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근 Oct 29. 2020

Outro: 09 Quarantine 격리 기간

초짜 서른, 두 여자의 글쓰기 프로젝트 <무쓸모임>




아웃트로


생근


#1

"금방 다시 볼 테니 너무 서운해하지 말자."

친구와 3월 어느 주일 인사를 하고 집에 들어왔다. 늦은 밤 그냥 자 버릴까 하다가 2주 뒤 썩은 빨래와 마주하는 것보다는 몇 시간 덜 자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혹시나 내 방에 들어 올 일이 생긴 집주인 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일이 없어야겠다는 마음, 또는 출타를 마치고 더도 말고 덜도 말 것이 없는 방에 그대로 뻗을 수 있기를 바라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다음날 졸린 눈으로 기차에 탄 나는 영영 그 방과 작별하고 말았다. 빨래한 게 얼마나 다행인가.

 


#2

3월이 8월이 되었다. 나는 집 안에서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기분으로 코로나 사태를 지나고 있다. 나는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므로 참으로 사치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학교 일은 에너지 소모가 심해 집에 오면 털퍼덕 쓰러져야 했는데, 집에서 일하는 것은 그만큼의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되었다. 몇 시간씩 스크린을 보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애들 보랴, 집안일하랴, 수업 준비하랴 정신없을 다른 선생님들보다 사정이 나았다. 매일 생각했다. 내가 싱글인 게 얼마나 감사한지. 돌봐야 할 가족이 딸린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지 몰라도 몸은 고단할 것 같다. 가정이 생기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을 어서 다 해봐야 한다는 말이 한층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3

코로나 난리가 시작된 후 가장 달라진 점은 가족 관계다. 한집에서 지내지만 각자 방에서 따로 살았던 우리가 매일 한 시간씩 기도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향후 가족의 거처를 정하기 위한 특별 기도 모임이었다. 그 ‘반짝 부흥회’ 기간에 아빠, 엄마, 그리고 나에게 한마음이 생겼다. 이제 같이 살며 우리 가정을 하나님 안에서 회복하자. 나와 동생이 각자의 가정을 만들 때 가정을 향한 기대와 좋은 마음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 가족은 기도 모임을 일상에 옮겨 심었다. 나는 뭐든 매일 꾸준히 하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은 유지하기 훨씬 쉬웠다. 자신을 꾸중하던 시간이 허탈할 정도였다. ‘건강한 일상을 함께 지켜주는 가정’이라는 토큰이 내 꿈 저금통에 딸그락 떨어졌다.



#4

인생 최초로 매일 반복하는 시간표가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 성경책을 읽고, 일을 한 후, 5시부터 한 시간 동안 가족과 기도한다. 다음으로 운동, 샤워, 저녁을 먹고 8시에 침묵의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시작한다. 9시까지 글을 쓰고 나서 친구들과 연락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친구와의 만남, 공동체 모임, 부탁받은 일 등 그 자체로는 무해하지만 일상 유지를 복잡하게 만드는 관계들로부터 멀어진 까닭이다. 오타와에 돌아가서는 많은 이와 다시 연결되겠지만 키치너에서의 삼삼하고도 규칙적인 생활이 주었던 감각을 미약하게나마 유지하기를 바란다.



#5

지금부터 온라인 모임 예찬을 시작하려 한다. 요즘같이 기술에 크게 의존하는 환경과 문화가 만들어지기 전, 나는 이동에 많은 자원을 탕진했다. 모임이 보통 다운타운에서 열리기 때문에 나는 매번 한 시간 이상을 오들오들 떨면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시간표와 동선을 맞추거나, 자빠지지 않도록 버스의 율동에 신경을 집중하거나, 자리를 두고 눈치 게임을 하는 데 썼다. 물론 불가피한 이 모든 과정은 낭만으로 포장되었고 나는 그 감성을 즐기는 편이었다. 그러나 사람 많은 상황 자체가 부담스러운 나는 이미 어느 정도 에너지를 소모한 상태로 약속 장소에 (마침내!) 입성할 때가 많았다. 그 과정을 생략한 온라인 모임에는 온전한 모습으로 참석할 수 있다. 또 다른 신세계는 감각적 자극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거였다. 음량을 낮추어 내 기도에 집중할 수 있었고,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며 머릿속을 환기했다. 카메라를 꺼서 주변 시선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기능이 특히 좋았다. 실제 모임에선 이 모든 과정을 자체적으로 처리해야 했는데 기계가 알아서 해주니 편했다. 별의별 시답잖은 이유로 에너지가 줄줄 새어 나가는 예민한 사람에게 온라인 모임은 상당히 효과적이다. 그렇다고 실제 모임보다 온라인이 낫다는 말은 아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글이 길어질 테니 안 하겠지만, 오프라인 모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내 가엾은 영혼을 병들게 하거나 세상을 무채색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당분간은.



#6

금방 볼 테니 거창한 인사는 생략하자 합의했던 건 남자 친구였다. 난데없이 장거리 연애가 시작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거창하게 아쉬워할 걸 그랬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몇 달 전 심정이 잘 기억나지 않으나 적응하는 과정에 소소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코로나 사태가 심화할 무렵 우리는 서로에게 제법 익숙해져서 대수롭지 않은 말다툼이 붙곤 했다. 나는 이게 좋았다. 잘 싸울수록 상대방을 알게 된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켰다. 잘해주기만 하는 사람은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어 불안하다. 그러나 장거리 싸움은 초심자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통하던 감정 표현은 기계를 거치니 맹맹하게 느껴졌다. 카메라에 보이는 적당한 화장이 일상에는 너무 과한 것처럼, 기계를 거치는 의사소통은 원본을 왜곡할 여지가 많았다. 부정적인 표현은 왜 그리 날카롭게 느껴지는지... 한 번 뜬 키보드 배틀은 아무런 이득이 없는 진흙탕 싸움이었다. 대학생 때 룸메이트에게 보낸 장문의 이메일이 생각나 뒤늦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건조한 만큼 논리적으로 우리 관계를 따져볼 수 있었지만, 장거리 연애의 맛은 대부분 떫거나 썼다. 예전에는 이런 감질나는 연결이 불가능했기에 편지에 구구절절 좋은 말만 썼고 우편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달콤한 그리움을 쌓을 수 있었으려나.



#7

일상의 한 축을 담당했던 글쓰기 시간과 미팅은 치유였다. 무쓸모임이 없었다면 이렇게 괜찮지 않았을 것이다.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안타까운 기사들과 불안정한 상황을 말로 그리고 글로 소화하는 시간이었다.  하이루~  00년대식 인사로 시작하는 Zoom 미팅은 항상 두 시간은 거뜬히 넘겼다. 할 말이 많지만, 다음 zine을 위해 아껴두어야겠다. 에필로그 갬성을 새이에게 맡긴다.






새이


마스크를 끼고 예배당에 앉아있던 8월의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비가 한바탕 쏟아졌던 주말이라 꽤 선선한 날씨에 마스크 쓰는 게 그렇게 안 힘들었지요. 어색한 거리를 두며 인사를 나누고 예배의 시작을 기다리는데, 문득 내가 언제 저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봤던가 싶더군요. 자주 봤던 사람은 4개월 남짓 되었고 길면 1년 가까이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내가 정기적으로 보던 사람을 1년 동안이나 안 보게 되는 일은 보통 어떤 일이 있을까 더듬어보니 누군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거나 여행을 가는 경우 정도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도시가, 더 나아가 온 세계가 멈추었던 지난 몇 개월이 사실은 긴 여행에 다녀왔을 법한 시간이었던 겁니다. 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일했고, 또 많은 사람은 일을 멈췄지만, 그곳이 어디였고 어떤 모습이었든 이 시기는 아주 낯선 곳으로 떠난 여행 같았을 겁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내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행위가 아닌, 내가 이미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시간과 공간과 사람으로 던져진 시간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일상의 사실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일상의 뼈대를 살펴볼 수밖에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먼저는 (반강제적으로) 집을 재정비했고 그리고는 마음을 다시 세웠습니다. 마치 이사하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씻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과정에서 필요 없는 것을 정리하고 내가 가진 것을 살펴보며 사는 공간을 재정비했지요. 그리고는 그보다 더 복잡한 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지저분한 것이 가장 먼저 보였습니다. 다들 이 시기가 무슨 약이라도 되는 듯 자신이 믿는 것에 열을 낼 때, 저는 오히려 침체한 제 모습에 당황했어요. 나에게 이런 마음이 있었다니, 내가 이런 상태였다니 알면 알수록 까끌까끌해지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데 몇 주를 다 썼지요. 그 당시의 일기장을 보면 ‘breakthrough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식의 심정이 반복해서 적혀있어요.

이런 마음은 (삶의 많은 것이 그러하듯) 어느 순간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필요했을 조용한 시간, 질릴 때까지 본 영화들과 책, 다시 진득하게 붙잡은 성경책, 매일의 산책, 아주 제한적이지만 정기적인 교제, 그리고 다시 들어간 골방에서의 시간이 조금씩 쌓여 아팠던 곳이 아물고 다리에 다시 걸을 힘을 준 거겠지요. 그리고 그럴 때 즈음 저는 다시 일상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2월에 처음 시작한 무쓸모임의 첫 프로젝트가 9월이 다다라서야 마무리가 됩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6개월 남짓 되는 시간이지만 겨울, 봄, 여름 몇 개의 계절을 겪은 프로젝트가 되겠네요. 매주 글을 한편씩 써서 낸다는 게 쉽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보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와 좋아하는 일을 해낸다는 게 더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서로 몸이 떨어져 있어도 일한답시고 매주 컴퓨터를 켜고는 만나 서로의 일상을 맞댄 그 시간이 저에게는 친구와 옆자리에 앉아 기차를 타고 떠난 여행과 같았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끝나며 여행 하나를 마친 것 같은 기분이지만, 새로운 일을 잘 벌이는 모험가 친구를 뒀으니 다음 여행을 기다려보도록 하겠습니다.






- 무쓸모임 01 마침.





완성한 글을 zine으로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나눴어요. 스티커도 만들었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12화 틈새네컷만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