 항상 그 자리에 계셨고, 나를 믿어 주셨고 또 각자의 방법으로 나를 사랑해주셨다. 그리하여 다시 돌아본 그 자리는 전쟁이 아닌 성장의 과정일 뿐이었다. 당장 죽을 것만 같던 투쟁도, 수류탄도, 무인 지대도 어린 나의 세상이었다. 목덜미 잡고 쓰러졌던 누군가도 자기 인생 잘살고 있다.


누나로서 여러 역할을 자처했다. 그 말은 앞으로의 역할도 나의 선택으로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여전히 죄책감은 사랑방 손님처럼 마음 한편을 차지하고 고 착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쪽지를 전해 올 것이다. '부모님 힘드시니까 네가 뭔가 해야 하지 않겠니, ' '동생에게는 네가 필요한데 왜 자꾸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 이런 옳은 말들이 마음의 짐보다는 어떤 다른 의미를 가질 때까지 질문을 계속할 것이다. 오랜 친구인 절망과 우울도 이젠 나의 일부다. ~환멸(ㅇ_ㅇ) 환멸~ 이 표정도 나만 지을 수 있다. 나쁜 능력은 아닌 것 같다.


나는 평화의 사절단이랍시고 날아올랐다가 총 맞는 비둘기가 되고 싶지 않다. 전쟁 참모, 한량, 방랑자, 검은손이라는 선택지는 내 환상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사실 저 멀고 먼 평화로운 나라의 시민일지도 모른다.



글, 그림 상은리



*커버포토 출처 www.cinematografo.it/news/il-cinema-in-catted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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