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청량한 질문
낮에는 회사 일로 바쁘다 보니 개인적인 용무는 저녁에 보기 마련입니다. 나에게는 개인적인 일이지만 타인에게는 일이 되는 경우 카톡을 보내기가 망설여지는데요. 일일 디제이 도전을 할 때도 조심스러워 저녁에 메일을 보냈고, 회사 동료에게도 6시 이후에는 카톡을 자제합니다. 지인에게 편한 마음으로 카톡을 보내어도 저녁에는 아예 보지 않는 사람도 있고, 8시 이후에는 아이를 보기 때문에 대응이 어렵다고 다음날 회신이 오기도 합니다. 천천히 응답을 받아도 되는 건 메일을 보내는 게 맞겠죠?
하지만 개인 노트북을 보며 확인을 하며 대화를 주고받아야 하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카톡을 사용하는데요. 며칠 전 낮에 개인적인 용무로 카톡이 와서 간단히 알겠다고 응대하고 넘어갔습니다. 퇴근 후 다시 내용을 살펴보니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는데 시간은 이미 밤 9시를 넘어갔더군요. 제가 불이익을 당할 상황이라 제대로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늦었지만 혹시 카톡 대화가 가능한지 상대에게 물었고 다행히 긍정적인 답변이 왔습니다.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받다 통화가 더 편하겠다며 상대가 먼저 전화 통화를 제안했어요. 그렇게 늦은 시간에 실례를 무릅쓰고 통화했습니다.
서로의 기준이 달라서 의견은 좁아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와 상대가 주장하는 내용이 달라 제가 불이익을 당했다는 생각에 억울함이 들어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격양되었나 봅니다. 솔직히 화가 살짝 올라온 것 같습니다. 전 화를 잘 못 내는 성격이라 상대에게 뭐라고는 못하는데요. 그럼에도 목소리에 억울함과 울분이 실렸나 봅니다. 작년의 일을 끄집어내어 계산이 잘못되었다며 저에게 지급한 돈을 마이너스 처리하겠다니 속상하겠죠? 갑자기 상대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지금 저에게 화내시는 거 아니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잠시 머릿속에서 천둥소리가 들렸습니다. 저야 개인적인 용무지만 상대는 업무로 늦은 시간에 저를 위해 확인해주는 상황인데, 아무리 제가 억울하다지만 목소리에 감정이 실리면 안 되었습니다. 즉시 그게 아니라며, 늦은 시간 이렇게 통화해줘서 오히려 제가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각자 확인해보고 다음 날 이야기하자며 통화를 마쳤습니다.
상대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감정에 몰입한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상대는 막 퇴근하고 씻고 쉬려고 했다는데 흥분한 제 목소리를 들으니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요? 반면 그의 현명한 질문에 감사했습니다. 뜨거운 열기를 식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았습니다. 정신없이 달리는 감정의 질주에 급브레이크를 밟게 해줬습니다.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저는 아마 땀을 뻘뻘 흘리며 연신 사과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스트레스를 받았겠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고 진솔한 대화는 없는 상태로 통화를 마쳤을 겁니다. 그리곤 혼자 상대가 매너 없다며 구시렁거렸겠죠. 당당한 그의 질문법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 상황에서 감정이 앞서는 대상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경우, 그 사람의 감정을 확인하는 질문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솔직한 상대의 감정을 확인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고, 상대가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고 그 감정을 누그러뜨려 상황이 호전되기도 하겠더라고요.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부끄러운 상황을 겪었고, 그로 인해 좋은 질문법을 배웠습니다. 요즘 들어 부쩍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렇게 답을 조금씩 찾아갑니다. 여러분에게 '관계'는 어떻게 다가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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